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섬광과 굉음이 우주를 채웠다. 강하준은 조종석에 몸을 묻은 채, 전방 디스플레이에 펼쳐진 전장을 응시했다. ‘천둥까마귀’의 육중한 강철 프레임이 진동할 때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외부 온도는 영하 200도에 달했지만, 조종석 내부는 마치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그의 신경은 칼날처럼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다.
“전방 3시 방향, 에테리얼 강습정 접근 중! 대위님, 회피 기동 준비!”
통신망을 통해 부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찢어질 듯 울렸다. 하준은 이미 보고 있노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에테리얼 강습정은 섬뜩한 붉은빛을 뿜으며 대기권을 뚫고 내려왔다. 저들은 언제나 저렇게 과장된 미학을 추구했다.
“알았다. 2번 편대, 엄호 사격! 3번 편대, 후방으로 우회! 나는 직접 막는다!”
하준의 명령과 동시에 천둥까마귀의 다리가 대지를 박차고 솟구쳤다. 백미터가 넘는 거구가 중력을 거스르는 듯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메카는 인간이 만든 기계 중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살인 병기였다. 그리고 하준은 그 병기를 누구보다 능숙하게 다루는 최고의 파일럿이었다.
천둥까마귀의 오른팔에 장착된 대형 빔 라이플이 불을 뿜었다. 푸른 에너지 파동이 어둠을 가르고 에테리얼 강습정의 장갑을 꿰뚫었다. 파열음과 함께 강습정 하나가 폭발하며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메우듯, 셀 수 없이 많은 에테리얼 전투병기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젠장, 끝없이 기어나오잖아!”
하준은 조종간을 거칠게 꺾었다. 천둥까마귀가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민첩하게 선회하며 적의 공격을 회피했다. 에테리얼의 에너지탄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보호막이 찢어지는 듯한 경고음이 조종석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전장의 한가운데서 유난히 밝은 빛을 내는 기체가 하준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다른 에테리얼 병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실루엣. 마치 별빛을 빚어 만든 것 같은 은백색 외장. 저것은… ‘별의 노래’.
하준의 심장이 잠깐 멈칫했다. 전장의 열기 속에서도 등골을 타고 한 줄기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그 빛나는 메카를 본 순간, 그의 뇌리에선 온갖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위험하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녀를 보면, 그의 모든 판단력이 흐려진다.
별의 노래가 섬광처럼 하준의 메카를 향해 돌진했다. 보통 에테리얼 파일럿들은 전면전을 피하고 후방에서 교란 작전을 펼쳤지만, 저 메카는 달랐다. 언제나 하준이 있는 곳에 나타나,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직접 겨냥했다.
“대위님! 에테리얼 지휘 기체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부관의 목소리는 이미 멀게 들렸다. 하준의 눈은 오직 별의 노래에 고정되어 있었다. 두 거대한 메카가 충돌하기 직전, 하준은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천둥까마귀가 급강하하며 별의 노래의 돌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별의 노래는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우아하게 선회하며 천둥까마귀의 뒤를 쫓았다. 일반적인 전투라면, 하준은 이미 반격에 들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방어에만 급급했다. 그의 뇌리 속에는, 과거 어느 평화 협상 기간 동안 마주했던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푸른빛이 감도는 에테리얼 특유의 피부, 별빛 같은 눈동자, 그리고 굳게 다문 작은 입술.
*세레나.*
그녀의 이름이 무음으로 그의 입술 위에서 맴돌았다. 인간과 에테리얼 사이의 금지된 접촉. 종족의 평화를 위해 잠시나마 휴전이 선포되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이끌렸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내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싹텄다. 그들의 만남은 그 어떤 조약보다도 위험한 비밀이었다.
별의 노래의 왼팔에서 에테르 에너지가 뭉쳐지며 빛의 창이 형성되었다. 하준은 즉시 회피했지만, 창은 그의 메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보호막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천둥까마귀의 어깨 장갑에 금이 갔다. 경고등이 붉게 점멸했다.
“대위님! 피격입니다! 공격하십시오!”
부관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하준의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하준의 손은 망설였다. 빔 라이플의 조준경이 별의 노래의 약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그녀의 메카는 치명타를 입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굳게 굳어버렸다.
