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체의 외피를 뚫고 들어선 류진의 수트 헬멧 안으로, 잊혀진 문명의 거대한 묘비가 뿜어내는 정적과 먼지 냄새가 스며드는 듯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이 고대 함선은, 차가운 강철의 뼈대만 남긴 채 우주를 영원히 떠돌 운명이었다. 센서는 미약한 잔류 에너지 외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흔한 전원부조차 소멸한, 말 그대로 죽은 거인이었다.
“젠장, 또 꽝인가.”
류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움직임은 능숙하고 빨랐다. 오래된 잔해 속에서 한 줌의 가치를 긁어모아 생존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손목의 스캐너가 부식된 벽면을 훑자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이상 신호가 깜빡였다.
일반적인 에너지원이 아니었다.
고유 주파수도, 알려진 물질의 파장도 아니었다.
무언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류진은 잠시 망설였다. 이런 미지의 신호는 보통 위험을 동반했다. 오래된 함선에는 미처 소멸하지 않은 방어 시스템이나, 기괴한 변형체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본능, 아니, 그를 지배하는 갈망이 속삭였다. *가치 있을 거야. 엄청나게.*
그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신호를 따라 움직였다. 내부 통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갈수록, 함선의 부식은 기이하게도 줄어들었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외피가 찢겨나간 외부와 달리 내부는 묘하게 보존된 구역이 나타났다.
“이건… 말도 안 돼.”
그가 도착한 곳은 함선 한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홀이었다. 수십 미터 높이의 돔형 천장, 매끄러운 금속 벽면은 수만 년의 세월에도 흠집 하나 없었다. 이곳은 부패에서 완벽하게 격리된,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그리고 홀 중앙에, 그것이 떠 있었다.
수정이었다.
아니, 수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형태였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완벽한 육면체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면을 가진 것처럼 빛을 반사했다.
내부에서는 심장이 뛰는 듯한, 느리고 몽환적인 맥동이 흘러나왔다.
어떤 에너지도 감지되지 않았지만,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
류진은 홀린 듯 다가갔다. 그의 스캐너는 이제 완벽하게 먹통이 되었다. 분석 불가능. 감지 불가능. 그저 그 불가능한 물체가 존재한다는 시각적 정보만이 전부였다.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 장갑이 크리스탈의 표면에 닿기 직전,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휘이이잉—!*
손이 닿기도 전에, 크리스탈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류진의 시야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검푸른 하늘 아래, 고대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알고 있던 어떤 문명과도 다른,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숨 쉬는 듯한 건물들.
공중을 유영하는 거대한 함선들, 하지만 그 함선들은 금속이 아닌, 빛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듯했다.
그리고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존재들.
그들은 손짓 한 번으로 별을 꿰뚫고, 허공에서 에너지를 뽑아내 무기를 만들었다.
마법이었다.
그의 이성이 외쳤다. *불가능해!*
하지만 감각은 생생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거대한 에너지의 떨림. 뇌리를 꿰뚫는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 그는 환영 속에서 고대 문명의 영광과, 동시에 그들을 집어삼킨 거대한 재앙을 목격했다. 별들이 깨지고, 우주가 울부짖는 절망적인 파괴의 순간까지.
그리고 갑자기, 환영이 칼날처럼 끊겼다.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경보음이 함선 전체를 뒤흔들었다. 류진의 수트 헬멧 디스플레이가 붉은 경고등으로 가득 찼다.
[외부 접근 감지. 고에너지 반응. 다수.]
[알 수 없는 에너지 파동 감지. 발신원: 본 함선.]
류진은 혼란에 빠졌다. 크리스탈의 마법 같은 환영, 그리고 이어진 외부 침입 경보.
그가 크리스탈에 닿으려 하자, 크리스탈이 반응한 것이다!
손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탈은 여전히 느리게 맥동하고 있었다. 그의 피부에 닿았던 곳에서부터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듯 보이더니, 이내 금색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홀의 벽을 타고 번지며 고대 함선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다.
갑자기, 함선이 부활했다.
정지했던 시스템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소리. 금속이 뒤틀리는 둔탁한 마찰음. 그리고 함선 외부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에너지 포화음.
*쉬이이이이익—!*
“젠장! 무슨 짓을 한 거야!” 류진은 소리쳤다.
그의 함선 ‘그림자 추적자’ 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류진! 큰일 났어! 네놈이 보낸 파장을 감지하고 사냥꾼들이 몰려들고 있어! 놈들이 널 잡으러 올 거야!”
호출기 너머로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냥꾼’이라 불리는 자들. 황량한 우주에서 고가의 유물을 찾아 헤매며, 필요한 경우 잔혹하게 약탈하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무리들.
류진은 재빨리 홀을 벗어나 함선 내부 통로로 몸을 날렸다. 고대 함선의 시스템이 부활하며, 이제는 길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잠겨 있던 문들이 열리고, 꺼져 있던 조명들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함선 외부에서 굉음이 울리며 무언가 충돌했다.
*쿠구구구궁—!*
함선 전체가 흔들렸다.
적들이 이미 달라붙은 것이다.
내부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소리. 폭발음.
류진은 주머니 속에서 방어막 생성기를 꺼냈다. 고대 함선은 깨어났지만, 그를 보호해주지는 않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그를 미끼 삼아 다른 생명체들을 끌어들이는 함정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크리스탈이 있던 홀에서, 금색 섬광이 통로를 따라 번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빛이 아니었다. 어떤 의지를 가진 듯, 고대 함선의 모든 기능을 되살리는 원천이었다.
“이게… 마법의 힘이란 말인가?”
손바닥에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크리스탈과 접촉했던 곳에서부터 시작된 감각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환영을 본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의 안에 스며들었다.
피부 속으로, 혈관을 타고, 뇌세포까지.
그 순간, 류진은 자신의 안에서 새로운 힘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 끝에서 미약한 전기가 튀는 듯한 감각.
그의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던 함선의 시스템이, 갑자기 선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그 자신이 함선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함선의 보안 시스템.
무기 시스템.
엔진 출력.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마치 본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흘러들어왔다.
류진은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부식된 통로를 가로막던 거대한 강철 문이 굉음을 내며 활짝 열렸다.
“젠장, 이게 무슨…”
놀라움과 경악,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감정.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거대한 고대 함선이 그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동시에, 함선 외부에서 강력한 블래스터포가 발사되는 섬광이 번뜩였다.
고대 함선의 선체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생생하게 울렸다.
“류진! 서둘러! 놈들이 메인 코어를 노리고 있어!”
동료의 절규가 다시 한번 울렸다.
사냥꾼들은 이 거대한 함선이 깨어나자마자 그 가치를 알아채고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이 류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적 함선들의 수가 그의 통제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류진은 홀린 듯 달려나갔다. 이 힘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이제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 고대의 마법이 그를 구원할지, 아니면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우주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힘이 쥐어져 있었다.
*콰아아앙!*
함선 외부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 충격에 류진은 몸을 휘청였지만, 그의 두 눈은 이글거리는 활성 상태의 고대 함선 코어로 향했다.
그는 전율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