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호가 고요히 심우주를 가르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창밖으로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었지만, 이곳은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었다. 무한한 침묵 속에서, 아틀라스 호는 묵묵히 제 항로를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쇳덩어리였다. 선내의 공기는 늘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었고, 기계음만이 규칙적인 숨소리처럼 울렸다. 지루함은 탐사의 동반자이자 가장 견디기 힘든 적이었다.
함교는 비교적 한산했다. 캡틴 강태준은 사령관 좌석에 몸을 기댄 채 홀로그램 스크린에 띄워진 항해 지도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껏 탐사한 항로와 미탐사 구역이 빼곡하게 표시된 지도는, 그들의 임무가 얼마나 광활하고 끝없는지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옆, 과학 장교 서예린은 늘 그렇듯 복잡한 데이터 스트림에 파묻혀 있었다. 모니터 속에서 춤추는 알 수 없는 숫자들과 그래프들은 그녀에게는 세상 어떤 드라마보다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조종석의 박하람은 지루한지 스로틀 레버를 만지작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의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캡틴.”
예린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스크린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평소보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에는 미약한 흥분감이 섞여 있었다.
“미지의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딥 스캔 센서가 포착했어요.”
강태준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는 긴 항해의 피로가 서려 있었으나, 신호라는 단어에 즉각적인 경계심이 스쳤다.
“위치?”
“좌현 47도, 거리… 약 5만 킬로미터 지점입니다. 특이점은… 이 신호, 기존의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람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단잠을 방해받은 짜증과 함께 호기심이 어렸다.
“설마 또 소행성 무리 탐지 오류는 아니겠지? 전에 그거 때문에 며칠을 허비했잖아.”
예린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의 표정은 신뢰할 수 없는 하람의 농담에 대한 불쾌감과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확신을 동시에 드러냈다.
“오류 가능성은 0.001% 미만입니다. 센서 감도는 최상이에요. 오히려… 너무나도 깨끗한 신호라서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강태준은 잠시 침묵하며 고민했다. 이 지루하고 기나긴 임무 속에서, 미지의 신호는 지루함을 깨뜨릴 단비가 될 수도, 혹은 예상치 못한 재앙의 전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지의 것을 탐사하는 것이 아틀라스 호의 존재 이유였다.
“하람, 진로 수정. 해당 좌표로 이동한다. 속도는 3분의 1 광속 유지.”
“예, 캡틴.” 하람이 능숙하게 키보드를 조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잠투정 대신 미약한 기대감이 번졌다.
거대한 아틀라스 호는 느릿하게 몸체를 틀어 미지의 심연 속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별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 채,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반짝였다.
***
수십 분이 흘렀을까. 함교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었다. 5만 킬로미터라는 거리는 우주에서는 눈 깜빡할 새에 좁혀지는 거리였으나, 미지의 존재를 향한 항해는 매 순간이 팽팽한 줄다리기 같았다.
“캡틴, 육안 관측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예린의 목소리는 이제 숨김없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형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점에 불과했지만, 아틀라스 호가 다가갈수록 그 윤곽이 뚜렷해졌다. 강태준은 사령관 좌석에서 몸을 일으켜 스크린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하람도 조종석의 의자 등받이를 완전히 젖히고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였다. 거대한 검은색 다면체. 마치 시간과 공간 자체를 흡수하려는 듯, 검고 매끄러운 표면은 그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소행성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듯 거대했지만, 날카롭게 재단된 각과 완벽한 비례는 자연의 조화가 아닌, 누군가의 의지 아래 빚어진 조형물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인위적인, 그것도 인류의 기술로는 감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문명이 만든 것임이 분명했다.
“이게… 뭐야?” 하람의 목소리가 경외감과 함께 공포에 젖어 있었다.
예린은 숨조차 쉬지 않고 스크린에 고정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뇌는 이미 온갖 가설과 의문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이런 구조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합금으로 만들어진 건지도 알 수 없어요. 레이더조차 뚫고 지나가 버립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강태준은 무전기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전 승무원, 전원 비상대기. 함선 방어막 최고 출력으로 올려. 접근 거리 1000킬로미터, 정지.”
“예, 캡틴.”
아틀라스 호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거대한 검은 다면체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침묵 속에서, 유물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거대하게 도사리고 있었다. 우주선 내 모든 이들의 심장이 일제히 그 미지의 존재를 향해 뛰고 있었다.
“에너지 스캔 진행해, 예린.”
예린은 재빨리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아틀라스 호의 선체에서 다양한 주파수의 스캔 광선이 유물을 향해 발사되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아니, 감지되지만 측정 불가능합니다. 모든 파장을 흡수하고… 마치 무(無)의 공간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에 당혹감과 함께 깊은 호기심이 배어 있었다.
그때였다.
거대한 검은 다면체의 한쪽 면에서, 아주 미세한 균열이 나타났다. 마치 단단한 껍질이 깨어지는 듯한 섬세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이제껏 본 적 없는, 은은하고 신비로운 보랏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심연의 별 하나가 깨어나는 듯한 빛이었다.
“캡틴… 저것은…!” 예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태준은 스크린 속 보랏빛 섬광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것은 인류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문명의 조각. 그들은 지금,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 중 하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이제 막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