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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 서재의 그림자

차갑고 무거운 흑요석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아니, 닫혀 있었다기보다는, 굳건히 봉인되어 있었다. 정화의 결계가 문틀을 따라 푸른빛으로 깜빡였고,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봉인의 인장이 붉은 마력으로 새겨진 문양 위에서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문고리는 안쪽에서 걸린 두꺼운 놋쇠 빗장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문은 두께가 검지 손가락만한 강철 격자로 막혀 있었고, 그 위에 덧씌워진 은밀의 주술은 바깥 세상의 시선은 물론, 미약한 마력의 흐름마저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대마법사 율리안은, 그렇게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 안에서 죽어 있었다.

“카엘 경, 대체 몇 번을 더 둘러봐야 하는 겁니까?”

가드 마스터 라그나의 목소리에는 인내심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그의 거대한 체구는 좁은 서재 안에서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미 수색조와 감식 마법사들이 사흘 밤낮으로 이 방을 들쑤셨지만, 침입의 흔적은커녕, 율리안의 죽음을 설명할 단서조차 찾지 못했다. 율리안의 시신은 서재 중앙의 거대한 오크 책상에 엎드린 채 발견되었다. 외상은 없었다. 단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생체 마력이 기묘할 정도로 깨끗하게 소멸되어 있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증발해버린 것처럼.

“음, 라그나 경. 완벽한 밀실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직 그 완벽함에 숨겨진 불완전함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죠.”

카엘은 라그나의 신경질적인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율리안의 책상 위를 응시했다. 그는 허리를 굽히는 대신, 거의 누운 자세로 바닥을 기듯이 시선을 훑고 있었다. 마치 먼지 하나하나가 고대의 비문이라도 되는 양. 그의 시선은 보통 사람들이 흘려버릴 법한, 미세한 균열이나 흔적을 집요하게 따라갔다.

“율리안 님은 워낙 은둔적인 분이셨습니다. 특히 연구에 몰두하실 때는 이렇게 모든 봉인을 걸어두는 것이 습관이셨죠. 침입?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 아카데미의 최고 수색 마법사들도 이 방의 어떤 비밀 통로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결계는 완벽했고, 인장은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문을 열기 전까지, 안쪽에서 생체 마력의 반응조차 없었습니다!”

라그나의 주장은 다른 모든 이들의 주장과 같았다. 물리적인 침입은 불가능하고, 마법적인 침입 또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카엘은 단 한 번도 그들의 보고서를 믿은 적이 없었다. 그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말은, ‘아직 방법을 모른다’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카엘은 마침내 책상 아래쪽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율리안이 마지막까지 매달렸을지도 모를 고서들이 잔뜩 쌓인 책장 아래, 희미하게 빛을 잃은 마력석 조각들이 뒹구는 바닥에 그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곳에,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있었다.

“세라핌 님,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카엘이 부르자, 방 한쪽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세라핌이 천천히 다가왔다. 세라핌은 율리안의 수제자이자, 아카데미 최고 위원회에서 가장 어린 위원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얼음처럼 차가웠고, 감정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사건 발생 후 줄곧 자신의 스승이 당한 ‘불가능한’ 비극에 대해 완벽한 무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무엇입니까, 카엘 경.”

“이것을 보시죠.”

카엘은 손가락으로 바닥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여느 서재에서나 흔히 발견될 법한, 먼지에 덮인 낡은 양초 조각이 있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하찮아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법한, 촛농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조각.

“그저 율리안 님의 물건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그리 특별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만.”

세라핌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물론이죠. 특별할 것 없습니다. 단지… 이 서재에는 마력으로 빛을 내는 루미나 양초 외에는 어떤 종류의 불도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런 흔한 밀랍 양초는 말이죠. 율리안 님은 화재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계셨고, 사소한 불씨조차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카엘의 말에 라그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율리안의 그 까다로운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가져다 놓았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이 방은….” 라그나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바로 그겁니다, 라그나 경. 이 방은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었죠.”

