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지후는 늘 그렇듯 밤늦게까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낡았지만 윤기 나는 황동 기어들이 정밀하게 맞물린 자동 커피 추출기가 규칙적인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그날의 마지막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아파트, 도심 빌딩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7층의 작은 공간은, 밖으로는 증기 안개 자욱한 네온사인과 거대한 태엽 시계탑이, 안으로는 그가 직접 개조한 온갖 기계 장치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모든 기계들은 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만의 리듬으로 작동했다. 적어도, 어젯밤까지는 그랬다.

그때였다. 컵에 커피가 채워지는 미세한 소리마저 삼켜버릴 듯한, 아주 희미한 긁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슥, 슥.
쥐라도 들어왔나. 지후는 고개를 젓고 다시 돋보기 속 태엽 부품에 집중했다. 워낙 낡은 아파트라 이런 소음은 이제 일상이었다. 그저 기계의 작동음이 저편에서 울리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작업등을 밝히던 황동 램프의 불꽃이 팍, 하고 크게 한 번 튀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었지만, 오늘은 어딘가 찜찜했다. 그는 완성된 커피를 들고 창가로 향했다. 창밖으로는 거대한 증기선이 느릿하게 하늘을 가로지르고, 아래로는 수많은 태엽 자동차들이 복잡하게 얽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잠시 경치를 감상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등 뒤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책상 위에 세워져 있던, 그가 어릴 때부터 아끼던 자그마한 태엽 인형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쓰러져’ 있었다.

“이런, 언제 떨어졌지?”

지후는 인형을 주워 다시 세웠다. 다리가 헐거워진 탓인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다시 의자에 앉으려는데, 이번에는 거실 한가운데 놓인, 낡은 오르골에서 둔탁한 ‘삐걱’ 소리가 들렸다. 연주 중이 아님에도 오르골의 뚜껑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렸다. 삐걱, 삐걱.

지후는 얼어붙었다. 오르골은 고장 난 지 오래라 태엽을 감아도 소리가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스스로 뚜껑을 열고 있다니.

‘착각인가? 아니, 분명히 봤어.’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싸늘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랐다. 그는 집 안을 둘러봤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했지만, 공기는 전과 달랐다. 끈적하고 무거운, 낯선 기운이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멈춘 곳은 벽에 걸린 낡은 태엽 시계였다. 틱, 톡, 규칙적인 소리를 내던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갑자기 툭, 툭, 불규칙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지후는 숨을 들이켰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구… 누구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식탁 위에 놓여 있던 황동 쟁반이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이번에는 침실에서였다. 지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침실 문이 삐걱, 하고 열리는 소리. 그리고 어두운 방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희미한 그림자.

지후는 천천히 침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혹시 도둑이라도 든 건가? 아니, 저런 건… 도둑의 짓이 아니었다. 그가 침실 문턱에 섰을 때였다. 침대 위, 그가 잠들기 전 늘 읽던 두꺼운 기계 공학 서적들이 공중에 붕, 하고 떠올랐다. 그리고는 퍽, 퍽,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 거칠게 부딪혔다. 종이들이 찢어지고, 가죽 표지가 너덜거렸다.

지후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허공에 떠 있던 책 한 권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책의 빈 페이지 위로, 마치 잉크가 스며들듯, 낡은 글씨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글씨가 아니었다. 톱니바퀴 조각들이, 황동 나사들이, 스프링의 파편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교하게 배열되는 것처럼 움직이며 어떤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후는 떨리는 손으로 황동 램프의 불꽃을 최대로 올렸다. 빛이 글자 위를 비추자, 선명하게 드러난 문장.

**”문… 열… 지… 마…”**

그의 등 뒤에서, 현관문이 덜컥, 하고 크게 한 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