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고립된 아파트, 움직이는 그림자

회색빛 새벽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고요했다. 모든 것이 멈춘 지 오래된 박물관처럼,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들은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낸 채 침묵하고 있었다. 지우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떴다. 삐걱이는 스프링 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렸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고, 벽지는 습기를 머금어 울퉁불퉁하게 들떠 있었다. 이곳은 재앙 이후, 그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한때는 번화했던 아파트의 13층, 그의 작은 안식처.

어제저녁 겨우 찾아낸 딱딱한 건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퍽퍽한 질감이 목을 메이게 했지만, 이마저도 귀한 식량이었다. 식수통에 남은 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은 외부 탐색을 나가야만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폐허가 된 상가나 다른 동 아파트로 향해야 할 터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굳어진 관절들이 삐걱거렸다. 낡은 작업복을 걸치고 허리에 단도를 찼다. 창고처럼 변해버린 주방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마지막 남은 물을 조심스럽게 마셨다. 차갑고 비릿한 맛이 혀를 스쳤다.

식수를 채워 넣기 위한 플라스틱 통들을 챙기려 찬장을 열었다. 빈 통들 사이에 굴러다니던 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통조림 참치였다. 어제 분명 먹었고, 빈 캔은 밖에 내다 버렸는데.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착각인가? 너무 피곤해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착각일 것이다. 외로움과 허기 때문에 헛것이 보일 때도 종종 있었으니까.

외부로 나가기 전, 항상 하던 대로 집 안을 한 번 둘러봤다.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제대로 걸려 있는지, 창문은 잘 닫혀 있는지 확인했다. 굳게 닫힌 거실 창문, 텅 빈 책장. 그리고, 거실 테이블 위.

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지우는 멈칫했다. 어젯밤 분명히, 읽던 책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잠들었다. 다른 물건들에 가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 바닥에 엎어진 채 펼쳐져 있었다.

“뭐야…”

낮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다. 바람이 들어올 틈도 없는 밀폐된 공간이다. 창문도 문도 단단히 닫혀 있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어젯밤부터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그는 책을 주워 들었다. 먼지가 쌓인 표지를 털어내고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굳이 이렇게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지친 뇌가 만들어낸 작은 오류겠지. 이 거대한 폐허 속에 홀로 남은 인간의 나약한 정신 상태.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불안감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괜히 한 번 더 주변을 살폈다. 텅 빈 소파, 낡은 벽, 움직임 없는 시계. 모든 것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시야 한구석에 뭔가 번쩍였다. 고개를 돌렸다. 주방 찬장이었다.

분명히 닫고 왔던 찬장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지우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었다. 차가운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젠 착각이라고 애써 외면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 분명히 이 아파트 안에 있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이 건물은 이미 몇 년 전에 모든 사람이 떠나거나, 아니면… 사라졌다. 그 자신만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외부인 침입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는 거대한 잔해와 잡목으로 뒤덮여 있었고, 13층까지 올라오는 통로 역시 붕괴되어 있었다. 그가 만든 우회로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쿵, 쿵. 심장이 발악하듯 뛰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숨을 들이쉬자 폐부가 시큰거렸다.

“누구… 없어?”

갈라진 목소리가 공간을 찢었다. 메아리조차 없는 텅 빈 대답.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단도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찬장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고요한 아파트 안에서 그의 발소리만이 불협화음처럼 울렸다.

열린 찬장 문 안쪽은 어두웠다. 그가 손을 뻗어 문을 활짝 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그러나 지우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순간, 뒤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굳은 채 서 있었다.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툭, 툭.

이번에는 두 번. 방금보다 더 가까이서.

지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테이블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의 소중한 물. 빈 물통들이, 하나씩, 테이블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투명한 손이 밀어 떨어뜨리는 것처럼.

쿵, 쿵, 쿵.

플라스틱 통들이 떨어지며 내는 둔탁한 소리가 그의 귓가에 망치질하듯 박혔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공포로 가득 찼다. 이건 착각도, 피로도 아니었다.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는 이곳에 홀로 있지 않았다.

차가운 기운이 그의 뒤에서 그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마치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그의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처럼.

지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구멍에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등 뒤의 섬뜩한 기척.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그의 마지막 피난처를 침범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텅 빈 아파트,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이제는 탈출조차 불가능했다. 그는 그곳에 갇힌 채,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와 마주해야 했다.

차갑고 축축한, 형체 없는 손길이 그의 어깨를 감싸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는 결국 단도를 떨어뜨렸다. 쨍그랑,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적을 깨고 아파트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