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이 스며든 밤이었다. 달빛마저 먹구름에 가려 숨죽인 듯, 세상은 온통 검은 장막에 갇힌 듯 고요했다. 강민은 낡은 도포 자락을 여미며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았다. 그의 귓가에는 매서운 바람 소리 대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어느 날의 비명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을 꿰뚫는 듯한 고통이 치솟았다.

무진.

그 이름을 뇌까릴 때마다 핏물 같은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믿음은 독이 되어 그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았고, 우정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남은 것은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불꽃. 그 불꽃은 그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로,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온 끝에, 지도에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외딴 산골의 주막 앞에 섰다. 쓰러져 가는 주막의 문을 열자, 시큼한 술 냄새와 함께 후텁지근한 공기가 그를 맞았다. 촛불 몇 개가 간신히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고, 낡은 탁자에 앉은 몇몇 사내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불길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그의 등장에 일제히 시선을 던졌으나, 곧 무관심한 듯 다시 제 할 일로 돌아갔다.

강민의 시선은 주막 한 구석, 그림자에 반쯤 가려진 늙은 사내에게 향했다. 찢어진 옷자락과 헝클어진 머리, 하지만 그 눈빛만은 탁류 속에서도 빛나는 돌멩이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가 찾던 ‘귀신 늙은이’였다.

강민은 낡은 의자를 끌어당겨 늙은 사내의 맞은편에 앉았다.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가 고요한 주막 안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아무 말 없이 탁자 위에 은화 한 닢을 던졌다. 쨍그랑, 맑은 소리가 주막 안의 미묘한 침묵을 깨뜨렸다.

늙은 사내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깊게 패인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냉소가 어린 미소가 스쳤다.
“뭘 찾소, 손님?” 그의 목소리는 삐걱거리는 낡은 문짝 같았다. “이런 후미진 곳까지 올 정도면, 꽤나 급한 모양인데.”

“무진.” 강민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주막 안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는 듯했다. 탁자 건너편의 사내들이 힐끗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강민은 오직 늙은 사내의 눈만을 응시했다.

늙은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은화를 집어 들고 손바닥 위에서 몇 번이고 굴렸다.
“흐음, 무진이라… 꽤나 큰 그물이 될 텐데. 그만한 값을 할 수 있겠소?”

“값은 치러질 것이다.” 강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의 검집으로 향해 있었다. 그 동작은 거의 무의식적이었지만, 늙은 사내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늙은 사내는 빙긋이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정보는 돈이 아니라 피를 부르는 법이지. 젊은이의 눈이 마음에 드는군.” 그는 탁자에 바싹 몸을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진 그 자가 요새 크게 움직이고 있소. 단순한 배신자가 아니었지. 그 뒤에는 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어.”

강민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예상했지만, 막상 듣고 나니 분노가 더욱 치밀었다.
“더 거대한 그림자라니?”

“대강주의 지시에 따라 북해의 흑수혈맹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강호 무림을 뒤흔들 대규모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군.” 늙은 사내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들의 본거지는… 녹림 맹주가 버려두고 떠났던 ‘검은 숲’ 깊숙한 곳에 새로이 자리 잡았다더군. 거기로 모든 무력을 집결시키고 있다지.”

강민의 머릿속에 혼란이 휘몰아쳤다. 무진은 단순한 배신자가 아니었다. 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 북해 흑수혈맹과의 연합이라니. 그의 배신은 개인적인 복수를 넘어, 강호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재앙의 서막이었단 말인가?

“검은 숲…” 강민은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눈은 이미 서리가 내린 듯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로 가는 길은?”

늙은 사내는 잠시 침묵하다가, 강민의 눈빛을 읽었는지 손가락으로 주막의 낡은 나무 바닥을 짚었다.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사흘을 가면, 검은 벼랑이 나올 것이오. 그 벼랑 끝에 폐사(廢寺)가 하나 있을 텐데… 그 폐사 뒤편의 지하 동굴이 바로 그들의 비밀 통로라 하더이다.”

정보를 얻었지만, 강민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무진은 이제 단순한 원수가 아니었다. 그는 거대한 악의 중심에 선 존재였다. 그를 쫓는 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고독하고 위험한 전쟁이 될 터였다.

강민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늙은 사내는 굳이 그를 붙잡지 않았다. 주막 문을 열고 나서자, 아까보다 더욱 거세진 바람이 그의 몸을 때렸다. 멀리서 천둥이 울렸다. 쾅! 쾅! 마치 하늘도 그의 앞날을 예견하는 듯했다.

강민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목각 인형을 꺼냈다. 투박하게 깎인 인형은 한때 그와 무진이 함께 만들었던 것이었다. 추억이 아닌, 지옥을 기억하게 하는 물건. 그는 인형을 꽉 쥐었다. 나무 조각이 손아귀에서 삐걱거렸다.

“기다려라, 무진.”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졌지만, 그 의지만큼은 흔들림 없었다. 그의 발걸음은 이미 어둠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피바람이 불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