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대한제국 경성, 깊어가는 밤의 장막이 고풍스러운 한옥 지붕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도성 서쪽, 이른바 ‘신흥 부호’들이 터를 잡기 시작한 언덕배기에 거대한 한옥 저택, 운현각이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장려한 문 앞에 빽빽이 들어선 순사들의 모습은 이 밤의 정적이 예사롭지 않음을 웅변하는 듯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회색 순사복 깃을 파고드는 가운데, 한 젊은이가 순찰차에서 내렸다. 말쑥하게 다려진 남색 정장 위로 얇은 코트가 걸쳐져 있었고,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 낡아 보이는 가죽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주변의 혼란스러운 시선을 아랑곳 않고, 마치 제집 안방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이름은 이서진. 사람들은 그를 ‘추리의 귀신’ 혹은 ‘경성 명탐정’이라 불렀다.

“나으리, 이쪽이십니다!”

저택 안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박정태 경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진을 맞았다. 그의 얼굴은 피로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서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태를 따라 안채로 향했다. 삐걱이는 마루를 지날 때마다 그의 눈은 주변의 모든 것을 스캔하듯 훑어내렸다. 곳곳에 널려있는 도자기와 서책, 그리고 은은하게 비추는 전깃불까지. 이곳은 과거와 현대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안채 깊숙이 자리한 서재였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굵은 밧줄로 단단히 봉쇄된 채 순사 몇 명이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발견된 곳입니다. 강 대감의 서재지요.” 정태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침에 시종이 식사를 올리러 왔다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이상히 여겼답니다. 강 대감은 워낙 고집이 센 분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문을 억지로 열었을 때…”

서진은 닫힌 문을 빤히 응시했다. 문의 틈새, 문고리, 그리고 두꺼운 경첩까지. 그의 시선은 뱀처럼 미끄러져 문 전체를 훑었다.

“강 대감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서진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정태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답했다. “강 대감은 본래 종친 출신으로, 광산 개발로 거부가 된 분이십니다. 최근 몇 년간은 국정에 관여하며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지요. 허나 성미가 불같고 적이 많기로도 유명했습니다. 특히 재산 문제로 가족들과도 불화가 잦았고… 얼마 전에는 사업 문제로 어떤 이와 크게 다투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음…” 서진은 짧게 읊조렸다. “그럼… 문을 열었을 때, 강 대감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정태는 마른침을 삼켰다. “서재 안에서, 책상에 엎드린 채 발견되었습니다. 등에는 칼이 박혀 있었고… 주변은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정태는 문을 가리켰다. “저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빗장이 내려져 있었고, 문틈새도 모두 틀어막혀 있었죠. 창문 또한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살도 모두 튼튼했습니다. 심지어 굴뚝까지 점검했지만, 사람 한 명 드나들 구멍은 없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나으리.”

완벽한 밀실. 서진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많은 가설들이 실타래처럼 엉켰다 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문을 엽시다.” 서진이 나직이 명령했다.

순사들이 밧줄을 풀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퀴퀴한 피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확 하고 서진의 얼굴을 때렸다. 서진은 망설임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서재 안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묵직한 서안(書案) 위에 엎드린 강 대감의 시신은 등 중앙에 박힌 비수와 함께 붉은 피웅덩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서진은 시신에 다가가지 않고, 먼저 방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두꺼운 나무 문은 안쪽에서 빗장으로 잠겨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꺼내 문틈새를 꼼꼼히 살폈다. 미세한 먼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이어 벽에 붙은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덧문까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쪽에는 쇠로 된 빗장이 내려져 있었다. 그는 창틀에 손을 얹어 보았다. 견고했다.

“창문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파손된 흔적이 없습니다. 밖에서 침입자가 있었다면 분명히 흔적을 남겼을 텐데…” 정태가 중얼거렸다.

서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 천장, 그리고 벽면의 그림과 책꽂이까지, 모든 것을 지나쳤다. 그러다 그의 눈이 문득, 벽난로 위에 놓인 오래된 시계에 멈췄다. 묵직한 황동으로 만들어진 시계는 멈춰 있었다. 시각은 새벽 2시 17분.

그리고 서진의 시선은 다시 시신으로 돌아왔다. 강 대감은 고급 비단 한복을 입고 있었고, 등에는 정확히 심장 부근을 꿰뚫은 듯한 비수가 박혀 있었다. 칼자루는 검은 옻칠이 되어 있었고, 그립 부분에는 정교한 은 세공이 박혀 있었다. 칼날은…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칼은 이 방에 있던 것입니까?” 서진이 물었다.

정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감식반의 소견으로는 강 대감의 소장품 중에는 저런 칼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범인이 외부에서 가지고 들어온 것일 겁니다.”

서진은 시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시신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싸늘했다.

“타살입니다. 흉기는 이 비수. 사인은 과다출혈과 심장 관통. 사망 시각은… 대략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정태가 감식반의 보고를 전했다.

서진은 시신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서재를 천천히 걸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움직였다. 책상 위의 서류들, 바닥의 먼지 한 톨, 심지어 천장의 거미줄까지.

그러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책상 위로 향했다. 강 대감의 손이 닿아 있던 서안 위, 피로 얼룩진 서류들 사이에 놓인 묵직한 황동 잉크병.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만년필. 잉크병은 뚜껑이 열려 있었고, 만년필은 잉크가 채워지지 않은 채 비어 있었다.

서진은 고개를 숙여 잉크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황동 특유의 오래된 색깔은 빛바랜 듯했지만, 잉크병 입구 안쪽에는 굳어버린 검은 잉크 자국이 선명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정태 경부.” 서진이 나직이 불렀다. “이 잉크병과 만년필, 감식반에서 가져갔었습니까?”

정태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오, 나으리. 시신과 흉기 위주로 감식하고, 나머지는 현장 보존을 위해 크게 건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서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잉크병을 집어 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에 느껴졌다. 그는 병의 바닥을 살펴보았다. 미세한 흠집들이 여러 개 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잉크병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완벽한 밀실 살인이군요.” 서진이 잉크병 뚜껑을 천천히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확신에 차 있었다. “어느 누구도 이 문을 부수거나 창문을 넘거나 굴뚝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정태의 얼굴에 의아함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범인이 이 방에서 사라진 방법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서진은 잉크병 뚜껑을 다시 닫으며, 날카로운 눈으로 서재 문을 응시했다. 그는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실마리를 쫓는 사냥개 같았다.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경부.” 서진은 나직이,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범인은 처음부터 이 방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정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으리?”

서진은 피 묻은 서안을 지나쳐 서재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손에 든 잉크병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강 대감을 살해한 범인은… 이 잉크병 안에 갇혀 있던 것이지요.”

정태는 서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잉크병 안에 갇힌 범인이라니? 그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그의 뇌리는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서진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확신에 차 있었다.

“밀실의 트릭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다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뿐.”

서진은 잉크병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정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이미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진 듯한 명확함이 서려 있었다. 이 미증유의 밀실 살인 사건은, 그의 손아귀 안에서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