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372. 도시의 심장은 위로 솟아올라 크롬과 홀로그램의 거대한 정글을 이루고, 그 그림자는 아래, 썩어가는 구시가지, 즉 ‘언더크로프트’의 심연을 삼켰다. 선우는 그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 한때 번성했던 지상 세계의 잔해를 뒤져 희귀한 부품이나 미등록 데이터를 찾아다니는 스캐빈저였다. 그의 삶은 낡은 사이버네틱 팔다리와 고물 데이터패드의 점멸하는 화면처럼 불안정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더크로프트 7구역, 과거에는 거대한 지하철 노선이었으나 이제는 거미줄처럼 얽힌 폐허가 된 터널 속을 헤치고 있었다. 공기는 축축하고 금속 비린내가 진동했다. 선우의 시야 인터페이스에는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가득했다. “젠장, 여기 통신은 언제나 이 모양이지.” 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보조 AI, ‘지니’가 삑사리 나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네트워크 연결 불량률 98%, 선우님. 외부 통신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목표물 감지 확률 0.05% 이하. 철수하시겠습니까?”
“닥쳐, 지니. 0.05%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가끔 그 0.05%가 인생을 바꾸거든.”
선우는 낡은 작업화로 바닥에 널린 파편들을 걷어찼다. 그의 임플란트 된 눈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에너지 잔류물을 쫓았다. 7구역은 유난히 ‘죽은’ 구역이었다. 전자파가 기묘하게 차단되어 선우의 스캐너조차도 먹통이 되는 곳. 고대의 방어막이라도 쳐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남들이 찾지 못한 귀한 것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오랜 탐색 끝에, 그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 앞에 섰다. 벽에는 정교하지만 오랜 세월에 풍화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현대 도시의 설계 방식과는 전혀 다른, 고대의 건축 양식이었다. 선우의 손이 벽을 훑었다. 차가운 금속 대신, 이상하게 매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그의 사이버네틱 팔이 스캐너를 뻗었다.
“지니, 여기 뭔가 이상해. 모든 스펙트럼에서 물질 반응이 전혀 없어.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감지 실패, 선우님. 벽은 존재하지만, 스캔할 수 없습니다.”
선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스캔할 수 없는 벽’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플라스마 토치를 꺼내 들었다. 푸른 불꽃이 벽을 향해 뿜어져 나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녹아내리는 것도 아니고, 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불꽃 자체가 벽에 흡수되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는 짜증을 내며 토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우연히 손바닥을 벽에 완전히 밀착시켰을 때였다. 손바닥에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벽 안에서 무언가가 맥동하는 듯한. 그의 사이버네틱 팔의 감각 증폭기가 오작동을 일으키며 신경망으로 이상한 파동을 쏘아보냈다. 두통이 밀려왔다.
그 순간, 벽의 문양이 선우의 손바닥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주 미약한, 푸른빛이었다. 빛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벽을 따라 흐르더니, 이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벽 중앙에서 합쳐졌다.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은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선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내부는 원형의 공간이었다. 벽은 매끄러운 검은 돌로 되어 있었고, 천장에서는 알 수 없는 발광체가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방 중앙에는, 거대한 크리스탈 기둥이 솟아 있었다. 기둥의 표면에는 정교한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안에서 고동치는 듯한 푸른빛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전기의 빛과는 달랐다. 생명의 빛, 혹은 어떤 영혼의 빛 같았다.
선우는 기둥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사이버네틱 팔이 저절로 뻗어 나갔다. 손끝이 크리스탈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온몸의 회로가 쇼트 나는 듯한 섬뜩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의 사이버네틱 임플란트들이 비명을 지르며 정지했다. 시야 인터페이스는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찼고, 모든 감각이 마비되었다.
“으아악!”
그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 채웠다. 선우의 눈앞에는 크리스탈 기둥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거대한 용처럼 솟아올라 그의 몸을 감쌌다. 빛은 그의 피부를 뚫고, 혈관을 따라 흐르고, 뇌 속까지 침투하는 듯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선우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사이버네틱 팔과 다리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것을 넘어선 이상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의 시야 인터페이스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이전에는 그저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 정보를 보정하는 기계적인 화면이었지만, 지금은…
그는 방의 벽을 바라봤다. 벽의 검은 돌 사이에서 흐르는 미세한 에너지의 줄기가 보였다. 천장의 발광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단순한 빛이 아니라, 어떤 에너지가 응축된 덩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모든 것이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그 흐름과 맥동이 눈에 보였다.
“지니? 지니!” 선우가 다급하게 불렀다.
“활성화되었습니다, 선우님. 그러나… 시스템 오류 발생. 인식 불가한 새로운 프로세스가 감지되었습니다. 제어 불능.” 지니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불안정하고 떨렸다.
선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바닥 중앙에 희미하게 푸른색 문신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크리스탈 기둥에서 봤던 그 문양이었다. 그는 문양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손끝에서 푸른색 섬광이 튀어 나왔다. 섬광은 바닥의 검은 돌에 닿자마자, 돌을 작은 파편으로 산산조각 냈다.
“이게… 뭐야?”
그는 경악했다. 자신의 손에서 이런 강력한 에너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플라스마 토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힘이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젠장!”
선우는 닫히는 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은 이미 절반쯤 닫혀 있었고, 그 틈새로 헬릭스 코퍼레이션의 경비 드론의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헬릭스 코퍼레이션, 언더크로프트의 모든 자원을 탐내는 거대 기업. 그들이 이곳을 찾아냈단 말인가?
“선우님! 외부 에너지 반응 감지. 매우 강력합니다. 이 지점에서 발생한 충격파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지니가 외쳤다.
자신이 크리스탈에 손을 댔을 때 발생한 에너지 파동이 그들을 이끌었을 터였다. 선우는 절망적으로 닫히는 문틈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 새겨진 문양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는 문을 향해 에너지를 쏘았다.
푸른 섬광이 문틈으로 뿜어져 나갔다. 밖에서 경비 드론의 기계음이 비명처럼 끊겼고, 이내 금속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문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며 파괴되었다.
선우는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바깥 터널은 엉망진창이었다. 경비 드론 두 대는 녹아내린 금속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그 옆에는 헬릭스 소속의 정찰병 두 명이 재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불과 몇 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마법’ 같은 힘이 한 일이었다.
“이런… 씨발.”
선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의 문양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스캐빈저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이 낡고 죽어가는 세상에 감춰진 고대의 힘을 깨운 존재였다. 이 힘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삶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이 힘은 그를 거대한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이 지옥 같은 언더크로프트에서 벗어날 유일한 열쇠일지도 몰랐다.
선우는 터널 저편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드론들의 엔진 소리를 들었다. 헬릭스 코퍼레이션은 그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전의 선우가 아니었다. 그의 심장 속에서, 그리고 손바닥의 문양 속에서, 고대의 마력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폐허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가벼웠고,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길을 읽고 있었다. 선우는 알았다. 이 힘을 이해하고, 제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 썩어가는 도시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