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심연의 도서관

아르카나 학원의 아침은 언제나 빛으로 가득했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중앙 복도는 새벽의 서늘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학생들의 마법 활성화 연습으로 웅웅거렸다. 오색 찬란한 마력의 물결이 유리창을 때리고, 공중을 가르는 비행 스펠의 잔상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곳은 대륙 최고의 마법 수재들이 모이는 곳, 지식과 영광의 요람이었다.

“야, 지훈! 너 또 잠결에 마법 활성화했냐? 네 책상 위에 서리꽃 피었어.”

서연의 깐깐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지훈은 나른한 하품을 꾹 삼키며 비몽사몽 한 눈으로 제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낡은 마법서 위에 영롱한 푸른빛을 띠는 얼음 결정이 맺혀 있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아침부터 마력 제어가 잘 안되네. 밤새 마법진 역사 책 붙들고 씨름했더니.”

“씨름이 아니라 코 골고 잤겠지.”

옆자리 민준이 낄낄거리며 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민준은 언제나 태평했다. 지훈이 밤마다 지하 서고에서 찾아온 금지된 마법서의 복사본을 몰래 읽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흥미롭겠네’ 하고 말 뿐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달랐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은 언제나 지훈의 무모한 호기심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다 교수님께 들키면 영창이야, 지훈아. 금지된 지식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그 금지된 이유가 뭔데? 역대급 천재들이 왜 다 미치광이가 됐는지, 그들이 뭘 탐구하다가 흑마법사로 낙인찍혔는지 궁금하지 않아? 학원 교과서에는 그냥 ‘마력을 너무 탐구해서’라고만 나와 있잖아.”

지훈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 흥미를 느끼곤 했다. 빛나는 마법 대신, 그림자 속에 숨겨진 금지된 마법의 역사에 매료되어 있었다. 특히 최근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학원 지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아르카나 서고’에 대한 소문이었다. 공식적으로는 폐쇄된 지 오래된 고서 보관실이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괴이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오늘 밤에 서연 너도 같이 가야 돼. ‘마력 결정화에 따른 영혼 전이 현상’ 보고서 때문에 지하 서고에서 자료를 좀 더 찾아야 할 것 같아.”

지훈이 서연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서연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내 최고 수준의 마법 실력을 가진 그녀도 가끔 지훈의 무모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건 아마 지훈이 가진 묘한 설득력, 혹은 그 호기심 어린 눈빛 때문일 것이다.

***

깊은 밤, 아르카나 학원은 낮의 활기찬 분위기를 벗고 고요한 성채로 변모했다. 달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내리며, 복도 바닥에 알록달록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훈, 서연, 그리고 민준은 경비 마법이 느슨해지는 자정을 틈타 지하 서고로 향했다.

“여기로 들어가는 거 확실해?”

민준이 손에 든 마력등을 비추며 낡은 나무 문을 가리켰다. 다른 서고들과는 달리 이 문은 마력이 전혀 흐르지 않는 듯 검고 음침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문고리에는 녹이 잔뜩 슬어 있었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 기록에 따르면 여기가 예전에 마법진 연구실이었고, 그 아래에 고서 보관실이 있었다고 해.”

지훈이 특유의 대담함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문이 조금씩 열렸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차갑고 습한 공기, 그리고 묵은 먼지 냄새였다. 마력등을 든 민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거… 좀 아닌 것 같은데. 으스스해.”

“쫄지 마. 그냥 오래된 곳이라 그래.”

지훈이 먼저 발을 내디뎠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천장을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뒤덮은 듯 답답하고 불쾌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고, 양옆으로는 폐쇄된 연구실들처럼 보이는 공간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법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로 낡은 실험 기구들과 깨진 비커들이 뒹굴고 있었다.

이따금 벽에 새겨진 마법진들이 흐릿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 기운은 너무나도 음침하여 오히려 공포감을 조성했다. 단순한 잊혀진 마법이 아니었다.

한참을 걸어 복도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철문이 앞을 막고 있었다. 문에는 복잡하고 기괴한 형상의 봉인 마법진이 여러 겹으로 겹쳐 새겨져 있었다. 단순히 ‘닫혀 있음’을 넘어선, ‘절대 열리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가두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건… 금지된 봉인 마법인데?”

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지훈도 봉인 마법진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어떤 마법보다도 강렬하고 불길한 기운이 철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아래에 뭐가 있길래 이런 걸…”

지훈이 문에 손을 대려던 찰나, 서연이 그의 팔을 잡아챘다.

“만지지 마! 이 마력은 위험해. 보통 봉인 마법이 아니야. 이건…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어. 심장을 옥죄는 듯한 불쾌한 기운이야.”

그때, 민준의 마력등이 갑자기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민준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마력등을 흔들었지만, 불빛은 더욱 약해지며 결국 완전히 꺼져버렸다. 암흑이 세 사람을 집어삼켰다.

“이, 이거 뭐야? 왜 갑자기…”

민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지훈도 등골이 오싹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일 리 없었다. 그들이 철문 앞에 다다르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꿰뚫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어 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스스슥… 마치 거대한 벌레가 땅을 기어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동시에 귓가에 맴도는 듯한 섬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그림자 아래에서…*
— *영원히 속박된…*
— *탐하는 자… 파멸하리라…*

속삭임은 여러 개의 목소리가 뒤섞인 듯했고, 그 중 일부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어로 들렸다. 공포에 질린 민준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려 할 때, 지훈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철문 아래, 봉인 마법진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작은 틈이었다. 그 틈새로 붉고 습한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빛 속에서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듯했다. 살점 같기도 하고, 핏줄 같기도 한 그것은 점점 더 틈을 비집고 나왔고,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눈동자였다. 핏발 선 노란색 눈동자가 철문 틈새로 지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끝없는 허기와 고통이 담긴 그 눈은 마치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젠장…!”

지훈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서연의 입에서 가늘고 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차갑고 끈적이는 것이 서연의 발목을 휘감은 것이다. 지훈이 급히 마법을 외우며 불꽃을 일으켰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어둠을 밝혔다. 서연의 발목을 휘감고 있던 것은… 핏줄이 튀어나온, 말라비틀어진 인간의 팔이었다. 지하 서고의 차가운 바닥에서 솟아나온 듯한 그 팔은 서연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불꽃이 닿자마자, 팔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찔거리며 그녀를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려 했다.

“서연!”

지훈이 서연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철문에서 터져 나온 핏빛 눈동자가 더욱 크게 번뜩이며, 그들을 향해 알 수 없는 고대어로 된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끔찍하고 거대한 존재의 포효였다.

그와 동시에, 지하 서고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굵은 돌멩이들이 떨어져 내리고, 벽에 새겨진 낡은 마법진들이 미친 듯이 붉게 타올랐다.

그곳에는 단순히 잊혀진 지식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르카나 학원의 가장 깊은 곳, 지하의 심연에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존재가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