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 마법 학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였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고색창연한 돌벽은 살아 숨 쉬는 듯한 고풍스러운 에너지를 뿜어냈고, 끝없이 늘어선 강의실과 연구동은 마법의 숨결로 가득했다. 하지만 서진은 이 모든 겉치레 아래, 학교의 심장부에 똬리를 튼 깊고 어두운 비밀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비밀의 실마리는 늘 그렇듯, 가장 먼지 쌓인 곳에 숨겨져 있었다.
아르케오 도서관의 최하층, 아무도 찾지 않는 고대 마법 기록 보관소는 서진의 은밀한 놀이터였다. 희미한 룬 문자 연구로 학부 장학금을 타낸 그는, 평소라면 감히 발조차 들일 수 없는 이 금단의 구역에서 몇 주째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퀴퀴한 종이 냄새와 오래된 잉크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오히려 그에게 평온을 주었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서가에는 수천 년 전 멸망한 왕국의 마법 체계, 잊힌 고대 종족의 주술, 심지어는 이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려 했던 광인들의 기록까지, 인류 마법 역사의 모든 흔적이 잠들어 있었다.
오늘 서진의 목표는 ‘무형의 저주’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다. 접촉 없이 정신을 갉아먹고, 영혼을 좀먹는,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존재. 최근 몇 년 사이, 학원 내에서 이따금 발생하던 원인 불명의 ‘정신 붕괴’ 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직감 때문이었다. 그는 무수히 많은 고문서를 뒤적였다. 먼지에 재채기를 하다 낡은 안경을 고쳐 쓰는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 낯선 감촉이 스쳤다.
“이건…?”
고문서의 빽빽한 기록 사이에 얇게 끼워져 있던, 손바닥만 한 양피지 조각이었다. 너무나 낡아 윤곽조차 희미해진 조각에는 잉크가 아닌 핏빛 액체로 그려진 듯한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일종의 지도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학원 배치도와는 전혀 달랐다. 중앙에는 마치 거대한 심장이 박동하는 듯한 불규칙한 원형 문양이 있었고, 그 주위로 복잡한 선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지도 하단에 거의 지워지다시피 쓰여 있는 세 단어였다.
‘절대, 열지 마라.’
‘어둠, 그 너머에.’
‘크로노스의… 피.’
서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로노스’라는 단어는 학교의 이름과 같았다. 그리고 ‘피’라니.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했다. 그는 양피지 조각을 주머니에 깊숙이 쑤셔 넣었다. 마치 누군가 이 조각을 찾고 있었다는 듯이,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서진 군, 아직도 여기 있었나?”
등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서진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아르케오 도서관의 관리인이자, ‘잊힌 마법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노학자, 엘리야 교수가 거기 서 있었다. 늘 그렇듯 온화한 미소였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롭게 서진의 손에 들린 고문서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교수님, 아직 자료를 다 못 찾아서요.” 서진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냈다.
“무형의 저주라… 흥미로운 주제지만, 젊은이에게는 다소 위험한 연구일세. 모든 미지의 것이 탐구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법이지.” 엘리야 교수는 서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특히, 학교의 근간과 관련된 기록은 더욱 그렇고.”
서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양피지 조각을 움켜쥐었다. 교수가 자신의 연구 주제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근간’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다니. 단순한 우연일까?
“…알겠습니다, 교수님. 주의하겠습니다.”
“그래야지. 크로노스는 자네 같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아끼네. 너무 깊이 파고들다 길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
엘리야 교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 서가를 따라 사라졌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서진은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교수의 말은 경고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조언이었을까. 그의 평온한 표정 뒤에 숨겨진 차가운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날 밤, 서진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양피지 조각과 엘리야 교수의 경고만이 맴돌았다. 그는 결국 랜턴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양피지 조각을 다시 꺼내들었다. 심장 모양의 문양은 학교의 지하 시설 배치도와 놀랍도록 일치했다. 특히, 서진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제7 격리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의 흔적이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곳은 지도상으로만 존재하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공간이었다.
