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도시의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난 풍경 위로, 붉고 탁한 노을이 주검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폐허가 된 빌딩들은 찢어진 그림자처럼 하늘을 찔렀고, 거리는 녹슨 강철과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현우는 낡은 배낭을 고쳐 메고 주저앉은 버스 잔해 옆을 조용히 지나쳤다. 그의 발걸음은 훈련된 사냥꾼처럼 가벼웠으나, 그 속에 숨겨진 피로는 감출 수 없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지 어언 3년. 셈을 할 필요도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곧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무의미한 숫자였다.

“젠장, 또 헛걸음인가.”

그의 중얼거림은 텅 빈 도시에 고스란히 울렸다. 이현우는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훔치며 망가진 편의점 유리창 너머를 살폈다. 그의 목표는 식량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더 희귀하고 절실한 것, 바로 오래된 기록이나 지도 조각이었다. 며칠 전, 그는 간신히 몸을 피했던 국립 도서관의 파괴된 자료실 한 구석에서 기이한 문양과 함께 알 수 없는 고어로 쓰인 양피지 조각을 발견했다. 분명 미지의 언어였지만, 단편적인 지도 같은 형태와 특정 기호들이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 깊숙한 지하.

그때였다. 으스스한 정적을 깨고 저 멀리서 섬뜩한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가 아니었다. 꽤 많은 수의 감염자들이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짐승처럼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깨진 건물 잔해들이 쌓인 좁은 틈새로 파고들자, 희미한 햇빛마저 차단되어 순식간에 어둠이 밀려왔다.

숨을 죽이자, 그의 귀에는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시멘트 가루와 흙먼지가 코를 찔렀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감염자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움직였다. 축 늘어진 팔다리, 썩어 문드러진 피부, 그리고 검게 변한 눈동자. 그들은 냄새와 소리에 반응했다. 이제는 눈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들이 풍기는 시체 썩는 냄새가 틈새 안까지 스며들어왔다.

‘하나, 둘, 셋… 일곱 마리.’

시야는 흐릿했지만, 움직임의 속도와 소리의 방향으로 대략적인 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현우가 숨어든 건물 입구 쪽을 지나치려는 찰나, 갑자기 한 감염자의 삐걱거리는 발소리가 멈췄다. 녀석의 고개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며 틈새 쪽을 향했다. 썩은 콧구멍이 벌름거리는 듯했다.

‘설마… 들킨 건가?’

이현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심장이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렸다. 그러나 녀석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무리를 따라 이동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감염자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이현우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다시금 폐허를 스캔했다. 망가진 건물들, 뒤집힌 차량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침식하는 덩굴 식물들. 이 모든 것들은 한때 번성했던 문명의 비참한 마지막을 웅변하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은 남아돌잖아.”

그는 작은 배낭에서 낡은 양피지 조각을 꺼냈다. 손때 묻은 종이는 희미한 달빛 아래 더욱 바스락거렸다. 지도의 일부는 불에 타거나 찢겨나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선명하게 그려진 하나의 기호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삼각형 안에 원이 그려진 형태. 그리고 그 아래로 길게 뻗은 세 개의 선.

그것은 단순히 지도가 아니었다. 어떤 장소를 향한 ‘열쇠’처럼 느껴졌다. 그의 기억 속에서, 이 기호는 멸망 전 문명 연구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고대 전설과 어렴풋이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전 사라진 왕국, 혹은 존재 자체가 부정되었던 미지의 문명. 그들이 숨겨놓은 깊은 지하의 유적.

이현우는 양피지 조각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폐허의 심장부 어딘가에, 그가 찾던 입구가 숨겨져 있을 터였다. 그는 건물 잔해 더미를 지나,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로 향했다. 그곳은 햇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음침한 공간이었다. 오래된 시멘트 벽에는 거대한 덩굴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고, 공기 중에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여기인가…?’

