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잿빛 평원이었다. 모든 것이 회색빛 먼지로 뒤덮인 지 오래. 하늘은 늘 먹구름 같은 먼지로 가득했고, 햇빛은 희미한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못했다. 강민은 낡은 방진 마스크를 고쳐 쓰고 무너진 고층 빌딩의 잔해 속을 헤치고 나섰다. 등에 멘 배낭은 텅 비어 있었고, 허리에 찬 플라스마 커터는 며칠째 잠들어 있었다.

“젠장,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없네.”

낮게 읊조린 목소리는 마스크 속에서 둔탁하게 울렸다. 그의 발밑에서 삐걱거리는 금속 조각들이 과거의 찬란했던 문명을 조롱하는 듯했다. 한때 정보의 바다였다는 이 도시의 폐허는 이제 그저 거대한 고철 덩어리일 뿐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이곳에서 한 줌의 식량이나 한 병의 깨끗한 물, 혹은 작동하는 부품 하나라도 찾기 위해 매일 목숨을 걸었다. 강민도 그들 중 하나였다.

갑자기 방진 고글 너머로 시야가 흐려졌다. 저 멀리서 회색빛 장막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먼지 폭풍이었다. 잿빛 평원의 가장 무자비한 심판자. 순식간에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몰아치는 모래와 먼지는 강철도 깎아내고 인간의 육체는 단숨에 갈가리 찢어놓았다.

“젠장! 또 시작이군!”

강민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운 빌딩 잔해, 과거의 지하철 입구였던 곳으로 몸을 던졌다. 붕괴된 콘크리트 슬래브 아래로 간신히 몸을 욱여넣자마자, 세상은 거대한 굉음과 함께 흔들렸다. 굵은 먼지 알갱이들이 좁은 틈새로 들이닥쳐 그의 폐부를 찔렀다. 콜록이며 마스크를 더욱 단단히 조였다. 이런 날에는 외부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폭풍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강민은 낡은 통신기를 꺼냈다. 고물 더미에서 주운 물건이었지만, 한때는 이 세상 모든 주파수를 잡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이 먹통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지지직거리는 잡음만이 이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 희미한 신호음이 비집고 들어왔다. 짧고 불규칙했지만, 분명 잡음이 아니었다. 강민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신호는 계속됐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오는 듯했다. 통신기의 지도가 희미하게 깜빡였다. 발신지는 ‘철혈의 산맥’이었다.

철혈의 산맥. 그곳은 잿빛 평원 너머, 붉은 녹이 슨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죽음의 땅이었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다고 알려진 곳. 그곳에서 신호가 온다니.

“말도 안 돼…”

강민은 통신기를 든 손을 꽉 쥐었다. 그는 늘 막연한 소문을 쫓아다녔다. ‘녹색 아지트’라는 소문. 이 잿빛 세계 어딘가에 아직 푸른 식물이 살아남아 있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 미신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강민은 그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이 신호가 혹시… 그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폭풍이 잦아들자 강민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이미 철혈의 산맥을 향해 있었다.

잿빛 평원을 가로지르는 여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강민은 폐허가 된 고속도로를 따라 며칠을 걸었다. 뜨거운 낮과 얼어붙는 밤이 반복되었고, 그의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재 먼지는 걷는 내내 그의 다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크윽…!”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강민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잿빛 평원이 끝나고, 시뻘건 녹물이 흐르는 듯한 바위산들이 하늘을 찔렀다. 철혈의 산맥이었다. 공기는 더욱 탁해졌고, 지독한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따금씩 바위 틈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역병의 짐승’들이었다. 돌연변이 된 동물들, 혹은 그 잔해에 불과한 것들. 그들은 밤이 되면 굶주림에 미쳐 인간을 사냥했다.

강민은 산맥의 입구에 있는 작은 동굴에서 밤을 보냈다. 얼어붙은 몸을 웅크린 채, 그는 통신기를 다시 확인했다. 신호는 여전히 약했지만, 분명하게 철혈의 산맥 깊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 날, 강민은 깊은 산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날카로운 바위들은 그의 낡은 부츠를 쉽게 찢어놓았다. 해가 뜨지 않는 영원한 황혼 속에서 그는 겨우 시야를 확보하며 나아갔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척을 느꼈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바위 뒤로 숨었다. 저 멀리, 기괴한 형상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사슴처럼 보였던 것의 잔해일까? 비정상적으로 길게 뻗은 다리, 이빨이 드러난 흉측한 얼굴,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눈. 역병의 짐승이었다. 놈은 바람 속에서 먹잇감의 냄새를 맡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강민은 숨조차 쉬지 않았다. 식량을 찾기 위해 나서야 했지만, 놈과 맞서 싸울 여력은 없었다. 플라스마 커터의 충전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히 놈은 강민을 눈치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멀어져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강민의 발밑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울렸다. 바위 틈새로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던 순간, 그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녹슨 금속 덩어리였다. 땅에 반쯤 파묻힌 채, 과거의 유물을 증명하듯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낡은 자동화 화물 드론이었다. 날개는 부러져 있었고, 동체 곳곳에는 심각한 손상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이건…!”

강민은 주저앉아 드론을 자세히 살폈다. 드론의 한쪽 측면 패널이 부서져 내부가 드러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파편들을 걷어내자, 내부에 고정된 작은 수납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녹색의 영양 페이스트 튜브 몇 개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작은 전력 셀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데이터 스틱.