서진은 결심했다. 이 미스터리를 파헤치지 않고서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몰래 학원 지하 통로 지도를 구했다. 양피지에 그려진 기호와 학원 지도를 대조해 보니, 오래된 보일러실 뒤편에 숨겨진 비상 통로와 그가 발견한 ‘제7 격리 구역’이 이어져 있었다. 보일러실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곳이라, 야간에는 경비도 소홀할 터였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서진은 검은 후드티를 눌러쓰고 보일러실로 향했다. 낡은 철문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그를 맞이했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사용되지 않는 기계들이 흉물처럼 늘어서 있었고, 녹슨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양피지 지도를 따라 벽의 균열을 더듬던 서진의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잡혔다.
낡은 벽돌을 밀어내자, 숨겨진 틈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녹슨 손잡이가 달린 육중한 철문이 있었다. 문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지하의 깊이를 짐작하게 했다. 서진은 망설이지 않고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쇠붙이가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불쾌감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뻑뻑하게 잠겨 있던 문은 억지로 힘을 주자 삐걱이며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문 너머는 암흑 그 자체였다. 랜턴 불빛이 닿지 않는 심연. 서진은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다. 묵은 곰팡이 냄새와 함께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확 끼쳐왔다. 마치 오랫동안 썩은 피와 시체가 뒤섞인 듯한 냄새였다. 그의 발아래에는 축축한 흙이 아닌, 정체 모를 액체에 젖은 듯한 끈적한 바닥이 펼쳐졌다.
점점 더 깊이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갑고 습해졌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은 오직 서진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아주 희미하게,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흐읍… 흐읍…’
그것은 마치 고통스럽게 숨을 쉬는 소리 같기도, 아니면… 슬프게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인간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너무나 거칠고, 동시에 너무나 처량했다. 서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랜턴을 꽉 쥐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로처럼 얽힌 복도를 지나자,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지하수로의 일부처럼 보였다. 좁은 통로를 따라 흐르는 물은 핏빛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진은 그 붉은 물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 일그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물길을 따라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마침내 넓은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거대한 원형 공간이었다. 한가운데에는 낡고 녹슨 철제 제단이 솟아 있었다. 제단의 사방에는 알 수 없는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랜턴 불빛에 비치자 마치 꿈틀거리는 벌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제단의 꼭대기에는…
서진의 눈이 충혈되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유리관이 놓여 있었다. 유리관 안에는 끈적하고 탁한 붉은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액체 속에는… 무엇인지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가 유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여러 생명체의 조각을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심장이 불규칙하게 박동하고, 수많은 촉수들이 미끈거리는 액체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생명체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가, 바로 그 처량하고 고통스러운 ‘흐읍… 흐읍…’ 소리였다.
그 순간, 서진은 양피지 조각에 적힌 ‘크로노스의 피’라는 문구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 끔찍한 생명체가 바로… 크로노스 학원의 심장이자, 모든 마법 에너지의 근원이란 말인가? 아니면, 더 끔찍한 무언가?
등 뒤에서 섬뜩한 한기가 밀려왔다. 서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 서 있는 것은… 엘리야 교수였다. 그의 온화했던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차갑게 얼어붙은, 마치 죽은 자의 눈동자 같은 시선이 서진을 향해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고 뾰족한 은빛 단도가 들려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엘리야 교수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너무 깊이 파고들다 길을 잃지 말라고 분명 경고했을 텐데.”
그의 눈빛은 살의로 번뜩였다. 서진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학교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살아있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악몽의 일부가 그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유리관 속의 괴물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숨 쉬고 있었고, 핏빛 수로의 물은 섬뜩하게 반짝였다. 서진은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공포에 질려 얼어붙어 있었다.
“이제… 크로노스의 일부가 될 시간이다.”
엘리야 교수가 단도를 치켜들었다. 핏빛 지하에 괴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서진의 비명 같은 절규가 터져 나오려 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