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엘리시온 마법학원의 고색창연한 돌담 위로 석양의 마지막 붉은빛이 스러지고 있었다. 이 거대한 학원의 역사가 몇 세기에 걸쳐 숨 쉬는 동안, 나, 서지훈은 그저 수많은 학생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 달랐다. 아니, 정확히는 어제의 내가 일으킨 작은 호기심이 오늘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았다.

“지훈아, 제발. 그냥 잊어버리자니까?”

도서관 가장 깊숙한 곳, 먼지 쌓인 서가 사이에서 미나의 잔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금이 간 돋보기 너머로 낡은 고문서를 들여다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잊어? 황 교수님이 괜히 ‘특정 구역’이라는 말을 썼겠냐? 게다가 그 후의 표정을 봤어야 했어. 마치… 엄청난 비밀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어제 고대 마법사들의 은밀한 결사에 대한 강의 중이었다. 황 교수님은 늘 그랬듯 지루한 목소리로 시대의 흐름을 읊조리고 있었지만, 문득 학원 지하에 숨겨진 보물창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굳어지며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보물창고보다 더 깊은 곳에는… 특정 구역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절대 발을 들이지 마십시오.” 그 한마디, 그리고 교수님의 흔들리던 눈빛이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냥 교수님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경고였을 뿐일 거야.” 미나는 초조하게 얇은 손가락으로 책등을 톡톡 두드렸다. 그녀의 영민한 머리는 언제나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나와는 정반대로.

“아니. 봐, 이 지도를. 도서관에서 어찌어찌 찾은 건데, 학원 설계도 같아 보이지 않아? 여기, 이 부분. ‘봉인된 방’이라고 적혀 있어.” 나는 너덜너덜한 양피지 조각을 펼쳐 보였다. 희미한 마법의 빛이 새겨진 글자들을 비췄다. ‘봉인된 방’. 그 위에 그려진 문양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하게 뒤틀린 형태였다.

미나는 지도를 힐끗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그냥 오래된 농담 같은 거겠지. 학원에는 그런 전설이 많잖아. 지하에 잠든 드래곤이라든가, 영혼을 홀리는 유령이라든가.”

“농담이라기엔 너무 자세해. 게다가, 이 문양. 어딘가 익숙하지 않아?” 나는 고문서에서 본 듯한 희미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섬뜩한 깨달음이 머리를 강타했다. “이거… 황 교수님이 어제 강의 중에 슬쩍 보여줬던 마법진과 비슷해. 그… 금지된 주술에 관련된 자료에서.”

미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금지된 주술? 지훈아, 설마… 네가 생각하는 게 그거야?”

내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생각하는 게 뭔데? 난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은 것뿐이야. 엘리시온 학원의 지하에 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지.”

결국, 나는 미나를 설득했다. 아니, 정확히는 반쯤 협박하고 반쯤 간청했다. 그녀는 늘 나의 무모한 계획에 불평하면서도, 결국엔 함께였다. 어둠이 완전히 깔린 밤, 순찰 마법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뜸해질 때를 노려 우리는 움직였다.

우리가 향한 곳은 학원 건물 가장 오래된 서쪽 별관이었다. 한때 마법 실험실로 쓰였으나 지금은 폐쇄된 지 오래된 곳. 퀴퀴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지도를 따라 벽의 숨겨진 문양을 더듬었다. 손끝에 싸늘한 돌의 감촉이 닿는 순간, 양피지 지도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찾았어.”

내가 속삭이자, 벽돌들이 스르륵 안으로 밀려 들어가며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드러냈다. 차가운 바람이 후욱, 하고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오랜 시간 갇혀 있던 숨결 같았다.

“정말… 갈 거야?” 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나는 마법으로 작은 광구를 만들어 어둠 속으로 던졌다. 광구는 잠시 빛을 발하다가 곧 어둠에 먹히는 듯 희미해졌다. 지하 깊숙한 곳의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집어삼키는 듯한, 끈적하고 깊은 어둠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꺼내어 빛나는 마법구를 만들었다. 푸른빛이 주위를 밝혔다. 통로는 좁고 가팔랐다.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성 비린내가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벽은 깎아낸 듯 거칠었고, 군데군데 덩굴 같은 것들이 얽혀 있었다. 넝쿨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고대 문자들은 내 눈에는 마치 핏자국처럼 보였다.

“이게 뭐야…” 미나는 소름 끼치는 듯 팔뚝을 문질렀다.

아래로, 아래로. 계단은 끝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공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단순히 습하고 차가운 정도를 넘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작은 광장에 다다랐다. 아니다, 광장이 아니라… 제의실이었다.

거대한 원형의 공간. 사방의 벽은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표면에는 기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람의 형태를 닮았지만 뒤틀리고 일그러진 형상들, 알아볼 수 없는 괴물들이 서로 뒤엉켜 춤을 추는 듯했다. 모든 문양은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피가 말라붙은 듯한 색이었다.

방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 제단이 솟아 있었다. 단순히 돌덩이라기엔 너무나 정교하고, 또 너무나 음습했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주변의 바닥에는 균열이 나 있었고, 그 틈새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온 흔적이 보였다. 피… 아니, 피라기엔 너무 짙고 끈적한 색이었다. 오래된 기름 같기도, 썩어가는 고름 같기도 했다.

“젠장…”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이것은 내가 상상했던 그 어떤 비밀보다도 훨씬 끔찍한 것이었다.

그때, 미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훈아, 저기!”

그녀가 가리킨 곳은 제단 뒤편의 벽이었다. 다른 벽들과는 달리 거대한 검은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지금 그 천막이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천막 사이로 언뜻 비치는 어둠은 빛을 집어삼키는 듯했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왔다.

‘흐윽… 흐읍…’

숨 쉬는 소리 같았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 느리고 깊은 호흡 소리. 그 소리는 벽을 타고 울리며 내 온몸을 마비시켰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영혼의 심연을 직접 파고드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소리.

‘…갈망….’

귓가에 속삭임이 울렸다. 내 뇌 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소리. 그 속삭임은 굶주림과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내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어떤 존재의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의 세포가 공포에 떨었다.

“튀어!” 나는 미나의 손을 잡아채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지하로 내려왔던 모든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 올라갔다. 뒤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호흡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나를 향해 손을 뻗는 듯했다.

별관의 숨겨진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우리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 왔지만, 그 어떤 상쾌함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깊은 지하의 끈적한 공기가 내 폐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미나는 벽에 기대어 흐느꼈다. 나 역시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온몸이 무기력하게 떨려왔다.

그때였다.

내 왼손목에, 알 수 없는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무심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붉은 제의실 벽에 새겨져 있던 그 기괴한 문양 중 하나가, 내 피부 위에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아주 잠깐, 섬광처럼 빛나더니 이내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아주 분명히 보았다.

그 문양은… 제단 뒤의 검은 천막 너머에서 꿈틀거리던 무언가와 동일한 형태였다.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그 끔찍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찾았다….’

밤의 정적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깨어난 무언가가, 이제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