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보이지 않는 균열

한시우는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의 퇴근길은 늘 한결같았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듯 지겨운 풍경이 반복되었다. 텁텁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스크린 속 활자를 헤쳐나가는 일. 그게 시우의 일상이었다. 퇴근 후에는? 텅 빈 1207호에 들어서 배달 앱을 뒤적이고, 먹고, 무의미한 영상을 보다 잠드는 것. 그의 서른두 해 인생은 마치 잘 짜인 기계처럼 삐걱거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어제까진 그랬다.

“젠장, 또.”

현관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곰팡이 냄새 같기도 하고, 어딘가 눅눅한 흙냄새 같기도 한 불쾌한 기운이었다. 지난주부터였다. 분명히 청소를 하고 환기를 시켰는데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늘 이런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시우는 한숨을 쉬며 거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1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심의 야경은 언제나처럼 화려했고, 그 아래를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은 이곳까지 희미하게나마 올라왔다. 그의 아파트는 이 거대한 도시의 작은 점 하나에 불과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가운을 걸친 시우는 주방으로 향했다.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셔야 불쾌한 기분이 가실 것 같았다. 컵을 들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쨍그랑!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머그컵 하나가 갑자기 기울어지더니, 굉음을 내며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시우는 순간 얼어붙었다. 컵은 분명 선반 안쪽에, 안정적으로 놓여 있었다. 게다가 그가 손을 대기 직전이었다.

“뭐야…?”

그는 흩어진 유리 조각과 검은 액체 얼룩을 내려다봤다. 컵 안에는 방금 그가 따뜻한 물을 채우려고 했던 차 티백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컵을 밀어 떨어뜨린 것처럼 보였다. 시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진인가? 아니, 주변 건물이 흔들리는 걸 느끼지 못했다. 혹은…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그는 스스로의 어설픈 추측에 피식 웃었다. 피로가 쌓여 신경이 예민해졌을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유리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쨍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날 밤, 시우는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침실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분명히 잠그고 잤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는 다시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덜컥, 철컥. 단단히 잠겼다. 하지만 잠시 후, 또다시 삐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장난하나.”

시우는 몸을 일으켰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혹시 건물이 오래되어 문이 헐거워진 걸까?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아파트는 지어진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새 건물이었다. 복도에 서서 문을 살폈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착각이겠지.”

그는 자신을 애써 납득시키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한번 생긴 의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밤새도록 귀를 쫑긋 세웠지만, 다행히 더 이상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희미하게 들리는 벽 너머의 웅얼거림에 집중해야 했다. 옆집에서 싸우나? 아니, 벽이 방음이 잘 되는 편이라 평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이상했다. 마치 벽 안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며칠 후, 이상한 현상은 더욱 빈번해졌다.

아침 출근길, 현관에 놓아두었던 차 열쇠가 사라졌다. 온 집안을 뒤진 끝에 침대 아래에서 발견했다. 분명 현관 옆 선반에 두었는데.

저녁 식사 중에는 거실 전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똑, 똑, 똑. 마치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전등은 완전히 나갔고, 시우는 어둠 속에서 저녁을 마쳐야 했다. 관리실에 전화해보니 전체 전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가장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은, 그의 작업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는 일이 잦았다. 모니터 앞에 앉아 집중하고 있을 때면, 등 뒤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탁, 탁, 탁. 마루 바닥을 걷는 듯한 소리. 시우는 여러 번 뒤를 돌아봤지만, 작업실에는 그 혼자였다. 아무도 없었다.

“내가 미쳤나.”

그는 작업실 의자를 뒤로 밀며 중얼거렸다. 정신적인 피로가 극에 달한 기분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계속해서 이상한 일들을 겪다 보니 예민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어느 비 오는 주말이었다. 시우는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앉아 휴대용 단말기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빗소리, 천둥소리, 그리고 어딘가 먼 곳에서 들리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 그 모든 소리들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때였다. 거실 한쪽 벽에 걸려 있던 그림 액자가 갑자기 삐뚜름하게 기울어졌다. 그가 직접 못을 박아 튼튼하게 걸어둔 그림이었다. 시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 없어요?”

나지막이 물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혹시 도둑인가? 하지만 현관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창문 역시 닫혀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림 액자가 저절로 수평을 되찾는가 싶더니, 다시금 더 크게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액자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시우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이건 착각도, 피로도 아니었다. 물리적인 현상이었다. 마치 누군가 그의 눈앞에서 의도적으로 그림을 떨어뜨린 것처럼.

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용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경찰에 신고할까? 하지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집에 유령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미친 사람 취급당할 것이 뻔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숨을 죽였다. 깨진 액자 파편들이 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빗소리만이 웅장하게 창밖을 두드리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시우는 들었다.

쿵.

쿵.

쿵.

그의 등 뒤, 침실 쪽에서 들리는 발소리였다. 이번엔 희미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발꿈치를 바닥에 찍으며 걷는 것처럼, 명확하고 또렷했다. 발소리는 천천히, 아주 느리게 거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시우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은 채, 그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발소리가 그의 바로 등 뒤에서 멈췄다.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싸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그의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누군가 그의 바로 뒤에 서서, 숨을 쉬는 것처럼.

정적.

그리고, 그의 귀에 속삭이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와.”

시우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깨진 액자 조각들만이 섬뜩하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때, 거실 바닥에 뒹굴던 액자 유리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르륵 움직였다.
작은 유리 조각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그의 발치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거실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시우는 보았다.
바닥에 흐릿하게 찍힌, 작은 발자국들을.
어린아이의 것처럼 보이는, 축축한 발자국들을.

그 발자국들은 그의 아파트 현관에서부터 시작되어, 깨진 액자 앞으로,
그리고 그의 발치에 있는 유리 조각을 지나,
마침내 침실 문을 향해 사라지고 있었다.

그제야 시우는 깨달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아파트에, 그와 함께 사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제 막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