카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초 조각의 바로 위쪽,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흑요석으로 된 천장은 매끄럽고 검은 광택을 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따라 올라가는 순간, 카엘은 말을 이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마력 양초에 집중하여 심안을 열어보면, 아주 희미한… 검은 그을음 자국이 보일 겁니다. 마치 무언가가 아주 높은 열로 저곳을 뚫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죠. 일반적인 불이 아니라, 극도로 집중된 마력의 흐름 같은.”

라그나와 세라핌은 동시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라그나는 두꺼운 손가락으로 눈가를 비비며 다시 집중했고, 세라핌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잠시 후, 그들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라그나는 경악으로, 세라핌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세상에… 정말이군요. 어떻게…?” 라그나가 입을 열었다.

“율리안 님은 생체 마력이 깨끗하게 소멸되었습니다. 마치, 그의 모든 생명 에너지가 단숨에 뽑혀 나간 것처럼 말이죠.” 카엘은 여전히 천장을 응시하며 말했다. “밀랍 양초는 단순한 양초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마력 전도체입니다. 그을음 자국은 공격이 이루어진 통로를 보여주고 있죠. 율리안 대마법사는 이 방을 완벽하게 봉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머리 위, 즉 아카데미 타워의 구조 자체에 잠재되어 있던 위험을 간과했습니다.”

카엘의 눈빛이 빛났다.

“이 아카데미 타워는 고대에 건설되었고, 마력의 흐름을 조절하는 복잡한 내부 통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리안 님은 그 중 일부를 연구하고 계셨죠. 그 밀랍 양초는, 그가 우연히 발견했거나, 혹은 직접 만들었던 특정 마력 통로의 ‘임시 거점’이었던 겁니다.”

세라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제야 그녀의 무미건조한 표정에 미미한 금이 갔다.

“범인은 이 서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들어올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는 율리안 님의 머리 위, 그러니까 이 흑요석 서재의 바로 위층에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율리안 님이 연구하던 바로 그 마력 통로를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밀랍 양초를 임시적인 초점(焦點)으로 삼아, 강력한 생체 마력 흡수 주술을 위에서 아래로, 즉 천장을 뚫고 율리안 님에게 직접 쏟아부은 겁니다.”

라그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하지만… 어떻게 그 강력한 주술이 봉인의 결계와 은밀의 주술을 뚫고… 게다가 저 흑요석 천장을 통과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흔적도 없이!”

“강력한 주술이 아니라, ‘정밀하게 조율된’ 주술입니다.” 카엘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흔적이 없다는 것은 착각이죠. 저 희미한 그을음 자국이 바로 그 흔적입니다. 이 타워의 고대 마력 통로는 외부 마력을 완전히 차단하지만, 내부의 마력 흐름은 거의 무한히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율리안 님이 직접 설정해둔 그 ‘임시 거점’ 덕분에, 외부에서 가해진 마력이라 할지라도 타워의 마력 통로를 타고 들어와 증폭되어 내려올 수 있었던 겁니다. 마치 정수리에 정확히 내려꽂힌 번개처럼 말이죠.”

카엘은 천장에서 다시 시선을 돌려 세라핌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범인은 율리안 님의 연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 타워의 고대 마력 통로의 존재와 작동 원리 또한 빠삭하게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 완벽한 밀실은, 사실 가장 완벽한 마력 증폭 장치였던 겁니다.”

라그나는 자신의 거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지식을 가진 자가 대체….”

카엘은 그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세라핌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세라핌은 얼어붙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지만, 그 속에는 어딘가 모를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세라핌 님, 율리안 대마법사님의 서재 위층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율리안 님께서는 자신의 은밀한 연구에 대해 누구에게까지 공유하셨습니까?”

카엘의 질문은 명확하고 직접적이었다. 세라핌의 창백한 얼굴 위로, 한 줄기 섬뜩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밀실은 깨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그림자 뒤에 숨은 살인자를 밝혀내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카엘은 그 그림자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말해봐요, 세라핌 님. 율리안 님은 ‘누구’에게 이 위험한 지식을 넘겨주었죠?”

카엘의 마지막 질문에, 방 안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