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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룬의 비명

강하준은 숨을 죽였다. 코끝을 스치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낡은 쇠붙이의 비릿한 내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마력의 기운.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지하 심층부는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금기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나 감지 능력은 지난 몇 주간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파동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마법 실험의 잔재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는 듯한, 기분 나쁜 파동.

차가운 돌벽에 등을 기댄 채, 하준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강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고대 룬 문자가 문설주를 따라 새겨져 있었으나, 그 마법은 봉인보다는 억압에 가까웠다. 문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은 파란색과 붉은색이 뒤섞여 기이한 섬광을 만들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수십 개의 봉인 마법과 감지 마법을 통과해야 했다. 학원의 어떤 자료에도 이곳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하아… 미쳤지, 내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텅 빈 지하 통로에 울림만이 돌아왔다. 이대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척. 하지만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충동이 발목을 잡았다. 저 문 너머에, 뭔가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다는 확신.

하준은 손바닥에 마나를 모았다. 손끝에서 푸른빛이 일렁였다. 일반적인 마력으로 강철 문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특기인 ‘마력 간섭’을 사용하기로 했다. 문에 새겨진 룬 마법의 흐름을 읽어내고, 그 약점을 찾아 파고드는 기술. 섬세하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자칫 마법이 폭주하면 지하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손을 문에 대자, 차가운 강철의 기운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웅- 하는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문 너머의 ‘그것’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준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룬 문자 하나하나에 깃든 마나의 흐름을 읽어냈다. 봉인 마법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더 원시적이고 잔혹한 힘이 숨겨져 있었다.

‘이건… 봉인이 아니라, 통제인가?’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단순히 무언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을 조종하려는 듯한 흐름. 특정 주파수에 맞춰 자신의 마나를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마치 거대한 자물쇠의 홈에 열쇠를 끼워 넣는 것처럼.

**츠으으으읍-**

문설주를 따라 새겨진 룬 문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마법의 균형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낀 하준은 이를 악물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끝이 저릿했다.

**끼이이이익- 쿠우웅!**

거대한 강철 문이 마침내 열렸다. 굉음이 지하 통로를 울렸다. 하준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문이 열리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마력과 함께, 역겨운 비린내와 기계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문 너머는 거대한 동굴이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지하 격납고에 가까웠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높게 솟아 있었고, 푸른빛을 내는 마력 광석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그 빛 아래, 하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인들이었다.**

검은색과 회색의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거대한 형체들. 높이만 해도 족히 10미터는 넘어 보였다. 각 거인들은 복잡한 룬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두르고 있었고, 팔과 다리에는 묵직한 무기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설 속의 마법 갑옷이나 골렘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마법과 기계가 끔찍하게 융합된, 말 그대로 ‘흑철의 기동병기’였다.

“이게… 대체….”

하준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은 동굴 중앙에 정렬된 다섯 대의 기동병기들을 훑었다. 모두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었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거대한 압력이 느껴졌다. 각각의 기동병기 옆에는 복잡한 마나 공급 장치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튜브와 케이블들이 거인의 몸체로 이어져, 마치 거대한 생명체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처럼 보였다.

하준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동굴 바닥에 부딪혀 울렸다. 기동병기들은 마치 죽은 듯 고요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희미한, 그러나 끊이지 않는… **흐느낌**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하준은 가장 가까운 기동병기로 다가갔다. 검은 강철로 이루어진 거인의 심장부, 즉 조종석이 될 법한 곳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투명한 마력 수정으로 된 덮개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 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준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마력 수정을 만졌다. 차가운 유리벽 너머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흐느낌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게 뭐야… 설마…”

그는 숨을 멈췄다. 수정 너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빛, 노란빛, 붉은빛… 마치 작은 별들이 어둠 속에서 고통스럽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 빛은 불규칙하게 깜빡였고, 그럴 때마다 흐느낌은 더욱 격렬해졌다.

하준은 눈을 비볐다. 그리고 충격으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빛의 정체는… **마법사의 코어였다.**

아르카나 학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순수한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들의 심장부. 마나 회로의 정수. 저 빛은 수많은 마법사들의 코어들이 억지로 한데 뭉쳐진 것이었다. 고통 속에서, 그들은 기동병기의 동력원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나가 비명처럼 울부짖으며 기계를 움직이고 있었다.

“미쳤어… 학원이… 이런 짓을….”

그의 입에서 절규와도 같은 말이 터져 나오려던 찰나였다.

**쉬이이이이익-**

등 뒤에서 섬뜩한 기계음이 들렸다. 하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동굴 중앙에 서 있던 또 다른 기동병기 한 대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대한 눈이 될 법한 부분이 붉은빛으로 번뜩였다. 뭉툭한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여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몸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외부인 침입 감지. 즉시 제거한다.」

차가운 기계음 뒤에, 섬뜩할 정도로 정돈된 마법의 기운이 끓어올랐다. 하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알던 어떤 마법보다도 강하고, 끔찍하게 순수한 파괴의 마력이었다. 조종석에서 빛나던 푸른 별들, 그 마법사들의 비명은 더욱 거세졌다.

**쿠우우우우웅!**

거인의 첫 발걸음이 동굴 전체를 흔들었다. 하준은 굳어버린 다리를 겨우 움직여 뒤로 물러섰다. 그는 직감했다. 이 거인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수많은 마법사들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움직이는, 살아있는 금기였다. 그리고 지금, 그 금기가 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탈칵!**

벽면에 숨겨진 비상등이 깜빡거리며 붉은 경고음을 냈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 하준은 깨달았다. 학원의 이름, ‘아르카나’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비밀, 그리고 금기를 뜻하는 단어.

그리고 그 금기가,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나 그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