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심연의 속삭임

여명호의 함교는 칠흑 같은 심우주 한가운데 떠 있었다. 거대한 창밖으로는 무수한 별들이 차가운 빛을 뿌렸지만, 함교 안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무거웠다. 며칠 전, 미지의 성단 ‘메두사의 눈물’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그것’ 때문이었다.

“에너지 반응은 여전히 ‘제로’입니다, 선장님.”
부선장 김하진이 뚫어져라 홀로그램 콘솔을 응시하며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분석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 물질은… 지구상에 알려진 그 어떤 원소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아무것도 아님’이라고만 나옵니다.”

선장 이지혁은 굳은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칠흑 같은 금속성 외피에 뒤덮인 기묘한 육각형 구조물. 손바닥만 한 크기였지만, 그 존재감은 여명호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 ‘아무것도 아님’이 우리 함선 주요 시스템에 미미한 간섭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 설명해 줄 수 있나, 김 부선장?” 이지혁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하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간헐적으로… 아주 미세한 전자기장 교란이 감지됩니다. 특정 주파수에서만요. 하지만 유물 자체에서는 어떤 에너지 방출도 없습니다.”

“그게 더 섬뜩한 거 아닙니까, 선장님?”
탐사대장 박서연이 유물이 보관된 격리실의 CCTV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늘 대담하고 거침없었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불안감이 스며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우리를 뒤흔들고 있다는 거잖아요. 어제 밤에도… 저 혼자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유리컵에 담긴 물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함선 내부에 설치된 센서는 아무런 진동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꿈이라니?” 의무관 최유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서연의 안색이 어젯밤부터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깊은 심해 같은 곳이었어요. 시야는 온통 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뭔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어요. 하지만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파동 같은 거였어요.” 서연은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함선 동력부에 부하가 걸리는 건 분명합니다, 선장님.”
기술장 강민준이 거친 숨을 내쉬며 보고했다. 그의 손은 키보드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원인 불명의 에너지 소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장 임계치는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워프 엔진 가동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이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유물 때문인가?”
“추정만 가능합니다. 유물이 활성 상태도 아니고, 어떤 직접적인 연결도 없는데… 마치 함선 자체가 그 존재에 이끌려 에너지를 잃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명이 안 됩니다.” 민준의 목소리에 절망감이 묻어났다.

“우리…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최유리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격리실 유물을 향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저 유물 주위는 너무 고요했어요. 죽은 행성 조각들만 둥둥 떠다니는 곳에, 홀로 완벽한 형태로…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지혁은 심호흡을 했다. “선원들의 정신 상태는 어떤가, 최 의무관?”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불면증을 호소하는 선원들이 늘었습니다. ‘속삭임’을 들었다는 이들도 있고요.”
서연이 몸을 떨었다. “제가 들었던 것과 비슷합니까?”
“그렇습니다. 특정한 언어가 아닌, 뇌리에 직접 울리는 듯한… 불쾌한 파동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때였다.

격리실 안의 유물이… 아주 미세하게, 칠흑 같은 표면에서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심해어가 발광하는 것처럼.

“선장님! 유물에서 에너지 방출이 감지됩니다!” 김하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방출 패턴 분석!” 이지혁이 소리쳤다.
강민준은 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측정 불가능합니다! 기존 데이터와 일치하는 패턴이 없습니다! 그리고… 함선 내부의 모든 조명이… 깜빡입니다!”

함교 전체의 조명이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환하게 비추던 스크린들이 일제히 지직거렸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낮은 윙윙거리는 소리가 함선 전체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뇌 속을 직접 울리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

“으윽… 머리가…!” 최유리가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녀의 얼굴은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박서연은 유물이 담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보여요… 보여요, 선장님…!”
“뭐가 보인다는 건가, 박 탐사대장!” 이지혁이 다그쳤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길이… 길이 생기고 있어요…! 저를… 부르고 있어요…!” 서연의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그녀의 동공은 극도로 확장되어 있었다.
“박 탐사대장, 진정해!” 김하진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서연은 뿌리치고 격리실 문을 향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격리실 문 강제 잠금! 서연, 멈춰!” 이지혁의 명령이 떨어졌다.
강민준이 비상 정지 버튼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함선 전체가 거대한 충격파에 휩싸였다.

콰아앙!

모든 전원이 나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 함교를 집어삼켰다.
유일한 빛은 격리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하게 발광하는 육각형 유물의 희미한 푸른빛뿐이었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박서연의 형체가 어둠 속에서 홀린 듯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박 서연!!!” 이지혁의 절규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침묵만이 남았다. 정적 속에서, 유물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답하듯, 여명호의 모든 시스템을 잠식하며 속삭이고 있었다.

‘어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