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암흑 물질의 바다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아르곤 호의 거대한 함체는 그 침묵을 깨는 유일한 존재였다. 빛 한 점 없는 심연 속, 끝없이 펼쳐진 미지의 공간을 유영하는 외로운 섬처럼. 함교의 주 스크린에는 수백 광년 떨어진 희미한 은하들의 잔해가 점점이 박혀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선장님,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이 지점입니다.”
탐사 분석관 최민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감과 함께 뚜렷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20대 후반의 젊은 학자는 심우주 탐사 임무에 대한 무한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지만, 지금 그의 열정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얼어붙고 있었다.
선장 이도경은 40대 후반의 베테랑이었다. 수많은 성운과 블랙홀, 웜홀을 헤치며 아르곤 호를 이끌어온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동자에도 낯선 경계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에너지 시그니처, 패턴은? 생체 반응인가?”
“아닙니다. 어떤 알려진 에너지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생체 반응은 전혀 없는데… 이 방사선 수치, 비정상적입니다.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수치예요. 마치… 저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민준은 손가락으로 주 스크린의 한 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망망한 허공뿐이었다.
“화면을 확대해.” 이도경 선장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주 스크린이 수십 배 확대되고, 수백 배, 수천 배… 마침내, 검은 심연 속에서 희미한 윤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행성도, 혜성도, 성운의 조각도 아니었다.
거대한 검은색 다면체. 표면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았다. 마치 우주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 혹은 그 자체가 빛의 부재인 양. 각진 모서리는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배열은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크기는 소행성만 했고, 그 표면에는 정교한 문양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문양이라기보다는, 끝없이 뒤얽히고 침식하는 어둠의 파동에 가까웠다.
부선장 한지은이 숨을 들이켰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그녀조차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전율하는 듯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어떤 문명에서도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장님.”
이도경 선장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은 스크린 속 미지의 존재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르곤 호, 전방 500km 지점까지 접근. 모든 함포 봉인. 외부 스캐너 가동률 최대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보안 팀은 대기하라.”
보안 팀장 서윤호의 굵직한 목소리가 인터컴을 통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함선이 서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추진기의 미약한 진동이 함교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500km, 200km, 100km…
다시 한번 민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선장님! 방사선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드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경고음이 함교를 가득 채웠다.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긴급 상황을 알렸다.
“실드 강화! 민준, 어떤 종류의 방사선인지 파악해!” 이도경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스크린 속의 그 검은 다면체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침묵했고, 여전히 모든 빛을 삼키는 듯한 어둠을 뿜어내고 있었다.
“불가능합니다… 분석이… 분석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단순한 방사선이 아니에요. 차원 붕괴에 가까운 에너지, 아니… 정신에 직접 작용하는 어떤 주파수 같습니다!” 민준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일그러졌다. “선장님,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바로 그때, 이도경 선장의 뇌리에도 차가운 바늘이 박히는 듯한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수천 개의 속삭임이 동시에 그녀의 의식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통을 참았다.
“민준, 함선 속도 감속! 엔진 정지! 더 이상 접근하지 마!” 그녀는 간신히 명령했다.
함선이 멈추고, 경고음과 붉은 경고등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한지은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 스크린을 노려봤다.
검은 다면체는 더욱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서 보니, 그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단순히 정교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어둠이 춤을 추는 것처럼.
그때였다. 민준이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봐… 봐요… 보이죠…?”
그는 마치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스크린 속 다면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름다워… 저 아래에… 모든 것이 잠들어 있었어….”
“민준? 무슨 소리야? 진정해!” 한지은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민준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스크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마치 홀린 듯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깨워줘야 해….”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최민준의 것이 아니었다. 낮고, 깊고, 어딘가 울림이 있는, 기계적인 속삭임이었다.
“민준! 멈춰!” 이도경 선장이 소리쳤다.
하지만 민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스크린의 검은 다면체를 만지려 했다.
그의 손가락이 스크린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함선 전체를 강타했다.
아르곤 호가 비명을 지르듯 진동했다. 함교 내부의 조명등이 깜빡이며 터져 나갔다.
모든 스크린이 일순간 암전되었다가, 다시 켜졌다.
주 스크린에 비치던 검은 다면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민준의 손이 닿았던 스크린의 한 지점, 그곳에…
마치 잉크가 번지듯, 검은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주 작고 미세했지만, 분명한 균열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에서, 무언가가… 속삭였다.
수십억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하지만 단 하나의 의지로, 이도경 선장의 뇌리에 직접 파고들었다.
*――우리를… 찾아왔는가….*
이도경 선장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녀의 눈은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민준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 한 방울 없이 창백했고, 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액체는, 스크린의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어둠과 완벽하게 똑같은 색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서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르곤 호의 주 스크린 위에서, 검은 균열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며, 이 우주선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뜬 아기처럼, 배가 고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