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붉은 달의 약속

어둠이 내려앉은 그림자 숲은 뼈아픈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고목들의 앙상한 가지들이 하늘을 긁어대며, 붉게 물든 달빛 아래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리라는 익숙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숲은 언제나 차가웠지만, 오늘 밤의 한기는 단순히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심장이 경고하듯 격렬하게 울렸다.

발밑의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숲은 그녀를 제외한 모든 존재를 삼킨 듯 고요했다. 오래된 비석들이 이끼를 뒤집어쓴 채 서 있는, 폐허가 된 신전 터가 저 앞에 보였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소였다.

숨을 고르며 돌무더기 사이로 발을 내딛는 순간,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군, 나의 작은 새.”

리라는 몸을 돌렸다. 그림자 속에 서 있던 키 큰 그림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달빛이 그의 은빛 머리카락과 강렬한 붉은 눈동자를 비췄다. 칼이었다. 그의 짐승 같은 아름다움은 언제나 리라의 숨을 멎게 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그는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고립된 족장의 아들이나 떠돌이 전사로 보일 뿐이었지만, 리라는 그의 피부 아래서 꿈틀거리는 늑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해.” 리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경비가… 더 삼엄해졌어.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혔어.”

칼은 그녀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어깨를 감쌌다. 그의 손길은 언제나 강인하면서도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며칠 전, 숲 경계에서 인간 사냥꾼 두 명이 사라졌대. 숲의 부족 소행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당장이라도 수색대를 조직해서 숲을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어.”

칼의 붉은 눈동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숲의 부족은 건드리지 않았을 거야. 그들은 스스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먼저 피를 흘리지 않아.”

“나도 알아. 하지만 인간들은 듣지 않아. 그저 자신들의 공포를 증폭시킬 뿐이지.” 리라는 칼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체온이 얼어붙은 그녀의 몸을 데워주었다. “나는… 너무 두려워, 칼. 이 모든 게 끝이 날까 봐.”

칼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심장이 리라의 뺨에 쿵쿵 울렸다. “끝나지 않아, 리라. 절대로.”

“하지만… 우리가 발각되면….” 리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 마을에서 늑대인간과의 금지된 교류는 곧 죽음이었다. 늑대 부족에서도 인간을 품는 자는 추방당하거나 더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

칼은 그녀를 부드럽게 일으켜 세워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을 나도 느껴. 하지만 우리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나는 더욱 확신하게 돼.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밤의 포식자의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그녀에게만 열린 진심을 담고 있었다. 리라는 그 눈동자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금기와 종족의 혐오를 넘어선, 단 하나의 존재로.

“오늘 밤, 늑대 부족의 감시가 강화되었다.” 칼이 나직이 말했다. “내 동족들도 뭔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는 듯해. 곧 이곳으로 순찰대가 올 수도 있어.”

리라의 심장이 다시 한번 내려앉았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해?”

“시간이 없어.” 칼은 그녀의 손을 잡고 돌무더기 뒤, 깊은 어둠 속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네게 할 말이 있어.”

그는 리라를 자신에게 바싹 끌어당겼다. 그의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고, 리라는 그의 거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붉은 달빛이 부서져 내리는 폐허 속에서, 두 개의 다른 심장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했다.

“리라,” 칼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나는 너 없이 살아갈 수 없어. 이 금지된 사랑이 우리 둘 중 하나를 파멸시킬지라도, 나는 이 감정을 포기할 수 없어.”

리라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이 순간, 숲의 위험도, 마을의 분노도, 종족 간의 혐오도 모두 희미해졌다. 오직 그의 눈빛과 그의 목소리만이 그녀의 세상에 존재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칼.” 그녀는 흐느끼듯 속삭였다. “난… 난 너의 세상에서 추방될지라도, 너의 손을 놓지 않을 거야. 설령 너의 부족이 나를 찢어발기려 한다 해도.”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는 듯했다. 서로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일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 또한 세상에서는 용납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키스는 모든 금기를 깨부수는 맹세였다.

그 순간, 멀리서 숲의 정적을 깨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사냥꾼들의 신호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칼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리라는 느꼈다. 그의 눈동자 속 붉은 빛이 더욱 짙어졌다. 짐승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들켰어.” 칼의 목소리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리라는 공포에 질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았다. 그들이 숨을 곳은 없었다. 폐허는 너무나도 개방적이었고, 숲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칼….”

칼은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그의 어깨는 넓고 단단했다. “뛰어. 내가 시간을 벌게.”

“안 돼! 혼자 둘 수 없어!”

“어리석은 소리 마.” 그의 목소리에 늑대의 야성이 묻어났다.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을 상대하면, 그들은 너를 찾지 못할 거야. 도망쳐, 리라. 그리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

멀리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몇 명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리라는 칼의 어깨 너머로 그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그녀를 향한 간절한 사랑과, 그녀를 지키기 위한 맹렬한 투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안 돼… 안 돼!” 리라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우린 같이 가야 해!”

칼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손은 이미 짐승의 발톱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뼈가 우드득거리는 소리, 피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인간 사냥꾼들에게 그가 ‘인간’이라는 착각을 줄 시간조차 없었다. 숲의 부족은 이미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오직 살육뿐이었다.

달빛 아래, 칼의 온몸에서 털이 돋아나고 근육이 불어나는 모습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끔찍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리라는 그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도망쳐!” 칼의 마지막 인간적인 외침이 늑대의 포효로 변해갔다. 그의 등은 이미 숲의 짐승처럼 굽어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리라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그녀를 향한 간절한 사랑과 함께, 자신의 종족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리라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오래된 기억이 있었다. 그녀의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잊힌 시대의 노래… 늑대 부족과 인간 부족이 공존하던 시절의 이야기. 금기를 깨뜨린 자들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에 대한 노래였다.

“칼! 잠시만!” 리라는 다급하게 그의 귀에 속삭였다. 늑대의 귀는 인간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지만, 그녀의 간절함은 전달된 듯했다. “잊힌 사원! 북쪽 계곡의 잊힌 사원으로 가야 해! 그곳이라면…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칼의 짐승 같은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잊힌 사원? 그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곳은 단순한 전설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리라의 눈빛은 너무나도 확고했다.

“나를 따라와!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야!” 리라는 칼의 거대한 어깨를 밀치고 폐허를 벗어나 그림자 숲의 더 깊은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사냥꾼들의 고함과 늑대인간으로 완전히 변한 칼의 맹렬한 포효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붉은 달빛은 그들의 도피를 비웃듯 차갑게 숲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