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그림자처럼 드리운 던전의 깊은 곳,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낡은 가죽 갑옷은 이미 몇 번이나 찢기고 기워 너덜거렸고, 닳아빠진 단검은 날카로움을 잃은 지 오래였다. 강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지만, 그 안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이글거렸다.
저벅. 저벅.
축축한 바닥에 발이 닿을 때마다 약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던전은 한때 초보자들의 놀이터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사냥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우에게 이곳은 시작점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맨바닥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그에게, 이곳은 복수의 첫 걸음을 내딛는 신성한 장소였다.
“젠장….”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 쓰라린 기억은 매일 밤 악몽처럼 그를 찾아왔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던 날. 누구보다 믿었던 친구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던 그 날.
*그의 이름은 이현준이었다.*
함께 밤을 새워가며 공략집을 만들고, 던전의 비밀을 파헤치고, 게임 속 모든 영광을 함께 나눴던 둘도 없는 친구. 그랬던 현준이, 그의 뒤통수를 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길드원들의 눈먼 믿음을 이용해 진우의 길드를 빼앗고, 그의 모든 자산을 강탈한 뒤, 결국 게임 시스템을 이용해 그의 캐릭터를 영구 정지시켜 버렸던 그 날. 진우는 모든 것을 잃었다. 모든 추억, 모든 노력, 모든 영광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다시 시작했을 때,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한 명의 초보자.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지울 수 없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복수.*
진우는 이를 악물고 눈앞의 몬스터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낡고 녹슨 단검이 흐릿한 빛을 내며 몬스터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그림자 칼날’ 스킬 발동! 치명타!]
\[Lv.5 ‘거미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고작 이딴 녀석들로는 어림없지.”
현준은 이제 게임 내에서 손꼽히는 거대 길드의 마스터였다.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신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남들이 모르는 방법, 남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강해져야 했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였다.
진우는 던전의 가장 깊은 곳, 모두가 무시하는 작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 던전의 숨겨진 비밀 통로였다. 통로는 좁고 어두웠으며, 간간이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한참을 기어 들어갔을까, 이내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중앙에는 거대한 뼈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마치 왕좌에 앉은 듯한 형상의 몬스터가 웅크리고 있었다. 붉은색의 눈은 끈적한 빛을 내뿜고, 온몸은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보스 몬스터 ‘뼈의 군주, 크루락’]
\[레벨: 50]
진우의 현재 레벨은 고작 12.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격차였다. 하지만 진우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몬스터를 응시했다. 그는 이 몬스터의 모든 약점을 꿰뚫고 있었다. 수백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공략법이었다.
“나와라, 그림자 동반자!”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며 작은 그림자 형상이 나타났다. 진우가 가진 유일한 소환 스킬, 그리고 유일하게 강력한 기술이었다. 그림자 동반자는 뼈의 군주에게 달려들었고, 진우는 그 틈을 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그의 전략은 단순했다. 그림자 동반자로 시선을 끌고, 자신은 뼈의 군주가 눈치채지 못하게 뒤로 돌아가 약점을 공격하는 것. 그리고 약점을 공격한 뒤에는 빠르게 도망쳐 다시 숨는 것.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야 하는 지루하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쾅! 크아아아!
뼈의 군주의 거대한 팔이 바닥을 내리찍자, 던전 전체가 진동했다. 그림자 동반자가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수없이 반복했던 일이었다. 다시 그림자 동반자를 소환하고, 몸을 숨기고, 틈을 노렸다.
“지금이다!”
뼈의 군주가 거친 포효와 함께 몸을 돌리는 찰나, 진우는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뼈의 군주의 목덜미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이곳은 뼈의 군주가 유일하게 비늘로 덮여 있지 않은, 숨겨진 약점이었다.
크아악!
뼈의 군주가 비명을 질렀다. 단검은 깊이 박히지는 않았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음을 알 수 있었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도망쳤다. 몬스터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기 전에 다시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온몸은 땀으로 젖어들었고, 손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진우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공격이었다.
뼈의 군주가 지쳐 휘청거리는 순간, 진우는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그림자 동반자를 소환했다. 동시에 자신도 전력을 다해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이게… 내 전부다!”
단검이 뼈의 군주의 목덜미에 깊숙이 박혔다. 동시에 그림자 동반자의 마지막 일격이 몬스터의 머리를 강타했다.
쿠당탕!
거대한 몸체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던전 전체가 다시 한번 진동했다.
\[‘뼈의 군주, 크루락’을 처치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12에서 25로 상승했습니다!]
\[칭호 ‘그림자 사냥꾼’을 획득했습니다.]
\[‘뼈의 군주의 정수’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정령의 어둠’ 스킬북을 획득했습니다.]
눈앞에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단번에 13레벨이 상승하고, 강력한 아이템과 스킬을 얻었다.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하아… 하아… 드디어….”
그의 손에 들린 ‘뼈의 군주의 정수’는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아이템은 일반적인 무기나 방어구가 아니었다. 특정 직업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촉매와 같은 것이었다. 진우가 노렸던 바로 그것.
“이 정수를 통해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는 정수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손에 전해졌다.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시스템 알림이 있었다.
\[월드 이벤트 ‘황금 평원의 개척’이 시작됩니다!]
\[‘황금 평원의 첫 번째 성’을 ‘붉은 맹세 길드’가 점령했습니다!]
붉은 맹세 길드.
익숙한 이름에 진우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식어갔다. 길드의 마스터는 이현준. 그가 모든 것을 앗아간 장본인이었다.
진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 현준아. 잠시 동안의 영광은 만끽해 둬.”
그의 손에 들린 ‘뼈의 군주의 정수’가 검은빛을 더욱 강렬하게 뿜어냈다.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