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화: 벽장 속의 속삭임

민준은 익숙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푹신한 소파가 하루 종일 뻣뻣하게 굳었던 어깨를 받아주는 느낌은 언제나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이 고층 아파트의 18층 거실은 삭막한 도시의 야경을 한눈에 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수많은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 아득한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민준의 시선은 그 현란한 풍경에 머물지 못했다. 그의 눈은 거실 한가운데, 방금 전까지 멀쩡히 놓여 있던 커피잔이 사라진 자리를 맴돌았다.

분명히, 여기에 두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하… 피곤한가 보네.”

민준은 낮게 중얼거렸다. 피곤하면 헛것이 보인다는 말처럼, 피곤하면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잊을 수 있는 법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주변을 더듬었다. 혹시 바닥에 떨어져 보이지 않는 건가? 테이블 아래를 들여다보고, 옆에 놓인 책꽂이까지 뒤졌지만 커피잔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냉장고 문을 열어 탄산수를 꺼냈다. 컵을 들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라졌던 커피잔이 소파 테이블 정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와 함께.

민준은 자신이 들고 있던 탄산수 컵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심장이 갑작스레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의 손끝이 저릿했다.

“이게… 뭐지?”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누가 장난을 친 건가? 하지만 그는 이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오늘 방문한 사람도 없었다. 도어락은 완벽하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등골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커피잔에 다가갔다. 커피는 아직 따뜻했다. 방금 전 자신이 내려 마신 커피가 맞았다. 찻잔 테두리에 희미하게 묻은 그의 입술 자국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는 애써 머릿속의 비현실적인 생각을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그래,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야. 아니면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그는 커피잔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에 컵을 내려놓으며 그는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떨리고 있었다.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커피잔이 저절로 제자리를 찾아오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결국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 검색창에 ‘폴터가이스트’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괴기스러운 경험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건이 저절로 움직이고, 소리가 나고, 사람을 밀치기도 한다는 내용들.

“젠장… 설마.”

그는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가 없어.

그때였다.
안방 문밖에서 ‘끄으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낡은 나무 문이 서서히 열리는 듯한 소리. 민준은 숨을 멈췄다. 온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의 문을 응시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착각일까?

‘끼이익…’

이번에는 좀 더 분명하게 들렸다.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오래된 가구가 마찰하며 내는 듯한, 으스스한 소리. 민준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맨발로 바닥에 섰을 때, 발밑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냉기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분명히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보일러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었다. 복도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는 벽을 더듬어 거실 불을 켰다.

환하게 밝아진 거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아무것도 움직인 흔적이 없었다.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미쳤나 봐…”

그는 중얼거리며 불을 끄려 손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

‘쾅!’

거실 끝에 위치한 다용도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굉음은 아파트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민준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을 느꼈다. 몸이 굳어버렸다.

다용도실은 평소 잡다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었고,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저절로 열릴 리 없었다. 그는 천천히,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다용도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이 열린 틈 사이로 어둠이 더욱 깊게 느껴졌다. 습하고 퀴퀴한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한, 금속성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저 멀리 우주선이 엔진을 가동하는 듯한, 이상하고 기계적인 소리. 그 소리는 일반적인 잡음과는 달랐다. 뇌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듯한, 미세한 진동을 동반한 소리였다.

민준은 손을 뻗어 다용도실 안의 전등 스위치를 켰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전구가 깜박이며 어둠을 걷어냈다.

그는 경악했다.
다용도실 안은 난장판이었다. 선반 위의 물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걸려 있던 빗자루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캔 음료수들은 터져서 내용물이 벽에 흥건하게 튀어 있었다. 마치 회오리바람이라도 휩쓸고 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난장판 속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민준의 눈에 들어왔다.

벽 한쪽 구석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이상한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그 문양은 마치 고대 문자의 조각 같기도 하고, 복잡한 회로도 같기도 했다. 그 문양 주변의 벽지는 미세하게 일렁이며, 마치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공간이 왜곡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왜곡된 공간 너머에서, 아까 들었던 금속성의 웅웅거림이 한층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민준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이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현실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웅… 웅… 웅…’

소리는 점점 커지고, 벽의 문양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왜곡되는 공간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압축된 채 존재하려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민준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그의 발은 바닥에 단단히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다용도실 안쪽 구석에 놓여 있던 낡은 거울이 ‘쨍그랑!’ 하고 깨지는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그리고 그 거울 파편들이 바닥에 흩뿌려지는 순간, 푸른빛 문양의 왜곡된 공간 속에서, 마치 희미한 잔상처럼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민준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는 섬뜩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숨이 막혔다.
그것은 단순히 ‘본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 눈동자에 흡수되는 듯한, 아득하고 초월적인 공포였다.

“흐읍… 흐으읍…”

민준은 겨우 목구멍에서 쉰 소리를 짜냈다.
다용도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그건 물리적인 바람이 아니었다. 마치 저 멀리, 우주의 심연에서 불어오는 듯한, 알 수 없는 존재의 차가운 숨결이었다.

그 거대한 눈동자가, 일렁이는 푸른 문양 너머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확신했다.
그것은 이 아파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를, 아니, 이 현실을 ‘뚫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차원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웅… 웅… 웅…’

거대한 진동이 온몸을 때렸다. 민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 차가운 것이 그의 발목을 쥐는 느낌에,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