강민은 전력 셀을 조심스럽게 꺼내 자신의 통신기에 연결했다. 통신기의 화면이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데이터 스틱을 연결하자, 드론의 부분적인 운행 기록이 흐릿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경로 이탈… 강한 전자기파 간섭… 목표 시설… 코드명 ‘오아시스’… 손상률 70%… 비상 착륙…』

오아시스. 그리고 흐릿하게 깜빡이는 시설의 위치가 그의 통신기에 찍혔다. 철혈의 산맥 깊숙한 곳, 지도상에는 그저 거대한 바위산으로 표시된 곳이었다. 신호의 발신지와 정확히 일치했다.

“진짜였어…?”

강민은 다시금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녹색 아지트가,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이 죽음의 땅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이틀 밤낮을 더 걸어, 강민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데이터 스틱에서 얻은 정보는 이 폐쇄된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 바위산의 깊은 협곡 끝에, 거대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 지형과 교묘하게 결합되어,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여긴가…”

철문에는 녹이 슬어 있었지만, 그 견고함은 여전했다. 중앙의 제어판은 파손되어 있었고, 어떤 에너지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민은 플라스마 커터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남은 전력을 끌어모아 강력한 푸른 빛을 내뿜는 칼날이 철문에 닿자, 지독한 타는 냄새와 함께 붉은 불꽃이 튀었다.

그때였다.

“누구냐!”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강민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협곡 위쪽 바위 틈새에서, 낡은 방호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낡은 볼트액션 소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굶주린 짐승처럼 날카로웠다.

“이봐, 난 그저 지나가던 사람이야. 이곳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줄은 몰랐군.” 강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이 죽음의 땅에서? 웃기지 마라. 넌 저 문 안에 있는 걸 노리고 온 거지? 모든 게 내 거다!”

남자는 소총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 강민은 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을 직감했다. 플라스마 커터의 충전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저 남자의 소총은 아직 몇 발의 탄약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저… 이곳에서 희망을 찾고 싶을 뿐이야.” 강민이 말했다.

“희망? 희망 따위는 없어!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전부지!” 남자는 외쳤다.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강민은 빠르게 계산했다. 피할 수 있을까? 아니, 너무 가깝다. 그는 마지막 남은 플라스마 커터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땅을 향해 쏘았다. ‘쉬이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녹아내리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남자는 순간 움찔했다. 그 틈을 타 강민은 전력으로 달렸다. 남자가 소총을 쏘았지만, 총알은 강민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멈춰라! 이 빌어먹을 자식아!”

강민은 필사적으로 철문으로 향했다. 플라스마 커터로 철문을 뚫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 어디든 들어갈 틈이 없을까?

바로 그때, 그의 시야에 철문 옆에 있는 작은 환기구가 들어왔다. 성인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비상 탈출구, 혹은 관리용 통로였던 듯했다.

강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환기구로 몸을 던졌다. 좁고 어두운 통로는 먼지로 가득했지만, 밖보다는 안전했다. 등 뒤에서 남자의 거친 욕설과 총성이 울렸지만, 통로 깊숙이 들어서자 소리는 점차 희미해졌다.

한참을 기어가자, 통로 끝에 작은 해치가 보였다. 해치를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강민의 폐부를 적셨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비상등이 깜빡거렸다. 버려진 지하 시설이었다.

강민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과거의 연구실이었는지, 복잡한 장비들이 먼지에 뒤덮인 채 늘어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신호는 더욱 강해졌다. 이 시설 깊숙한 곳에서 오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걷자, 거대한 격리문이 나타났다. ‘코드: 오아시스’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강민은 조심스럽게 제어판을 살폈다. 전력이 완전히 나간 것은 아닌 듯했다. 그는 자신의 통신기를 제어판의 데이터 포트에 연결했다. 드론에서 얻은 데이터 스틱의 정보가 흘러들어가자, 굳게 닫혔던 격리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강민은 숨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을 수 없었다.

거대한 지하 공간 한가운데, 투명한 격리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구역이 있었다. 그 안에는… *초록*이 있었다.

작은 연못에는 깨끗한 물이 고여 있었고, 그 가장자리에는 몇 개의 작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어린 새싹이었다. 마치 희망을 상징하듯, 가늘지만 굳건하게 푸른 잎을 뻗고 있었다.

강민은 격리막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차가운 유리 너머로, 풀 내음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이곳은… 오아시스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녹색 아지트가.

그때, 격리막 상단에서 작은 로봇 팔이 튀어나왔다. 녹슨 채였지만, 팔 끝에 달린 카메라가 강민을 향했다. ‘침입자 감지. 방어 시스템 활성화.’ 기계음이 낮게 울렸다. 낡은 자동 터렛이 격리막 주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누군가에 의해, 혹은 어떤 시스템에 의해 아직도 철저히 보호되고 있었다.

강민은 터렛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푸른 새싹을 바라봤다. 그는 플라스마 커터를 꺼내 들었다. 남은 전력으로는 터렛 하나를 겨우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이 시설에 남아있는 마지막 전력도 고갈될 터였다. 이 작은 오아시스는 빛과 물 공급이 끊기면 다시 죽음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강민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플라스마 커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격리막에 기댄 채, 작은 새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여기에… 뭘 해줄 수 있을까.”

그는 더 이상 싸우거나 부수고 싶지 않았다. 이 작은 생명을 지키고 싶다는,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충동이 그를 사로잡았다. 어쩌면, 살아남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강민은 천천히 주변의 폐허가 된 연구 장비들을 둘러봤다. 이 시설을 다시 작동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작은 오아시스를, 이 푸른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 잿빛 평원의 끝에서, 강민은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의 새로운 생존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