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하 서고의 이상한 유물
“김현수 씨, 이쪽 상자들은 ‘이 교수님 기증 자료’ 목록에만 넣어두세요. 상세 분류는 나중에 해도 괜찮으니 일단 재고 파악만 부탁드립니다.”
지하 서고의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쾨쾨하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김현수는 마른기침을 삼켰다. 대충 늘어놓은 형광등 불빛 아래, 끝없이 늘어선 철제 선반들은 마치 거대한 미로 같았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이곳은, 스무 살 현수가 상상했던 ‘명문대 도서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학 동안 용돈이나 벌어볼까 지원한 도서관 근로 장학생 자리였지만, 그의 주 업무는 먼지 쌓인 책 더미 속에서 고고학적 유물을 발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잊혀진 과거를 분류하는 일이었다.
오늘 할당받은 구역은 평소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선반마다 ‘이 교수님 기증’이라는 낡은 표식이 붙어 있었는데, 그 내용물들은 하나같이 세월의 더께를 두르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뭉치, 표지가 너덜너덜한 고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흙먼지 묻은 조각들. 현수는 대충 ‘잡다한 고문서’, ‘미분류 유물’ 등으로 뭉뚱그려 목록에 기입하며 건성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뭐 이런 걸 다 기증했대… 쓰레기 봉투에 버려도 모를 것들을.”
투덜거리며 손을 뻗은 곳은 선반 가장 구석에 놓인 낡은 나무 상자였다. 다른 상자들과 달리 겉에 아무런 표식도 없었다. 대충 뚜껑이 덮여 있었지만, 틈새로 보이는 내용은 오직 닳아빠진 천 조각뿐이었다. 무게를 가늠해보니 꽤나 묵직했다.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운 걸까. 현수는 호기심에 상자를 선반에서 끌어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상자는 바닥에 내려앉았다.
뚜껑을 열자, 예상대로 누런 천 조각들이 나왔다. 방충제 냄새가 역하게 올라왔다. 대충 몇 조각을 걷어내자, 마침내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돌이었다. 아니, 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교했다. 한 손에 들어올 만한 크기에, 표면은 매끄럽게 연마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들은 어떤 알려진 문자 체계와도 달랐다. 원과 선, 그리고 점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의 혈관 같기도, 밤하늘의 성운 같기도 했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돌의 표면을 만졌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번개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 듯한 강렬한 이질감이 현수를 덮쳤다.
***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시야가 흐려지고, 지하 서고의 익숙한 풍경 대신 알 수 없는 색과 형상이 뒤섞인 혼돈이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람 소리 같기도, 거대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같기도, 혹은 수억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생생했던 것은, 차가움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절대적인 차가움, 빛 한 점 없는 심연의 냉기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현수는 숨을 들이켰다. 폐 속까지 차가운 공기가 파고들었다. 마치 수백만 년 전의 얼어붙은 시간 속에 던져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차가움 속에서, 어떤 형상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특정할 수 없는 형태였다. 거대하고, 불분명하며, 헤아릴 수 없는 촉수들이 뒤엉킨 듯한.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공포가 목을 조여왔다. 그의 뇌가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보면 안 돼. 이것을 이해해서는 안 돼.*
“쿨럭!”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차가움도, 웅웅거리는 소리도, 불분명한 형상도. 눈앞에는 다시 낡은 철제 선반과 희미한 형광등 불빛, 그리고 현수 자신의 손에 쥐여있는 기묘한 돌이 보였다.
현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이, 다리가 후들거렸다. 방금 자신이 겪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꿈이었을까? 환각?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 차가움, 그 웅웅거림, 그리고… 그 형언할 수 없는 형체는 마치 현수의 망막에 달라붙은 그림자처럼 남아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돌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차갑고 매끄러웠다.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은 변함없이 기괴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나 현수의 눈에는 이제 그것들이 단순히 추상적인 무늬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문양들 하나하나가 거대한 질서, 혹은 혼돈의 단면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야가, 그의 뇌가 이전과는 다르게 그것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뭐야?”
현수는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떨렸다. 불안한 예감이 그의 마음을 잠식했다.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이것은 무언가였다. 어쩌면 그는 방금, 자신이 알아서는 안 될 무언가를 건드린 것인지도 몰랐다.
문득, 돌의 한가운데에 새겨진 가장 크고 복잡한 문양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른 문양들과 달리, 그 부분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듯한, 하지만 동시에 빛이 없는 어둠의 색을 띠는 기이한 빛. 현수는 홀린 듯이 손가락을 뻗어 그 문양을 다시 한번 만졌다.
그 순간, 돌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현수의 귓가에, 방금 전 그 혼돈의 속삭임 중 하나가 명료하게 들려왔다.
— *그는 꿈꾸며 기다린다… 깊은 바다 아래에서.*
심장이 발작하듯이 뛰었다. 현수는 돌을 놓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은 바닥에 떨어졌고, 희미한 빛은 사라졌다. 지하 서고는 다시 평소의 쾨쾨하고 정적만 감도는 공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현수는 더 이상 그곳이 평범하다고 느낄 수 없었다. 돌멩이 하나가 그의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자신이 평생 보지 못했던 진실의 한 조각을 우연히 엿본 것 같은 불길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진실은, 그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는 천천히, 떨리는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워 들었다. 차가운 돌은 이제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수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들려왔던 기묘한 속삭임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깊은 바다 아래에서… 꿈꾸며 기다린다…*
현수는 눈을 감았다. 그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암흑과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형상이 아른거렸다. 그는 이제 막, 세상의 베일 뒤에 숨겨진 진실의 문을 우연히 열어버린 참이었다. 그리고 그 문 뒤에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