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연시의 스모그는 늘 그러하듯, 지평선을 집어삼킨 거대한 톱니바퀴 구름 아래에서 꾸역꾸역 피어 올랐다. 매캐한 석탄 냄새와 뜨거운 증기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작고 낡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잉크가 묻어나는 만년필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오전 10시 32분. 아직 아침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시간, 거리의 자동인형 청소부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보도블록을 닦고 있었다.
“정우, 준비됐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한유진 탐정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재단된 짙은 회색 코트 차림이었고, 얇은 은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의 한 손에는 늘 들고 다니는 작은 황동제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다. 그는 시계 뚜껑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 후, 다시 딱 소리가 나게 닫았다. 그의 손목시계는 증기압으로 움직이는 신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진 탐정은 구식 회중시계를 고집했다. 그만의 고집이었다.
“네, 탐정님. 언제든지요.”
나는 얼른 대답하며 수첩을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우리는 막 증기 기관차가 멈춘 플랫폼에 서 있었다. 철연시의 심장부, 기계공학의 첨탑들이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지구. 이곳에 우리가 불려온 이유는 늘 하나였다. 이성이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하고 복잡한 사건들.
유진 탐정은 길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공중에 떠다니는 비행선을 가리켰다. 마치 거대한 고래가 하늘을 유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비행선의 조종사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람의 저항, 연료의 효율, 혹은 저녁 식사 메뉴? 인간의 사고회로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 차 있지.”
그의 엉뚱한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마 연료의 효율보다는 엔진의 안정성에 더 신경 쓰지 않을까요? 그게 더 예측 가능한 변수일 텐데요.”
유진 탐정은 내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확해. 그래서 사람들은 복잡한 퍼즐을 마주하면 가장 단순한 답을 찾으려고 하지. 하지만 때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교묘한 함정이 되기도 해.”
우리를 태우러 온 것은 증기 마차였다. 은은한 황동빛 광택을 뿜어내는 차체는 최고급 가죽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마부가 아닌 정교한 자동인형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마차는 톱니바퀴의 부드러운 회전음과 증기 분출음을 내며 미끄러지듯 도로 위를 달렸다. 주변의 건물들은 점점 더 높아졌고, 복잡한 증기 파이프와 톱니바퀴 장식들이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철연시 최고의 부호들이 모여 사는 ‘강철 탑 지구’였다.
이번 사건의 현장은 강철 탑 지구에서도 가장 높이 솟아 있는 ‘강태호의 탑’이었다. 강태호. 철연시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인형 공학자이자, 새로운 증기 동력원의 발명가.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마차가 탑의 거대한 대문 앞에 멈춰 섰다. 대문은 순수한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고, 복잡한 태엽 장식들이 움직이며 기묘한 문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경비 자동인형들이 삐걱거리며 움직여 마차의 문을 열었다.
탑의 로비는 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기계 장치 같았다. 천장에는 거대한 황동제 시계탑이 매달려 있었고, 층수를 오가는 승강기는 증기압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탑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나선형 톱니바퀴에 매달려 회전하는 방식이었다.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 반장님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김 반장님은 수십 년간 철연시의 온갖 범죄를 해결해 온 베테랑 형사였지만, 유진 탐정 앞에서는 늘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태도를 보였다.
“탐정님! 드디어 오셨군요! 정말… 정말 난감한 사건입니다.” 김 반장님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유진 탐정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설명해 주시죠, 김 반장.”
“강태호 박사님이 살해당했습니다. 오늘 아침, 그의 연구실에서요. 문제는… 그 연구실이 안에서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는 겁니다.”
나는 얼른 수첩을 꺼내 들었다. 밀실 살인. 유진 탐정이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퍼즐이었다.
김 반장님은 손짓으로 승강기를 가리켰다. “연구실은 탑의 최상층, 128층에 있습니다. 박사님은 어제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계셨고, 새벽 3시쯤 경비 자동인형이 순찰을 돌 때까지도 불이 켜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의 비서가 출근하여 연구실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잠겨 있어서,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그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박사님이 죽어 있었습니다. 심장에 정확히 칼이 박혀서요. 그리고…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강철 강화 유리로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환기구는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고, 다른 출입구는 애초에 없습니다. 밀실입니다, 탐정님. 완벽한 밀실!”
우리는 나선형 톱니바퀴 승강기를 타고 쉼 없이 상승했다. 창밖으로는 철연시의 거대한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증기 탑들과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이 마치 살아있는 도시의 심장 박동 같았다.
