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벽장 속의 발자국

김민준은 고단한 하루의 흔적을 소파에 던져버리듯 몸을 뉘었다. 도시의 소음은 23층까지 끈질기게 기어 올라와 미약하게나마 창문을 두드렸지만, 그의 피로감 앞에서는 그저 배경 음악일 뿐이었다. 막 퇴근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에어컨을 켜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끈적이는 이마를 스쳤다. 오늘따라 유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빈 컵을 식탁 위에 놓았다. 그러다 문득 멈칫했다. 어제 분명히 컵을 싱크대에 넣어두었던 것 같은데. 헛것을 봤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식탁 위 컵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파트 복도는 고요함에 잠겼다. 민준은 대충 저녁을 해결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영화를 틀었다. 불을 끈 거실은 스크린의 빛만으로 채워졌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 주방 쪽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돌렸다.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쥐라도 들어왔나, 했지만 23층 아파트에 쥐라니. 잠시 신경을 곤두세우다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을 때, 그는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젯밤 분명히 잠그고 잤는데. 도둑? 그러나 집안 어디에도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값나가는 물건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으스스한 기분에 황급히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했다. 이상하다. 요즘 들어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긴다. 지난주에는 분명히 화장실에 두고 나왔던 칫솔이 거실 바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며칠 후, 민준은 이 기묘한 현상이 단순한 건망증이나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야 할 커다란 화분 하나가 베란다 쪽으로 몇 걸음 이동해 있었다. 민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누가 들어왔다 나간 흔적은 없다.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그 거대한 화분을 옮길 힘이 있는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없었다.

“누, 누구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적막한 아파트 안에서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렸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거실을 샅샅이 뒤졌다. 안방, 작은방, 주방, 화장실… 어디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았는데도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날 밤, 민준은 잠들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작은방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작은방은 평소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창고 같은 공간이었다. 그는 심장이 발치까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작은방 문고리를 잡았다. 손잡이가 차갑게 느껴졌다.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에 의지해 방 안을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방 한가운데 놓여 있던 오래된 상자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상자였다. 민준은 손을 뻗어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눌렀다. 환한 불빛이 방 안을 비추자, 그는 숨을 들이켰다.

책상 위 책들은 모두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서랍은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군가 온 방을 헤집고 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방 한가운데 놓인 상자 옆, 바닥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발자국이었다. 흙먼지가 묻은 듯 희미했지만, 분명히 맨발의 발자국이었다. 아이의 발자국처럼 작았다.

“이게 뭐야…”

민준은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는 급히 방을 나와 문을 쾅 닫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도둑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장난도 아니었다.

그날 이후,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냉장고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샤워를 할 때면 수도꼭지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거나 차가운 물이 얼음처럼 변했다. 주방에서는 냄비나 접시가 덜그럭거리며 움직였고, 심지어 식탁 위 포크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밤에는 더 심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TV가 저절로 켜져 지직거리는 화면을 보여주거나, 아무도 없는 안방에서 흐느끼는 듯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 소파에 웅크려 앉아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다. 이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민준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TV 화면이 켜져 있었다. 평소 보던 뉴스 채널이 아니라, 오래된 필름처럼 지직거리는 화면이었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는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림자는 점점 선명해지더니, 한 사람의 형상을 띠었다.

키가 작고 왜소한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TV 화면 안에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가 있었다. 소름 끼치는 것은, 아이의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TV 화면 속 아이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툭툭’ 두드렸다. 그 순간, 민준의 등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바람이 불어왔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의 시야가 암전되고 온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득함과 함께, 그는 의식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귓가에 들려온 것은, TV 속 아이의 섬뜩한 웃음소리였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아파트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머리 위에는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붉은 달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