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차가운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낡은 창문 틈으로 스며든 겨울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김현우는 쭈그려 앉아 식어버린 컵라면을 뜨지 않은 채 그저 창밖을 응시했다. 해질녘의 서울은 수많은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은 그의 낡고 초라한 옥탑방까지는 닿지 않았다. 아니, 닿을 수 없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빛이 그를 피해 가는 것처럼.

거울 속 제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때 번뜩이던 눈빛은 어둠에 잠식되어 탁해졌고, 단단했던 어깨는 구부정하게 꺾여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자란 머리카락과 거뭇하게 내려앉은 수염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아왔는지를 말해주었다.

“젠장….”

현우는 낮게 읊조렸다. 쉰 목소리가 비에 젖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손가락 끝은 닳아빠진 스마트폰을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렸다. 배경 화면은 빛바랜 사진이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두 젊은이. 한 명은 자신,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이준호.

‘이준호.’

그 이름이 혀끝에 닿자마자, 텅 비어 있던 현우의 심장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때는 모든 것이 찬란했다. 두 사람은 그림자처럼 함께였다. 세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구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힘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현우와 준호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거야, 현우!” 준호의 눈은 별처럼 빛났고, 현우는 그 빛을 믿었다. 그들이 찾은 ‘힘의 정수’를 함께 나누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준호는 그 약속을 깨뜨렸다. 현우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치밀하고 잔인하게 모든 것을 훔쳐갔다. 현우의 자격, 그의 운명, 그리고 그가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그가 가진 전부를 빼앗아 가면서, 준호는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 현우. 하지만 이건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거였어. 넌… 너무 물러.”*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현우는 한밤중의 숲속에 버려졌다. 힘의 정수가 그의 몸에서 뿌리째 뽑혀 나가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불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때, 세상은 이미 준호를 새로운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현우는 폐허가 된 그림자 속에 버려진 채, 단 한 걸음도 세상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의 모든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힘의 정수’가 준호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반응했다. 준호의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장막이 쳐져 있었다.

그 후 3년.

현우는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연명했다. 가끔 환각처럼 과거의 영광이 스쳐 지나갈 때면, 비참한 현실이 더욱 그를 옥죄었다. 살아남는 것이 복수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빈속에 찬물을 들이켜고, 낡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을 청하려던 순간이었다. 낡은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이준호 회장은 도심 재건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념하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 것’이라며….”

‘이준호 회장.’

현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이 스크린 속 준호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3년 전과 변함없는, 아니 오히려 더욱 세련되고 당당해진 미소. 그는 이제 성공한 사업가이자, 국가가 인정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의 연합, ‘수호회’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으리으리한 신축 빌딩의 전경이 펼쳐졌다. 현우가 꿈꿨던 이상적인 미래를 준호는 혼자서 이루어내고 있었다. 현우가 바닥에서 뒹구는 동안.

가슴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불덩이가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현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끓어오르는 분노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바로 그때였다.

옥탑방 바닥의 갈라진 틈새 사이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약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빛을 내뿜었다. 현우는 숨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그 빛에 못 박혔다. 잊고 지냈던, 그러나 그의 혈관 속에 깊이 새겨져 있던 미약한 힘의 파동.

‘이것은…!’

그것은 그가 준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후에도, 그의 몸속에 남아있던 최후의 조각이었다. 너무나 미약해서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마치 먼지 같은 조각. 그러나 지금, 준호의 모습을 본 순간, 그 조각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비록 본래의 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조각이었지만, 그것은 현우에게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복수의 맹세.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빼앗긴 것을 되찾고,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에게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할, 피와 살을 찢는 듯한 갈증이었다.

현우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낡은 옥탑방은 여전히 차가웠고, 밖에서는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어둠에 잠식되지 않았다. 탁했던 눈동자 속에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컵라면을 버리고, 방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낡은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녹슨 칼날 하나와, 찢어진 지도 조각 몇 개가 전부였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 속에서, 현우는 처음으로 ‘시작’을 느꼈다.

“이준호… 네가 훔쳐간 모든 것을, 기필코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네 목숨으로도 부족할 거야.”

그의 낮은 목소리는 더 이상 절망에 잠겨 있지 않았다. 그것은 굶주린 맹수의 으르렁거림과 같았다. 도시의 불빛 속으로 스며드는 어둠처럼, 현우는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폐허의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