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심해의 검은 돌
광막한 우주, 그 심연의 어둠 속을 ‘별무리호’는 유영했다. 은하계 최외곽을 탐사하는 임무는 숭고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무한한 정적만이 흐르는 함교, 푸른빛 스크린 위로 스쳐 지나가는 이름 없는 별들의 행렬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무미건조했다.
“선장님, 11시 방향에서 미확인 에너지 반응.”
정적을 깬 것은 수석 과학자 강서희의 차분하지만 긴장감 어린 목소리였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데이터 패드를 응시했다. 함장 이지혁은 컵에 담긴 식물성 커피를 내려놓았다.
“미확인이라니, 무슨 종류지?”
“지금까지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입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강력한 중력 왜곡과 함께 고차원 에너지파를 방출하고 있어요. 광원도 없이 완벽한 암흑 상태입니다.”
이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십 년간 우주를 떠돌며 수많은 현상을 접했지만, ‘데이터베이스에 없는’이라는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 표현이었다.
“거리는?”
“현재 위치에서 0.5광초. 곧 시각적으로도 포착될 겁니다.”
“젠장, 0.5광초면 너무 가깝잖아.” 조종사 박준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이런 깊은 우주에서, 미리 감지되지 않는 ‘무언가’가 이토록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위험 신호였다.
“엔진 출력 낮추고, 모든 센서 집중. 충돌 회피 기동 준비.” 이지혁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함교를 울렸다. 베테랑 함장의 냉철함이 승무원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별무리호는 속도를 줄였다. 수십 개의 센서가 미지의 존재를 향해 뻗어나갔다. 스크린의 11시 방향에서 점차 검은 그림자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얼룩이었지만, 점차 명확한 형태로 잡혀갔다.
“세상에…” 박준영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정팔면체였다. 완벽하게 매끄럽고,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는 흡수체. 주변의 별빛조차 빨아들이는 듯, 그 주위 공간은 한층 더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마치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뽑아낸 궁극의 검은 돌 같았다.
“이게 대체… 뭐야?” 김민준 기관장이 스크린을 노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엔지니어로서의 직감은 이런 기하학적 형태가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외계 유물입니다.” 강서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토록 완벽한 대칭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 에너지 패턴… 마치 시간을 압축하는 듯한, 아니, 주변의 시공간 자체를 뒤트는 듯한 불연속적인 파동이에요.”
“시공간을 뒤튼다고?” 이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뜻이지, 강 박사?”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분석으로는, 이 유물의 존재 자체가 주변 시공간의 흐름에 미묘한 왜곡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마치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강물에 갑자기 멈춰 선 바위가 놓인 것처럼요. 어쩌면…” 그녀는 말을 흐렸다.
“어쩌면 뭘까?”
“어쩌면 이 유물이 시간 여행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일지도요.”
함교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시간 여행. 그건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이자, 가장 위험한 환상이었다.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야, 강 박사?” 김민준이 불안하게 물었다.
“그럼 이 현상을 설명해 보시겠어요, 기관장님? 우리 함선의 내부 시간과 외부 관측 시간이 미약하게나마 불일치하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중력 왜곡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에요.”
이지혁은 복잡한 심정으로 검은 정팔면체를 응시했다. 그 어떤 인공적인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 그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유물과의 거리를 100km로 유지해. 그 이상은 접근하지 마.” 이지혁이 명령했다. “선외 활동 준비. 소형 탐사선을 보내 정밀 분석에 들어간다.”
“직접 접근하는 겁니까?” 박준영이 놀란 듯 되물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니, 이 정도 거리에서 탐사선을 보내는 게 더 위험해. 이 알 수 없는 시공간 왜곡이 탐사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유물 자체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거야.” 이지혁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나가겠나?”
함교의 모든 시선이 강서희에게로 향했다. 미지의 외계 유물에 대한 그녀의 탐구심은 그 어떤 위험도 불사할 만큼 뜨거울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선장님.” 강서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은 미지의 영역을 향한 과학자의 순수한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민준 기관장은 장비 점검을 도와주고, 박 조종사는 함선 안정화에 만전을 기해라.”
몇 분 후, 강서희는 은색 우주복을 입고 에어록 앞에 섰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어쩌면 인류의 역사를 뒤바꿀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를 마주할 순간이었다.
“강 박사, 통신 상태 양호. 산소 농도 정상. 모든 시스템 그린입니다.” 김민준의 목소리가 헬멧 너머로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에어록 문이 서서히 열리고, 그녀는 칠흑 같은 우주 공간으로 발을 내디뎠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광대한 별들의 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떠 있는 거대한 검은 정팔면체였다.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인, 신의 조각 같은 모습이었다.
“거리 98km, 97km…”
소형 탐사선을 조작하며 유물에 접근했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헬멧 너머의 정적이 더 깊어지는 듯했다.
그때였다. 헬멧 내부의 미약한 진동과 함께 시야가 순간 일그러졌다. 푸른빛으로 빛나던 조작 패널이 한순간 오래된 CRT 모니터처럼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뱉어냈다. 동시에 강서희의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수히 겹쳐진 도시의 잔해들, 빛바랜 고대 문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어렴풋한 그림자…
“강 박사! 괜찮습니까? 통신에 노이즈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지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마치 수천 년 전의 메아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강서희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눈앞의 검은 유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완벽한 형태로 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유물의 표면에서 아주 미세하게,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검은 파동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파동은 강서희의 우주복, 아니, 그녀의 시간 감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의 앞에 있던 탐사선이 한순간에 낡고 부식된 고철 덩어리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원래의 매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간의 흐름이 눈앞에서 조작되는 듯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선장님… 이 유물… 정말 시간을 조작하고 있어요.” 강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그보다 더해요. 제 시야에서… 제 시야에서 시간의 파편들이 보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서…”
그녀의 눈에 비친 유물의 표면은 더 이상 매끄럽지 않았다. 그 속에서 수많은 시간의 파편들이 빛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이 유물 자체가 모든 시간의 시작과 끝을 담고 있는 거대한 시계태엽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물의 중심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칠흑 같던 표면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은은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균열은 점점 커져갔고, 그 안에서 어떤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강서희는 홀린 듯 유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 헬멧에서 울렸지만, 그녀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감각은 유물 속에서 피어나는 미지의 존재에 사로잡혔다.
“강 박사! 후퇴해! 유물에 이상 반응이 감지됐다!” 이지혁의 격앙된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늦었다.
푸른빛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강서희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그녀는 보았다.
자신이 알던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뒤틀리고, 우주의 모든 역사가 한순간에 그녀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마치 자신이 우주의 시간 그 자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아득한 태초의 혼돈, 별들의 탄생과 소멸, 수많은 문명의 흥망성쇠, 그리고… 인류의 미래. 예측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한 미래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의식이 몽롱해지는 순간, 그녀는 들었다.
마치 유물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오래고도 오래된 속삭임을.
_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_
_시간은… 존재한다._
_그리고 이제… 너는 그 존재의 일부가 될 것이다._
다음 순간, 푸른빛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강서희와 검은 유물을 감쌌다.
별무리호의 함교 스크린에는, 한때 존재했던 검은 정팔면체와 강서희의 생체 신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잔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강 박사! 강 박사! 응답하라! 강 박사!”
이지혁의 절규가 광막한 우주에 흩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