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웠다. 흙내음과 오래된 비밀의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어른 팔뚝만 한 굵은 덩굴들이 무너져 내리는 돌기둥과 끈질기게 씨름하며, 한때는 웅장했을 아치형 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바로 그곳, ‘달빛 심연 유적’의 잊혀진 입구 앞에, 두 소녀가 서 있었다.
“흐읍, 흐읍… 루나 선배! 정말 여기가 맞아요? 지도가 맞긴 한 건데… 뭔가 너무 풀이 무성해서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르겠어요!”
별아는 가방을 고쳐 메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초록색과 은색이 어우러진 그녀의 마법소녀 복장은 숲의 색과 묘하게 어울렸지만, 등산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면서도,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루나는 한 손에 고대 문양이 새겨진 금속판을 들고 차분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검푸른 마법소녀 복장은 밤하늘처럼 고요했지만, 눈빛은 예리하게 빛났다.
“지도상으로는 이 근처가 확실해, 별아.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서 지형이 많이 변했겠지. 우리가 찾던 마력의 근원지도 틀림없고.”
루나의 어깨 위에서 작은 반딧불이가 팔랑이며 날아올랐다. 반딧불이라기엔 너무 영롱하고 밝은 빛을 내는, 별아의 파트너인 요정 반딧이었다.
[삐릿, 삐비빗! 이쪽이야, 이쪽! 마력이 제일 강하게 느껴져!]
반딧은 앞발처럼 생긴 두 개의 빛나는 촉수를 뻗어, 덩굴로 뒤덮인 거대한 바위를 가리켰다.
“어? 저 바위가… 설마!”
별아가 바위로 다가가 빽빽한 덩굴을 걷어냈다. 끈질기게 엉겨 붙은 덩굴들을 잡아당기자, 시커먼 바위 틈새로 희미하게 빛나는 보랏빛 문양이 드러났다. 그 문양은 루나가 들고 있는 금속판의 문양과 정확히 일치했다.
“역시, 봉인석이었군.”
루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금속판을 문양 위에 가져다 댔다. 금속판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와 봉인석의 문양과 결합하자, 바위 전체에서 보랏빛 광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덩굴들이 순식간에 시들며 바스러지고, 거대한 바위는 마치 마법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묵직한 흙냄새와 함께, 차갑고 신비로운 공기가 후욱하고 뿜어져 나왔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지하 통로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쪽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기운이 가득했다.
“와아… 정말 지하 유적이 맞았네요! 대박!”
별아는 눈을 반짝이며 통로 안을 들여다봤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법소녀가 된 이후로 수많은 마물과 싸웠지만, 이렇게 미지의 유적을 탐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너무 들뜨지 마, 별아. 잊혀진 유적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 차 있어. 조심해야 해.”
루나는 침착하게 경고하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영롱한 달빛이 피어오르더니, 작고 밝은 구슬 형태로 응축되었다. 루나가 구슬을 어둠 속으로 던져 넣자, 달빛 구슬은 통로를 따라 부드럽게 떠올랐다. 어두웠던 통로의 내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의 벽면은 거친 돌이 아니라, 매끄럽게 가공된 검은 광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광물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음각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보랏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수정들이 박혀 있었다. 발아래는 흙이 아니라 단단하게 다져진 검은 바닥이었다.
[삐비빗! 마력 농도가 점점 진해져! 조심해야 해, 별아!]
반딧이 별아의 어깨 위에서 불안하게 맴돌았다.
“걱정 마, 반딧! 내가 있잖아!”
별아는 가슴을 툭툭 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녀는 먼저 통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차갑고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몇 발자국 걷자, 통로가 급격히 아래로 경사졌다. 가파른 내리막길의 끝에는 거대한 지하 공간이 펼쳐져 있는 듯했다.
“조심해, 별아. 이런 곳은 종종 불안정한 마력의 함정이 있을 수 있어.”
루나가 뒤따라 들어오며 경고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신중했지만, 호기심 어린 빛이 엿보였다.
한참을 내려가자, 마침내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루나의 달빛 구슬로는 전체를 비추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동굴이었다. 동굴의 천장에는 기이하게 빛나는 수정들이 박혀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석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석판 주변에는 깨진 비석 조각들이 널려 있었고, 낡은 제단처럼 보이는 구조물도 있었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별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아래 석판에서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석판의 표면에도 봉인석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고대 문양들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삐리리리릿! 위험해! 이 석판…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어!]
갑자기 반딧이 다급하게 외쳤다. 반딧의 빛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것을 본 별아는 깜짝 놀랐다.
“마력을 빨아들인다고? 어디를?”
별아가 반딧을 안아들자, 반딧은 석판의 중앙을 가리켰다. 석판 중앙에 그려진 거대한 나선형 문양에서, 주변의 마력이 묘하게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희미하게 보랏빛 기운이 석판으로 수렴하는 듯했다.
“마력 흡수 장치인가? 아니면… 봉인된 무언가를 깨우려는 건가?”
루나는 석판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살폈다. 그녀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 순간, 석판 중앙의 나선형 문양이 더욱 강렬한 보랏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인 간격으로 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석판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석판 주변의 비석 조각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회오리처럼 솟구쳐 오르며 별아와 루나를 위협했다.
“이게 대체 무슨…!”
별아가 비명을 지르며 반딧을 품에 안았다. 루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결계를 생성했다. 투명한 푸른빛의 보호막이 그녀들과 별아를 감싸 안았다. 파편들이 결계에 부딪히며 ‘챙!’하는 소리를 냈지만, 결계는 굳건했다.
석판의 진동은 점점 더 거세졌다. 보랏빛 나선형 문양은 거대한 눈동자처럼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나선형의 중심에서, 검고 희미한 기운이 마치 안개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무언가가, 숨을 쉬는 듯했다.
[삐비비비비빅!!! 안돼! 마력이 폭주하고 있어! 저 안에서… 무언가 깨어나고 있어!]
반딧의 외침이 공포에 질려 떨렸다.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형체가 보였다. 굵고 거대한, 비늘로 덮인 듯한 실루엣. 그 존재는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 거대한 지하 유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루나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별아, 준비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야!”
별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었다. 마법소녀로서의 직감이 소리쳤다. 이 유적은 그저 잊혀진 공간이 아니었다. 무언가 엄청난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을 수호하는 고대의 재앙이 잠들어 있던 곳이었다. 그 재앙이 지금, 자신들의 발밑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형체와 마주한 별아의 눈빛에 두려움과 함께 결연한 빛이 스쳤다.
이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