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깊었고,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지쳐 모르는 눈동자처럼 깜빡였다. 지훈은 24층, 자신의 새 아파트 현관문을 열며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길고 긴 하루였다. 새로 이사 온 이 아파트는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라지만,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내부 구조도 꽤나 개성 있었다. 특히, 한때 ‘새벽 광장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렸던 단지의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고요함은 오히려 기이할 정도였다. 그는 그저 고요함이 좋았고, 그 독특한 분위기에 끌려 이곳을 택했다.

문을 닫자마자 찾아오는 완벽한 정적.
탁, 하고 열쇠를 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아…”

어깨를 늘어뜨린 채 거실로 향했다. 거실의 큰 창문 너머로는 현란한 도시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그는 넥타이를 풀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뻣뻣하게 굳었던 목을 좌우로 몇 번 돌리자 뚝뚝 소리가 났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슥, 슥.
마치 마른 나뭇잎이 바닥에 쓸리는 것 같은 소리.

지훈은 천천히 눈을 떴다. 피곤해서 헛것을 들었나 싶었다.
거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창밖의 바람 소리인가?
여름인데 무슨 나뭇잎 소리.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시려는데,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과일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이상했다. 아까 외출하기 전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던 사과 두 개가, 미묘하게 위치를 바꾼 것 같았다. 하나는 살짝 굴러 떨어진 것처럼 바구니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쳐 있었다.

‘내가 아침에 너무 졸았나?’

피곤하면 별것 아닌 것도 이상하게 보이는 법이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사과를 다시 바구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이상하게도, 실내 공기보다 사과가 훨씬 더 차가웠다. 마치 냉장고에서 막 꺼낸 것처럼.

꿀꺽, 꿀꺽.

시원한 물을 마시며 다시 거실로 나왔다. 에어컨을 켰지만, 방 전체에 감도는 서늘한 기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창밖의 도시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왠지 모르게 불길해 보였다.

그때였다.
쿵!

갑작스러운 소리에 지훈은 몸을 움찔 떨었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소리는 주방 쪽에서 들려왔다.

‘…뭐지?’

천천히 주방으로 향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혹시 도둑인가? 24층에?
주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나뒹구는 냄비였다. 아침에 설거지 후 식기 건조대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던 냄비였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냄비가 뎅그렁,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누구… 없어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대답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분명히 그 냄비는 혼자서 떨어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건조대 한가운데에 안정적으로 놓여 있었다. 누군가 건드리지 않고서야 절대 떨어질 리가 없었다.

지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관문도 잠겨 있었다. 온 집안이 밀폐된 공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냄비를 주워 건조대에 다시 올려놓았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거실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명백하고, 아주 또렷한 소리였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지훈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주방을 뛰쳐나왔다.
거실, 그의 서재용 책상 위였다. 아침에 읽던 책 위에 올려두었던 작은 유리 장식품이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조각들은 마치 누군가 집어 던진 것처럼 책상 너머, 꽤 멀리까지 튀어 있었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눈앞에서 벌어진 이 현상은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데, 물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깨지고 있었다.
이건… 폴터가이스트였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절박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거실의 큰 창문 너머로 보이던 도시의 불빛들이 일제히 깜빡이기 시작했다.
지훈의 아파트 창문에서만!
마치 그 불빛들이, 그의 공포에 공명이라도 하듯, 미친 듯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지직, 지직.

눈앞의 기괴한 광경에 지훈은 숨을 헐떡였다.
그때, 저 멀리 복도 끝, 침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삐걱, 삐걱.
오래된 나무 문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
문은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활짝 열렸다.
안쪽은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그를 응시하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이 전해졌다.
차가운 공기가 복도를 타고 흘러나왔다.

“으아악!”

지훈은 비명을 지르며 벽을 타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소리나 물건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침범해 들어왔다. 그의 가장 사적인 공간, 그의 안식처인 침실까지.

그는 본능적으로 현관문 쪽으로 달렸다. 이 집에서 벗어나야 했다.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잠겨 있었다.
분명히, 아까 집에 들어올 때 잠그지 않았다. 늘 귀찮아서 안 잠그는 버릇이 있었다.

‘안 돼! 안 잠갔는데!’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한번 손잡이를 잡고 온 힘을 다해 돌렸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컥!
그 순간, 등 뒤에서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풀리는 소리가 아니라, 잠기는 소리였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침실 문이 이제는 절반쯤 다시 닫혀 있었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아까까지는 없었던, 새빨간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그는 보았다.
마치 누군가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것처럼.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그의 노트북이었다.
절전 모드였던 화면이, 스스로 번쩍 하고 켜졌다.
그리고 화면 가득, 새까만 배경 위에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환영한다.]

섬뜩한 메시지에 지훈은 얼어붙었다.
그때, 뒤에서 무언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차가운, 축축한 손아귀.

“흐읍!”

그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아까 그 주방에서 떨어진 냄비였다.
냄비가… 스스로 움직여 그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니, 냄비만이 아니었다.
거실 바닥의 유리 조각들이, 마치 작은 이빨처럼 움직이며 그의 발목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아픔보다 더 큰 섬뜩함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사방에서 차가운 공기가 그를 감쌌다.
귓가에, 아주 나지막하고 음습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들리지 않는 언어였지만, 그 의미는 분명하게 전해졌다.

‘넌… 내 것이다.’

지훈의 시선은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
붉은 글자가 스르륵 바뀌고 있었다.
새로운 메시지.

[이곳은…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새벽 광장’의 심장이었다.]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집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꼼짝없이, 그 차가운 손아귀에 붙들려 있었다.
어둠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침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붉은 섬광이, 더욱 강렬하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 막 깨어난 거대한 존재처럼.
그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