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락으로 떨어진 검
등골을 꿰뚫는 고통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 아렸고, 목덜미를 휘감은 냉기가 이성은 물론 감각마저 마비시켰다. 진련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죽어가는 과정일지도 몰랐다.
차가운 바위가 등허리를 짓눌렀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끈적한 피가 시야를 가렸고, 흐릿한 시선 너머로는 아득한 절벽의 윤곽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지금, 태청문의 금지구역이자 수백 년간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했던 죽음의 계곡, ‘청아곡’의 가장 깊은 나락에 처박혀 있었다.
“젠장….”
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터져 나왔다. 피와 재가 섞인 흙먼지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기억은 마치 찢겨진 조각그림처럼 불완전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선명한 장면만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의 의식을 지배했다.
* * *
“련아, 이 길만 넘어서면 우리는 진정한 신선에 오를 수 있다! 함께 무상의 경지에 이르자!”
무영은 언제나 그랬다. 뜨겁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눈빛. 태청문의 개파 이래 최고의 천재로 불렸던 그는, 진련에게 둘도 없는 벗이자 형제였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수련하고, 함께 밤새 무학 비급을 탐독하며, 함께 미래의 신선계를 꿈꾸던 존재. 그 꿈은 늘 진련의 가장 큰 희망이자 삶의 이유였다.
그날도 무영은 평소처럼 진련을 이끌었다.
“이곳에 태청문 선조의 비전이 숨겨져 있다! 나는 무려 수십 년을 찾아 헤맸지. 련아, 너라면 이 봉인을 풀 수 있을 것이다. 너의 ‘태음기’는 세상의 모든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무영의 말은 언제나 진련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태음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이 체질. 만물의 기운을 제약 없이 흡수하고 조율할 수 있는, 신선조차 탐낼 능력. 하지만 동시에 폭주하기 쉬운 위험한 힘이었다. 무영만이 그 힘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법을 함께 연구해 주었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진련은 진작에 자멸했을 것이다.
태청문 깊숙이 숨겨진 고대 유적. 거대한 석문에는 복잡한 진법이 새겨져 있었다. 무영은 흥분으로 빛나는 눈으로 진련을 재촉했다.
“서둘러, 련아! 시간이 없다. 저 너머에 우리가 찾던 모든 것이 있을 거야!”
진련은 무영의 말대로 자신의 태음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석문의 진법에 밀어 넣었다. 어마어마한 영기(靈氣)가 석문에서 터져 나오며 진련의 몸을 휘감았다. 온몸의 경락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차가운 태음기가 점차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석문이 서서히 열리며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됐다!”
진련은 기쁨에 차 무영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비친 무영의 얼굴은 처음 보는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탐욕과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 그리고 그 손에 들린 것은… 태청문의 비전 신검, ‘천명도(天命刀)’였다.
“수고했다, 진련. 너의 태음기는 정말 대단해. 하지만 이 유물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나다. 너 같은 어중이떠중이에게 그 귀한 힘을 넘겨줄 순 없지.”
차갑고 잔혹한 목소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불길한 예감에 진련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믿을 수 없었다. 감히, 무영이?
“무영… 네가 지금 무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련의 등 뒤에서 칼날이 솟아올랐다. 섬뜩할 정도로 예리한 고통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천명도는 진련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커헉…!”
입안 가득 피가 터져 나왔다. 진련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비열한 웃음을 짓는 무영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피 묻은 천명도가 들려 있었다.
“네놈의 태음기는 영물과도 같지. 내가 완전히 흡수하려면 네가 죽는 순간의 기운이 가장 순수할 때가 좋다더군. 하하하! 자, 이제 잠자코 내 거름이 되어 주거라, 나의 벗이여.”
무영은 비웃듯 칼날을 비틀었다. 진련의 몸에서 모든 기운이 빨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끓어오르던 태음기가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무영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으아아아아!”
