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심연의 그림자
고요호의 함교는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광활한 심우주를 가르는 7년간의 항해. 강재혁 선장은 익숙한 진동과 함께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했다. 무한한 침묵 속, 그는 그저 작은 점에 불과했다. 이 끝없는 여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때로는 그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선장님, 이상 신호 감지.”
이지아 항해사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는 스크린 위를 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은 오류였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의 눈빛에 미묘한 긴장이 서렸다.
“또 오류인가, 이 항해사?” 강재혁은 나른하게 물었다. 오류 경보는 워낙 잦은 일이었다. 우주 먼지가 충돌하거나, 미약한 자기장이 교란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아닙니다. 이번엔… 패턴이 좀 다릅니다. 이전에 관측된 적 없는 에너지 파동입니다.”
스크린에는 희미한 녹색 그래프가 불규칙하게, 그러나 기이하게도 어떤 일정한 리듬을 띠며 춤을 추고 있었다. 단순한 우주 먼지나 미행성의 흔적과는 거리가 먼, 인위적인, 혹은 최소한 알려진 자연 현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파형이었다.
“박선우 박사를 호출해.”
곧장 함교로 달려온 수석 연구원 박선우는 잠에 취한 듯 흐트러진 머리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깊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안경을 치켜 올리고는 빠르게 자신의 개인 단말기를 연결했다.
“흥미롭군요. 주파수 대역이… 아, 잠시만요.”
데이터가 몇 번 번쩍이며 빠르게 재구성되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패드 위를 맹렬히 움직였다.
“…이건…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천체 물리적 현상으로도 해석되지 않는 파동입니다. 마치… 어떤 의도를 가진 것처럼 일정하게 반복되면서도, 동시에 무작위성을 띠고 있습니다.”
강재혁은 미간을 좁혔다. “의도? 박사, 그건 너무 비약 아닌가?”
“가능성입니다, 선장님. 하지만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입니다. 이 정도의 복잡한 신호가 무작위적인 자연현상으로 발생할 확률은, 0에 수렴합니다.”
강재혁은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봤다. 7년. 지겹도록 이어지던 임무. 그리고 지금, 미지의 존재.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심장을 스쳤다.
“위치는?”
“현재 고요호에서 300만 킬로미터 지점입니다. 암흑 성운 지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지아가 보고했다.
“진입 경로 재조정. 해당 좌표로 향한다. 속도는 30% 감속.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원 전투 태세 준비.”
이지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움직였다. 우주선의 항로가 수정되고, 함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김민준 기관장은 이미 무언가를 예감한 듯, 장비 점검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고요호는 미지의 신호를 향해 나아갔다. 수십 시간이 흘렀을까. 검은 성운이 자욱한 심연 속에서, 희미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심연이 스스로 그림자를 뱉어내는 듯했다.
“선장님, 육안 확인 가능합니다.”
이지아의 보고에 강재혁은 메인 스크린에 띄워진 영상을 응시했다. 그리고 순간, 그의 심장이 쿵, 하고 거세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저것은… 대체 무엇인가.
성운의 장막을 뚫고 드러난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형태였다. 검고,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아 마치 주변의 어둠을 흡수하는 듯한 존재감. 크기는 고요호의 절반에 육박했다. 각진 모서리는 있었지만, 그 모든 선들은 완벽한 비례를 이루고 있었다. 인공물임이 분명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완벽함. 하나의 거대한 검은 기둥, 혹은 모노리스.
“맙소사…” 박선우는 넋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심과 함께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건… 우리가 알던 어떤 물질로도 만들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김민준 기관장의 목소리는 경직되어 있었다. 그는 늘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그의 눈빛에는 명백한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강재혁은 침묵 속에서 그것을 바라봤다. ‘아티팩트’. 그 단어 외에는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수천 년, 수만 년 전의 어느 문명이 만들어낸 걸작일까. 아니면, 우주 그 자체가 만들어낸 기묘한 현상일까.
“정체불명 물질에 대한 스캔 결과는?”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불가능합니다. 모든 스캔 파동이 흡수됩니다.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습니다.” 박선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은 이미 스크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열원도, 방사능도, 자기장도…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직 시각적으로만 존재합니다.”
이토록 거대한 존재가 어떠한 에너지도 방출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은 물리 법칙을 조롱하는 듯한 역설이었다.
“원격 탐사선 ‘스피어’ 발진 준비.” 강재혁은 침착하게 명령했다. “최대한 근접해서 시각 정보와 표면 샘플을 확보해.”
작은 구형 탐사선 ‘스피어’가 고요호의 격납고를 벗어나 아티팩트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스크린에는 스피어의 시점이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검은 벽.
그것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표면의 미세한 질감이 드러나는 듯했다. 검은색의 깊이. 아무것도 비추지 않지만, 마치 그 속에 우주의 모든 어둠을 담고 있는 듯했다. 심장이 무겁게 울렸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목덜미를 스쳤다.
스피어가 아티팩트로부터 불과 100미터 지점에 도달했을 때였다.
“선장님!” 이지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스피어의 제어 시스템에 이상이… 통신도 불안정합니다!”
스크린 속 스피어의 영상이 갑자기 지직거렸다. 동시에, 고요호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강재혁은 느꼈다. 선체가 울리는 진동은 단순히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한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아티팩트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장이 감지됩니다! 급격하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박선우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그의 눈은 스크린의 수치를 쫓으며 바쁘게 움직였다. “측정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말도 안 돼…”
스피어의 영상은 완전히 끊겼다. 스크린은 회색 노이즈로 가득 찼다.
그 순간, 아티팩트의 완벽하게 매끄러웠던 검은 표면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마치 거미줄처럼 쩌적, 하고 번지기 시작했다.
그 균열 사이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붉은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어둠을 집어삼킬 것 같던 검은 표면에 붉은 혈맥이 돋아나는 것처럼.
고요호의 함교에 비상등이 붉게 번쩍였다. 경고음이 찢어지는 듯 울렸다.
“회피 기동! 전속 후진!” 강재혁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늦은 듯했다. 아티팩트의 표면을 뒤덮었던 붉은 빛이, 순식간에 거대한 파동이 되어 고요호를 향해 맹렬히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존재가, 침입자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것처럼.
고요호의 선체가 붉은 섬광에 휩싸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