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학원 카르텔 – 스물세 번째 이야기: 심연의 숨결
밤은 깊었고, 아크리아 마법학원의 첨탑들은 별빛 아래 날카로운 실루엣을 그렸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 지하 층에 틀어박혀 고서적 분류 작업을 하던 나는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새벽 2시.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학원 규율 위반? 그래, 그랬지. 하지만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그 지긋지긋한 악몽의 근원을.
손에 든 낡은 등불의 마법석이 어슴푸레한 빛을 뿜었다. 나는 도서관 관리인의 감시 마법을 피해 가장 깊은 곳, 보통은 학생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서고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퀴퀴한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마법으로 강화된 철문 앞. 닳아빠진 자물쇠는 육안으로 봐도 수십 년은 되어 보였다.
“젠장, 정말 이거였나.”
며칠 전, 낡은 마법학원 기록부에서 우연히 발견한 희미한 암호. 학원 개교 초기, 지하 미궁에 대한 경고문 아래 새겨져 있던 알 수 없는 문양. 그리고 이 자물쇠에 새겨진 기호가 정확히 일치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저 오래된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만 알려진 곳. 선배들은 귀신이 나온다는 둥, 금지된 마법이 봉인되어 있다는 둥 떠들어댔지만, 내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자물쇠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마력을 집중하자 손끝에서 푸른색 섬광이 일었다. 이따금 고서적에서 발견되는 고대 잠금 마법은 현대 마법사들에겐 오히려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은 패턴을 해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나는 지금, 학원에서 가장 위험한 문을 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안쪽으로 밀렸다. 안에서는 끈적한 어둠이 쏟아져 나왔다. 평범한 어둠이 아니었다.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깊이를 알 수 없는 농밀한 어둠. 등불의 빛조차 그 어둠 속에서는 힘을 잃는 듯 희미하게 흔들렸다. 습하고,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확 끼쳐왔다.
“으읍…”
본능적인 거부감에 숨을 들이켰다. 나는 문을 완전히 열고 발을 내디뎠다. 좁고 가파른 돌계단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계단 곳곳에는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었고, 벽에는 축축한 습기가 배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더욱 거세게 울렸다. 등불의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은 여전히 암흑이었다.
십여 미터는 족히 내려갔을까. 계단은 넓은 통로로 이어졌다. 통로 양옆으로는 굳게 닫힌 철문들이 일정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모두 녹슬고 낡아 있었으며, 문마다 기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문양은 찢어진 눈동자 같았고, 어떤 것은 엉켜 붙은 촉수 같았다. 분명히 봉인이나 경고를 뜻하는 마법적인 기호들이었다.
이곳이 단순한 서고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통로를 따라 걷자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이상한 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 소리, 하다못해 내 발소리조차 공기에 흡수되는 듯 희미했다. 마치 모든 소리가 죽어버린 공간 같았다.
“젠장, 이곳은 대체…”
발밑에 무언가 밟혔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 등불을 비춰보니 낡은 시험관 파편이었다. 주변에는 오래된 약병과 알 수 없는 액체가 말라붙은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마치 버려진 실험실의 잔해 같았다. 나는 불안한 예감에 심장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통로는 점점 넓어졌고, 마침내 거대한 원형 홀에 도착했다. 홀의 중앙에는 지름 족히 십 미터는 될 법한 깊은 구덩이가 뚫려 있었다. 등불을 비춰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구덩이 가장자리에는 굵은 쇠사슬들이 여러 개 늘어져 있었는데, 그 사슬들은 구덩이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무엇인가를 가두거나, 혹은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 같았다.
그리고 홀의 벽면. 섬뜩한 광경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벽 전체에 걸쳐 온갖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의 형상이라기엔 너무나 왜곡되고, 뼈대가 뒤틀린 괴물들. 제물이 된 듯한 인간들. 그리고 그들 사이사이에, 피로 그린 듯한 붉은색 문양들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마법적인 그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원시적이고 잔혹했다.
갑자기, 등불의 빛이 불안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법석의 에너지가 급격히 고갈되는 듯했다. 동시에, 구덩이 안쪽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바닥이, 이 거대한 홀 전체가 아주 느리게 진동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쉬이이익…’
귓가에 뱀이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아니, 너무나 선명했다.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고개를 돌리자, 구덩이 가장자리에 늘어진 쇠사슬 중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아래쪽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말도 안 돼…”
무언가가, 저 아래 구덩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무언가가.
등불의 빛이 더욱 약해지더니, 마침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꺼져버렸다. 완벽한 어둠. 눈을 떠도, 감아도 똑같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수백 개의 눈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아니, 눈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붉고 축축한, 형체 없는 빛의 점들이 구덩이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심연의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기포처럼.
그리고 그 빛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차갑고, 습하고, 오래된 죽음의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악몽에서 매일 밤 시달리던, 바로 그 끔찍한 기운이었다.
나는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오직 내 심장만이 미친 듯이 발악하며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구덩이 속에서 붉은 기포들이 떠오르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포들 사이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꾸르륵… 스스스슥…*
마치 수만 년 동안 갇혀 있던 거대한 생물이 잠에서 깨어나, 끈적한 진흙 속을 기어 나오는 듯한 소리.
그 소리는 점차 커지며 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나는 알았다. 내가 찾아 헤매던 악몽의 근원이 바로 이곳에, 이 구덩이 속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악몽이 봉인을 뚫고 지상으로 나오려 한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 끔찍한 소리에 압도당해 뒷걸음질 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등 뒤에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었다.
*콰아아아앙!*
구덩이 속에서 거대한 물체가 솟구쳐 오르는 소리와 함께, 홀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귓가에 속삭이는 수천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우리의 아이여…”**
그 목소리는 내 정신을 찢어발기는 듯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붉은 빛들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며,
거대한 형체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차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존재해서는 안 될 끔찍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경악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아크리아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금기, 그 최악의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향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먹이를 발견한 포식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