진련의 비명이 고대 유적을 뒤흔들었다. 몸의 모든 힘이 빠져나가며 육신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무영은 그를 그대로 들어 올려 석문 밖으로 내던졌다.
“이제 네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걱정 마라, 태청문에는 네가 태음기 폭주로 자멸했다고 알릴 테니. 너의 모든 것은 이제 내 것이 될 테니, 편히 잠들거라.”
비릿한 조소와 함께, 진련의 몸은 아득한 심연 속으로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태청문 선조의 비전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승리감에 젖어 웃고 있던 무영의 얼굴이었다.
* * *
추락하는 동안 몸의 모든 것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이 지옥 같은 계곡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차가운 바닥에서 피가 흐르는 감각조차 무뎌졌다.
‘무영… 나의 벗….’
눈물이 흘렀다. 분노가 아닌, 배신감과 슬픔에 대한 눈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존재에게 칼을 맞았다. 태청문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갔던 친구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모든 것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의 찬란했던 젊음도, 태음기 천재라는 명성도, 신선을 향한 꿈도, 그 모든 것이 한순순에 재가 되어버렸다.
그때였다.
차가운 바닥에 손가락 끝이 닿았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것은 젖은 흙덩이가 아니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그러나 동시에 미묘하게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무언가였다.
진련은 온몸의 잔여 기력을 쥐어짜 간신히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낡고 오래된 목각 인형이었다. 어릴 적, 태청문에 갓 들어온 그를 무시하던 다른 문도들 사이에서 홀로 다가와 준 무영이 건네주었던 인형이었다. ‘외로울 때 이 인형을 보렴, 내가 늘 네 옆에 있을게.’ 그때의 그 말은 얼마나 달콤하고 거짓되었던가.
인형이 손에 닿는 순간, 진련의 몸속에 남아있던 미약한 태음기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용이 깨어나는 것처럼, 전신의 경락이 미친 듯이 팽창하고 수축했다. 그의 몸속에 흡수되었던 태음기의 일부가 무영에게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련의 몸속 깊은 곳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목각 인형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인형의 눈에서 영롱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진련의 상처 입은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을 꿰뚫었던 치명적인 상처가 마치 시간이 되감기는 것처럼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깨진 뼈들이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고, 찢어진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것은, 무영이 말했던 태음기 흡수가 아니었다. 생명의 힘이었다. 치유의 기운이었다.
‘설마… 이 인형은…?’
진련은 눈을 크게 떴다. 흐려져 가던 시야가 선명해졌다. 그의 몸속을 휘감는 신비로운 기운은, 태음기의 기운과는 또 다른, 순수하고 근원적인 생명의 힘이었다.
무영은 이 인형을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진련의 태음기만을 노리고 이 안에 숨겨진 진짜 가치를 알지 못했던 것일까?
목각 인형은 모든 치유 에너지를 쏟아낸 듯, 서서히 빛을 잃어가며 부스러져 사라졌다. 하지만 그 잔해 속에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영롱한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정처럼 투명하고, 그 안에는 아득한 별하늘이 담겨 있는 듯했다.
진련은 그 작은 구슬을 꽉 움켜쥐었다. 온몸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거대한 힘의 폭풍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폭풍 속에서, 무영에게 향한 불타는 분노가 이성을 압도했다.
그는 살아남았다. 배신당하고 죽음의 나락으로 내던져졌지만, 기적처럼 살아났다.
“무영… 네놈….”
진련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지옥불보다 뜨거운 증오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복수의 의지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네가 내게서 빼앗은 모든 것을… 천 배, 만 배로 되갚아 주겠다. 네가 신선이 되는 그 순간… 내가 직접 너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청아곡 깊은 곳에서, 죽음을 거부하고 부활한 한 사내의 처절한 맹세가 울려 퍼졌다. 그의 손에 쥔 수정 구슬은, 어두운 절벽 아래에서 홀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나락으로 떨어진 검은, 피로 물든 복수의 길을 걷기 시작할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