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고요산맥, 그 이름처럼 침묵만이 깊게 잠든 곳. 류운은 며칠 밤낮을 걸어 마침내 그 최심부에 도달했다. 투박한 도포는 찢어지고 해져 있었고, 흙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은 거친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영력이 고갈되어 숨조차 거칠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젠장, 정말 여기까지 온 거야?”

그의 독백은 차가운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며칠 전부터 그의 심장을 울리던 미약한 지맥의 떨림, 그건 다른 수련자들에게는 잡음으로 치부될 만한 것이었다. 아니, 대부분은 아예 감지조차 못할 터였다. 류운 자신조차도 처음엔 단순한 착각이라 생각했다. 고대의 환영에 사로잡힌 노인이 미망에 빠진 것처럼.

하지만 떨림은 점점 선명해졌고, 류운의 발길을 이끌었다. 그는 이 산맥에 묻힌 잊힌 전설들을 믿었다. 수많은 현인들이 비웃었지만, 그의 스승, 폐쇄된 문파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의 스승은 언제나 고서에 파묻혀 고대의 비밀을 속삭이곤 했다. 그 파편적인 지식들이 류운의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여기다.”

마침내, 류운의 발길이 멈춘 곳은 거대한 절벽 아래의 음침한 골짜기였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미약한 기운은 다른 곳의 영기와 확연히 달랐다. 생명의 기운이라기보다는, 시간이 응축된 듯한, 잊힌 시대의 숨결과 같았다.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육안으로는 그저 평범한 암벽과 바위들뿐. 하지만 류운은 폐쇄된 문파에서 전해 내려오는 ‘천지영각술(天地靈覺術)’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틈을 찾았다. 손가락 끝에 미약한 영력을 모아 암벽의 특정 지점에 가져다 대자, 차가운 암석 표면에서 희미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쉬이이잉-

극도로 미약한 진동과 함께 암벽의 일부가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마치 거대한 문이 열리듯, 틈새가 벌어지더니 이내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어두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는 차갑고 습했지만, 묘하게도 썩은 냄새 대신 흙내음과 함께 희미한, 그러나 압도적인 고대 영기(靈氣)의 향취가 났다.

“후우…”

류운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수련으로 단련된 그의 심장도 거친 북소리처럼 울렸다. 이곳은 분명, 그 전설 속의 장소였다.

주머니에서 작은 영염주(靈炎珠)를 꺼내들었다. 손가락 끝에서 푸른 영력이 뿜어져 나와 구슬을 감싸자, 영염주는 주변을 밝히는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입구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좁은 통로는 곧 아래로 깊게 경사져 있었다. 발아래서는 먼지 쌓인 돌들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통로의 벽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지만, 오랜 세월로 인해 이끼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군데군데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모되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수십 장(丈)은 족히 내려왔을 깊이였다. 갑자기 통로가 넓어지면서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영염주의 푸른빛이 닿는 곳까지는 겨우 엿볼 수 있었지만, 류운은 이 공간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럴 수가…”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주변을 둘러싼 것은 거대한 암석 기둥들이었다. 수십 개의 기둥들은 천장을 받치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마치 거인의 궁전을 연상시켰다. 기둥들 사이에는 오래된 건축물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벽돌과 돌들이 무너져 내린 흔적, 부서진 조각상들. 모든 것이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고통을 증언하는 듯했다.

이곳은 지하 동굴이 아니었다. 인간, 혹은 인간을 닮은 어떤 존재가 인위적으로 만든 거대한 유적이었다.

먼지가 자욱한 바닥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의 발자국이 남겨지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정적만이 흐르는 이곳에서, 류운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했다.

쉬이이잉… 쉬이이잉…

마치 바람이 텅 빈 동굴을 지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기도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많은 존재들이 동시에 속삭이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 소리는 류운의 심장을 관통하며 그의 영혼 깊숙한 곳을 흔들었다. 고요산맥의 깊은 지하, 그 누구도 찾지 못했던 이곳에서, 고대의 비밀이 속삭이고 있었다.

발길이 닿은 곳은 붕괴된 제단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 위에 놓인 것은 무수한 돌멩이와 파편들. 류운은 그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검은 현무암 조각이었다. 하지만 그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방금 들어온 통로의 희미한 문양과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나도 정교하고, 강렬하며, 어떤 에너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조각에 손가락을 대고 영력을 흘려보냈다.

순간, 조각에서 강렬한 진동이 울렸다. 검은 현무암 조각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검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빛은 제단을 가득 채우고, 이내 주변의 기둥들을 따라 천장으로 치솟았다.

콰아앙!

거대한 굉음이 지하 공간을 뒤흔들었다. 무너져 내린 건축물 잔해들이 더 큰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류운이 서 있는 제단마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 충격에 그는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크윽!”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단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천장을 뚫고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마치 지하에 잠든 거대한 존재를 깨우는 신호라도 되는 양. 빛이 닿는 곳마다 잠들어 있던 고대 진법들이 깨어나듯 희미한 영력을 내뿜으며 빛나기 시작했다.

류운은 조각을 움켜쥔 채 눈을 크게 떴다. 거대한 공간의 끝,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가장 거대한 기둥 하나가 마치 맥박처럼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둥의 중앙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거대한 문양이 떠올랐다.

그 문양은… 지금까지 류운이 보았던 어떤 문양보다도 복잡하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류운은 알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발을 디딘 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잊힌 고대의 존재, 혹은 그 존재가 남긴 미지의 힘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힘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류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은 불타올랐다. 두려움보다는 호기심,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율이 그를 지배했다.

‘왔구나… 마침내.’

그의 손에 들린 현무암 조각은 옅은 진동을 멈추지 않았고, 고요산맥 깊은 지하의 비밀은 이제 막 첫 장을 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