128층에 도착하자, 철통같은 경비 속에 경찰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복도는 온통 정교한 기계 장치들로 가득했다. 각종 증기 압력계와 톱니바퀴 장식들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김 반장님이 가리킨 곳은 묵직한 강철 문이었다. “이 문이 박사님의 연구실입니다. 안에서 걸쇠가 내려져 있었고, 잠금장치도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저희가 강제로 해제하고 들어갔습니다.”
유진 탐정은 말없이 문을 바라보았다. 강철 문에는 복잡한 태엽 장치와 여러 개의 자물쇠가 달려 있었는데, 분명 밖에서는 쉽게 열 수 없는 구조였다.
“문은 어떻게 해제했지?” 유진 탐정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잠금장치들을 특수 공구로 풀고, 문 경첩을 뜯어냈습니다. 물리적으로 해체한 겁니다. 안에서 걸린 빗장은 문이 열리면서 파손되었고요.”
유진 탐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잡이를 잡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연구실은 기대했던 대로 거대한 기계 박물관 같았다. 중앙에는 설계도가 펼쳐진 커다란 작업대가 있었고, 벽면에는 수많은 황동제 부품들과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증기압으로 움직이는 듯한 작은 자동인형들이 선반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강태호 박사가 쓰러져 있었다.
박사는 작업대 바로 옆, 바닥에 엎드린 채 미동도 없었다. 등에는 깊고 날카로운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피가 흥건하게 고여 바닥의 복잡한 기계 문양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마치 무언가를 잡으려다 놓친 듯, 허공을 향해 뻗어 있었다.
유진 탐정은 시선을 한 곳에 고정했다. 바로 박사의 옆에 떨어진 칼이었다. 그것은 흔한 주방용 칼이 아니라, 정교하게 세공된 황동 손잡이에 날카로운 강철 날이 달린, 흡사 장식용 검과 같은 형태였다.
“창문은 확인했나?” 유진 탐정이 김 반장에게 물었다.
“네, 탐정님. 이 탑의 창문은 모두 강철 강화 유리로 이중 밀봉되어 있습니다. 외부에서는 절대로 깨뜨릴 수 없고, 내부에서 강제로 열려고 해도 증기압 잠금장치가 작동해서 열리지 않습니다. 이 방의 창문도 역시나 굳게 닫혀 있었고요.” 김 반장이 손전등으로 창문을 비추며 설명했다. 유리가 너무나 두꺼워 햇빛조차 희미하게 스며들 뿐이었다.
나는 방 안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환기구는 천장 구석에 있었지만, 성인 남성이 통과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구멍이었다. 다른 숨겨진 문이나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카펫 대신 복잡한 기계 부품의 회로도를 연상시키는 패턴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는 박사의 피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자살은 아닐 겁니다. 등에 칼이 박혔으니까요.” 한 경찰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 반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박사님 외에는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누가 박사님을 죽이고 이 밀실을 빠져나간 걸까요?”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완벽하게 밀봉된 공간, 안에서 걸린 문, 그리고 등 뒤의 치명적인 상처.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진 탐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턱을 쓸어내렸다. 그의 뇌리 속에서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침묵이었다. 곧 그는 눈을 떴고, 그 시선은 방 안의 특정 장소에 머물렀다.
“정우, 수첩을 준비하게.” 유진 탐정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확신에 찬 어조였다.
나는 얼른 펜을 잡았다.
그는 피 묻은 칼을 쳐다보지 않았다. 강태호 박사의 싸늘한 시신에도 그의 시선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장에 달린 거대한 황동제 증기압 시계, 벽면을 따라 흐르는 복잡한 구리 파이프들, 그리고 박사가 손을 뻗은 방향에 있는, 마치 아직 미완성인 듯한 자동인형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밀실. 김 반장, 이 방은 결코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네.”
그의 말에 경찰들은 술렁였다. 김 반장님은 당황한 얼굴로 반문했다. “하지만 탐정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저희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유진 탐정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아니. 이 방은 처음부터, 그리고 이 순간까지도 열려 있었지. 단지 자네들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천천히, 마치 춤을 추듯 방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박사가 쓰러진 방향, 그리고 그 손이 허공에서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박사를 내려다보고 있는, 눈동자 없는 자동인형의 차가운 금속 얼굴에.
“자, 이제부터 이 낡은 기계장치 속에서 숨겨진 진짜 톱니바퀴를 찾아볼까.”
나는 그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펜을 꽉 움켜쥐었다.
이것이 한유진 탐정의 방식이었다.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것 속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방식.
강태호 박사의 밀실 살인 사건은 이제 막 거대한 태엽을 감기 시작한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