무너진 지하 주차장 입구를 발견했을 때, 이현우는 거의 확신했다. 간판은 녹슬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입구는 거대한 바위와 콘크리트 조각들로 거의 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 틈새로 보이는 안쪽은 일반적인 지하 주차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기둥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고, 그 기둥들 사이로 뭔가 인공적인 구조물들이 솟아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돌무더기를 헤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이 그의 어깨를 짓누를 듯 위협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안에는 단순한 보급품이나 은신처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난 3년간 그를 이끌었던 유일한 감정, 즉 생존 본능을 뛰어넘는 미지의 이끌림이었다.

“하아… 하아…”

겨우 몸 하나가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틈을 만들어냈다. 이현우는 낡은 손전등을 꺼내 조심스럽게 빛을 비췄다. 빛줄기가 닿은 곳은 깊고 어두운 통로였다. 먼지가 자욱하고 축축한 공기가 그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통로 벽면은 거친 돌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반적인 건축 방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투박하면서도 묘하게 정교한, 고대 문명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때, 통로 안쪽에서 희미하게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혹은 깊은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 이현우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감염자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지상보다, 미지의 위협이 도사리는 지하가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이미 통로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손전등 빛이 더 깊은 곳을 비추자, 통로 끝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그 문은 단순한 철문이 아니었다. 거대한 바위가 정교하게 깎여 만들어진 듯한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 중앙에는, 양피지 조각에서 보았던 바로 그 기호, 삼각형 안에 원이 그려진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찾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3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심장이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닌, 진짜 호기심과 전율로 뛰기 시작했다. 이 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감염병이 창궐하기 전, 수많은 학자들이 미신으로 치부했던 고대 문명의 비밀이 정말로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현우는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댔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문은 육중했고,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닳아빠진 양피지 조각을 다시 꺼내 문양을 확인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문은 그저 미는 것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잠겨 있는 게 아니었어. 이건… 퍼즐이야.’

양피지 조각에 그려진 다른 작은 기호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었다. 이 고대 문명의 유적을 열기 위한 열쇠, 혹은 절차를 알려주는 힌트였다.

그는 문양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삼각형의 꼭짓점, 원의 중심, 그리고 세 개의 선이 시작되는 지점. 그의 손끝이 기호들을 어루만지자, 문득 손끝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웅장한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돌문이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틈새로 스며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바람은 흙먼지 대신, 이상하고도 옅은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문을 통과하자, 이현우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멈췄다.

그것은 상상했던 지하 주차장도, 으스스한 지하실도 아니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듯한 거대한 지하 동굴이었다.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이름 모를 광석들이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굴 중앙에는 마치 제단처럼 보이는 거대한 돌 구조물이 솟아 있었고, 그 주위로는 깨진 토기 조각들과 함께 마른 해골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멸망한 지상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현우는 손전등을 들어 주위를 비췄다. 그의 시선이 마른 해골들에 머물렀다. 이들은 감염자들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뼈만 남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 유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리고 그의 시선이 제단으로 향했을 때, 그는 눈을 비볐다. 제단 위에는 녹슨 금속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는 상자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발소리가 동굴 안에 메아리쳤다. 마치 이곳의 주인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먼지에 덮인 낡은 두루마리 하나와,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금속 조각이 들어 있었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고대 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금속 조각에는 양피지 조각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순간, 이현우의 뒤편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익— 끽끽…

돌아보자, 거대한 문이 닫히고 있었다. 아니, 닫히는 것이 아니라, 문 틈새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시커먼 촉수였다. 두껍고 끈적거리는 촉수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주변의 돌을 부수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촉수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이현우의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젠장… 나 혼자가 아니었어.’

문은 거의 닫혔고, 촉수는 이미 안쪽으로 절반 이상 침투해 있었다. 그의 눈은 빠르게 유적 내부를 스캔했다. 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루마리와 금속 조각을 챙겨들고, 재빨리 제단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촉수는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동굴 내부를 더듬었다. 그리고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방향을 틀었다.

녀석의 목표는… 이현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