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영하의 고요

숨쉬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시끄럽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지만, 내 안의 세상은 영하의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어둠은 친숙한 친구가 된 지 오래였다. 그 친구는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이끌어, 파묻힌 기억들을 꺼내 보여주곤 했다. 기억들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심장을 할퀴었다. 특히, 그 얼굴.

나는 낡은 의자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안쪽으로 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환하게 웃던 얼굴, 믿음으로 가득 찬 눈빛, 그리고… 한순간 모든 것을 집어삼킨 싸늘한 표정. 그 배신이 얼마나 달콤했을까.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그 순간에도, 그는 아마 승리감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손끝이 저릿했다. 식탁 위에는 오래된 유리컵이 놓여 있었다. 컵 안에는 물기가 말라붙은 흔적들이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물을 마신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목마름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증오로 불타오르고 있는데, 갈증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벽에 기대어 놓은 거울은 먼지투성이였다. 내 모습을 비추는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했던 시간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거울 앞으로 다가서자 희미한 형체가 드러났다. 초췌하고, 메마르고, 모든 생기를 잃어버린 얼굴. 폐허가 된 내 삶의 거울이었다.

“제법 볼만하군.”

갈라진 목소리가 낯설게 울렸다. 굳이 내뱉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나조차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거울 속의 눈은 죽지 않았다. 꺼져가는 불꽃 같지만, 그 안에는 꺼지지 않는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복수를 향한 맹목적인 갈망. 그것만이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휴대폰이 식탁 한구석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온 메시지였다. 발신인은, 도윤.

나는 마치 독약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도윤의 이름 옆에 해맑게 웃는 이모티콘이 떠 있었다. 그 역겨운 이모티콘. 메시지 내용은 더 역겨웠다.

\[도윤: 어이, 김민준! 요즘 뭐 해? 소식 없네. 혹시 내가 너무 잘나가서 질투하는 건 아니지? 농담이야! 조만간 다 같이 한잔 하자. 네 근황도 듣고 싶네.]

다 같이 한잔? 근황?

나는 화면 속 도윤의 이름과 메시지를 번갈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김민준’이라는 내 이름 세 글자조차 낯설었다. 내가 알던 김민준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도윤의 손에, 그의 완벽한 기만과 배신 아래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근황이라….”

내 입꼬리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그래, 근황을 들려줘야지. 폐허가 된 내 삶의 근황,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싹튼 복수의 씨앗에 대해.

나는 메시지를 지우지 않고 휴대폰을 다시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증오와 함께 찾아온 알 수 없는 희열 때문이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여기까지 온 이유.

어둠 속에서 나는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될 차례였다. 도윤, 너는 내가 어떤 지옥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네가 그 지옥을 똑같이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깊고, 더 처절한 지옥을. 너는 준비가 되었는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도윤아.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마주했다. 이전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눈동자에 어둠을 집어삼킬 듯한 차가운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복수의 불꽃이었다. 이 도시의 모든 빛을 삼켜버릴 만큼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울, 파멸의 시작이었다.

나는 더 이상 폐허 속에 갇힌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 폐허를 딛고 일어선 그림자였다. 어둠 속에서 가장 잔인하게 빛나는 칼날이었다.

그리고 그 칼날의 첫 번째 목표는,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간 너였다. 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