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낡은 서고의 균열

지우는 마른기침을 큼큼거렸다. 곰팡이 냄새와 묵은 종이 먼지가 뒤섞인 공기는 폐부를 긁어내는 듯했다. 고개를 들자 끝없이 이어지는 낡은 책등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조부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반년. 그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 낡아빠진 서점을 정리하는 일에 반년을 꼬박 바쳤지만, 작업은 진척이 없었다. ‘별이 총총한 밤’이니 ‘아득한 저편의 부름’이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제목의 책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가는 마치 거대한 죽은 나무 같았다.

“이걸 언제 다 치우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점은 온통 먼지와 거미줄 천지였다. 책을 들어낼 때마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몇 권 팔아보려 온라인 중고 서점에 올려봤지만, ‘환상 문학’이니 ‘오컬트 연구’니 하는 분류에 묶인 책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나마 팔리는 건 『세계 고대 신화 집대성』 같은 고전 몇 권뿐이었다. 지우는 가난한 취준생이었다. 졸업 후 몇 번의 낙방을 겪고 이 서점을 물려받았을 땐, 행운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폐지 더미와 씨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오늘은 하다못해 쓸만한 고서라도 찾아내야지.”

그는 팔꿈치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서가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이쪽은 조부께서 특히 아끼셨던 구역인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어둡고 음습했다. 희미한 전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책들은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풍겼다. 먼지 쌓인 책등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권을 꺼내 펼쳐보았지만, 내용은 온통 그림과 알 수 없는 언어로 가득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따금씩 섬뜩한 환영이 스치는 것도 같았다.

“이런 건 대체 왜 모아두신 거야…”

투덜거리며 책을 도로 꽂아 넣으려던 지우의 손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렸다. 낡은 나무 서가 모퉁이에 박힌 돌출부였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먼지를 걷어냈다. 서가의 다른 부분과는 이질적인, 매끈하고 어두운 재질이 드러났다. 검은색 오동나무 같기도 하고, 어딘가 차갑고 단단한 돌 같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더듬어보니 작은 홈이 느껴졌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힘을 주어 밀어보니,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서가 뒤편에서 좁은 틈이 벌어졌다.

지우는 숨을 들이켰다. 틈새 너머는 완벽한 암흑이었다. 묵은 먼지 냄새 사이로 묘하게 서늘하고 비릿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켰다. 좁고 기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의 끝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아니, 방이라기보다는 숨겨진 밀실에 가까웠다.

밀실은 지우가 지금까지 봐온 서점의 어떤 공간보다도 정돈되어 있었다. 먼지는 거의 없었고, 습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가운데에는 낡았지만 잘 보존된 듯 보이는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탁자 아래에 놓인 검은색 상자가 눈에 띄었다. 가로세로 한 뼘 정도 되는 크기. 금속은 아니었다. 흑단보다 더 검고 매끄러운 나무 같았다. 표면에는 미지의 언어로 보이는 음각 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래된 무덤 비문처럼 음산했다.

지우는 홀린 듯 상자 앞으로 다가섰다. 손끝이 닿자마자 섬뜩한 한기가 뼈 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덜컥.’ 손잡이도 없는 상자를 어떻게 열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상자가 스스로 열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내 ‘딸깍’ 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뚜껑이 천천히 위로 들리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상자 안에는 오직 하나의 물건만이 놓여 있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의 돌멩이. 하지만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밤의 심연에 잠겨 있다가 이제 막 건져 올려진 듯, 빛을 삼킨 듯한 검은색이었다. 모든 면이 완벽하게 다면체로 깎여 있었지만, 그 형태는 기하학적이라기보다는 생명체의 일부 같았다. 거무죽죽한 표면 위로 자잘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는데, 그 균열 사이에서 아주 희미하게, 정말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만한 보랏빛 광채가 일렁였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돌멩이에 닿는 순간, 차가움과 동시에 뜨거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뇌리를 강타하는 섬광.

‘콰아아아앙!’

천둥소리 같기도 하고, 심해의 울림 같기도 한 거대한 소리가 그의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더 이상 밀실이 아니었다. 푸른색과 보라색, 검은색이 뒤섞인 환영이 정신을 잠식했다. 이성의 틀을 벗어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별들이 춤추는 심연의 우주. 하지만 그 별들은 일반적인 별이 아니었다. 거대한 눈동자 같기도 하고, 기괴한 육체를 가진 촉수 같기도 한 형체들이 우주 공간을 유영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보았다. 상상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구조물들이 무한한 공간 속에서 비틀리며 솟아오르는 것을. 비유하자면 빌딩보다 큰 산맥들이 통째로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시각은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저 너머의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했다. 마치 오랜 시간 잊혀졌던 어떤 존재의 시선이 그를 꿰뚫는 것 같았다. 낯선 감각들이 그의 신경을 난폭하게 휘저었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이 머릿속에서 웅웅거렸고, 알 수 없는 공포와 경외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지우는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몸을 뒤로 젖혔다. 눈을 깜빡이자 다시 낡은 밀실의 풍경이 돌아왔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호흡이 가빴다. 하지만 방금 본 환영은 너무나 생생해서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았다. 손에 들린 검은 돌멩이는 여전히 희미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조금 전의 차갑고 뜨거운 감각 대신, 이제는 돌멩이 안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돌멩이 자체가 느리게 고동치는 심장인 것처럼.

“이… 이건 대체….”

말문이 막혔다. 이 돌멩이가 환영을 보여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것일까? 하지만 방금 느꼈던 압도적인 공포와 경외감은 생생하게 그를 짓눌렀다. 평범한 돌멩이일 리가 없었다. 분명하다. 지우는 돌멩이를 든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낡은 서점, 그리고 그 안의 숨겨진 밀실. 조부께서 대체 무엇을 숨겨왔던 것일까?

주변의 낡은 책들이, 천장에 드리워진 거미줄이, 심지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조차도 이제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그저 낡은 고물이 아니라, 거대한 미지의 힘을 가두어 놓은 감옥처럼 느껴졌다. 손안의 돌멩이가 불길하게 빛났다. 지우는 이 돌멩이가 평범한 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차라리 평범한 고물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돌멩이는 여전히 진동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속삭임이 다시금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지우는 그것을 내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동시에 강력한 이끌림을 느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손아귀를 옥죄는 것 같았다. 이젠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작은 돌멩이가 그의 삶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가 도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