그 순간, 별의 노래는 돌연 방향을 틀었다. 하준이 방심한 사이, 등 뒤에서 거대한 에테리얼 강습정 한 대가 섬뜩한 포구로 에너지 캐논을 조준하고 있었다. 하준은 섬광처럼 깨달았다. 세레나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후방의 위협을 알리기 위해 자신을 유인했던 것이었다.
“젠장…!”
하준은 재빨리 천둥까마귀의 부스터를 최대로 가동하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에너지 캐논이 불을 뿜으며 맹렬한 속도로 하준의 메카를 향해 날아왔다.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하준의 메카가 흔들렸다. 시야가 온통 붉은 경고등과 깨지는 유리 파편으로 가득 찼다. 보호막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 붕괴했고, 강습정의 에너지 캐논은 천둥까마귀의 왼팔을 강타했다. 강철이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왼팔이 덜렁거렸다.
“대위님! 피해 심각! 왼팔 기능 상실! 긴급 탈출 권고합니다!”
통신이 혼선되며 부관의 목소리가 끊겼다. 하준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조종석 안에서 몸을 움찔거렸다. 젠장,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다.
바로 그때였다.
하준의 시야가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별의 노래가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이 보였다. 은백색의 기체가 모든 에테르 에너지를 뿜어내듯 푸른빛을 발하며, 자신의 보호막을 펼쳐 천둥까마귀를 감쌌다.
에테리얼 강습정들이 다시 한번 에너지 캐논을 조준하자, 별의 노래는 스스로 방패가 되어 하준의 메카를 보호했다. 맹렬한 에너지 폭격이 별의 노래를 강타했다. 빛나는 외장이 일그러지고, 섬광이 터져 나갔다. 그녀의 메카가 분명히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있었다.
“세레나…!”
하준은 소리쳤다. 그의 조종석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절규하고 있었다. 그는 이해했다. 그녀는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었다. 적진 한가운데서, 인간 병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사실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녀 또한 반역자로 낙인찍힐 터였다.
별의 노래가 휘청거렸다. 아마도 보호막이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다. 에테리얼 강습정들이 다시 한 번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 보였다. 다음 공격은 확실히 치명적일 터였다.
하준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부서진 왼팔 대신 오른팔의 빔 라이플을 겨누었다. 조준경에 별의 노래를 공격하던 에테리얼 강습정들이 포착되었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닿았다.
“비켜! 세레나! 비키라고!!”
그의 절규는 오직 그의 마음속에서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별의 노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메카에 있는 그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듯.
하준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선택은 간단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거나, 아니면…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그의 빔 라이플은 별의 노래가 아닌, 그녀의 등 뒤에 있던 에테리얼 강습정의 엔진을 정확히 꿰뚫었다. 섬광과 함께 강습정이 폭발하며 파편을 흩뿌렸다. 나머지 강습정들은 혼란에 빠져 공격을 멈칫했다.
그 짧은 순간, 하준은 통신 주파수를 은밀하게 변경했다. 에테리얼과 인간 간의 공통 비상 채널. 과거, 그들이 몰래 대화했던 유일한 통로였다.
“……도망쳐. 세레나. 지금 당장.”
그의 목소리가 전장의 소음 속에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속삭였다. 별의 노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푸른빛 섬광을 뿜어내며 전장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에테리얼 강습정들은 당황한 듯 별의 노래를 추격했지만, 그녀의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준은 망가진 메카 안에서 피로 범벅이 된 손으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왼팔은 너덜너덜했고, 조종석에는 붉은 경고등이 난무했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가 사라진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살아남았다. 그녀 덕분에.
그리고 그녀는 그 덕분에 탈출했다.
이것이 그들의 사랑 방식이었다. 서로의 생명을 위협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생명을 구원하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종족을 뛰어넘는 금지된 사랑의 춤.
“대위님! 지원 병력 도착했습니다! 철수하십시오!”
멀리서 아군 메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하준은 부서진 메카의 잔해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앞에는, 다시금 별의 노래의 빛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이 잔혹한 전장에서, 그 별빛은 그의 유일한 희망이자, 가장 큰 저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