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먼지 속에서 길을 잃다
지혁은 낡은 크라켄의 운전대를 꽉 쥐었다. 갈라진 가죽에서 뿜어져 나오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차 안을 가득 채웠지만, 그는 이미 그런 것엔 익숙했다. 창밖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와 그 위를 덮은 잿빛 하늘. 한때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초록빛 생명이 가득했던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이제 먼지 속에 파묻힌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크라켄은 낡았지만 끈질겼다. 찢어진 타이어를 교체하고, 고장 난 부품들을 땜질하며 간신히 버텨온, 지혁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자 보루였다. 삐걱거리는 서스펜션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거친 지형을 넘어갈 때마다, 지혁은 핸들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십 년이 넘도록 이 황무지를 헤매며 그는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오직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손때 묻은 도구들뿐이라는 것을.
계기판의 연료 게이지가 바닥을 향해 기어가는 것을 보며 지혁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제 겨우 찾아낸 폐허에서 긁어모은 연료는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다음 보급 지점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더 가야 했다. 지도를 확인했다. 빛바랜 홀로그램은 여전히 제 기능을 했지만, 지도 위에 표시된 많은 ‘안전 구역’들은 이제는 그저 쓰레기 더미이거나, 아니면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는 함정일 뿐이었다.
“젠장, 또.”
나직이 중얼거린 목소리는 건조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이런 상황은 지겹도록 반복되었다. 식수, 연료, 식량, 그리고 어쩌면 더 나은 삶에 대한 아주 작은 희망 조각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그는 매일매리 모래 바람 속을 헤맸다. 이번 목표는 ‘구(舊) 7구역 연구 시설’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대재앙 이후 거의 손대지 않은 채 보존된 기술 샘플이나 생존 물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물론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었지만, 지혁에게는 그마저도 맹목적인 믿음을 걸어야 할 동아줄과 같았다.
정적만이 흐르던 차 안, 갑자기 크라켄의 측면 스캐너가 비상 경고음을 울렸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뭐야?”
지혁은 반사적으로 핸들을 틀었다. 스캐너 화면에 붉은 점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차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바깥에서 거대한 모래폭풍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저 멀리 지평선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이며 다가왔다. 붉은 모래의 장막이 순식간에 시야를 뒤덮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서둘러 크라켄의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낡은 방어막 제너레이터가 윙하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차체 밖으로 투명한 보호막이 약하게 형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 모래폭풍이라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크라켄은 전투용 차량이 아니었다.
지혁은 망설임 없이 크라켄을 돌려 가장 가까운 폐허를 향해 달렸다. 속도를 올릴수록 차체가 더욱 심하게 흔들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모래와 먼지가 창문을 맹렬하게 때렸다. 시야는 순식간에 제로에 가까워졌다. 오직 스캐너의 지형 정보를 믿고 나아갈 뿐이었다.
몇 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폐허의 잔해 속으로 크라켄을 몰아넣었다. 무너진 건물들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 차를 세우자, 모래폭풍의 위세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크라켄의 보호막은 맹렬한 모래의 공격에 흔들리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지혁은 차창 밖을 내다봤다. 거대한 건물들이 마치 유령처럼 서 있었다. 한때는 번화했을 도시의 잔해였다. 부서진 외벽과 뼈대만 남은 철골 구조물들이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는 무심하게 건물들을 훑었다. 이곳은 폐허의 황무지 중에서도 특히 더 위험한 곳이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돌연변이들이나, 아니면 그보다 더 위험한 인간 사냥꾼들이 나타날 수 있는 곳.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야.”
지혁은 떨리는 손으로 물통을 찾아 한 모금 마셨다. 흙먼지 섞인 물은 텁텁했지만, 갈증을 잠시나마 해소해주었다. 그는 모래폭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지도를 다시 펼쳤다.
구 7구역 연구 시설은 이 폐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이 미로 같은 곳을 뚫고 들어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설마, 벌써 누가 다녀간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연료도 거의 바닥이었고, 식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이곳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모래폭풍은 예상보다 길게 이어졌다. 한 시간이 지나고, 또 한 시간이 흘렀다. 크라켄의 방어막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연료는 계속 줄어들었다.
마침내, 거친 바람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붉은 먼지 장막도 서서히 걷히는 것이 보였다. 지혁은 다시 한번 지도를 확인하고, 폐허의 골목길 안으로 크라켄을 몰았다.
내부는 더욱 처참했다. 거대한 빌딩들은 마치 괴물의 뼈대처럼 앙상하게 서 있었고, 그 사이를 지나는 길은 잔해와 쓰레기로 가득했다. 조심스럽게 크라켄을 몰아 부서진 도로를 따라 나아갔다. 스캐너는 주변에 어떠한 생명체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저 차가운 침묵만이 그를 감쌌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정표 하나 없는 미로 같은 폐허를 헤치고 나아가던 지혁의 눈에 마침내 목적지가 들어왔다.
낡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외벽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특수한 방어 기술로 건축된 곳일 터였다. 녹슨 철문에는 희미하게 ‘7-RTF’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지혁은 크라켄을 건물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웠다. 엔진을 끄자, 세상은 다시 완벽한 침묵 속으로 잠겼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폐허의 냄새를 맡았다. 눅눅한 곰팡이와 썩은 금속, 그리고 오래된 먼지의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총을 점검하고, 배낭을 챙겼다. 전술 나이프, 식량 바, 물통, 그리고 비상용 조명.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지혁은 크라켄의 문을 열었다.
“후우…”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삭막한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의 생존기가, 이제 새로운 장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녹슨 철문 앞에서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차가운 금속에 손을 대자, 마치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혁은 용접기로 덧대진 낡은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아마도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것이리라. 혹은, 안에 갇힌 무언가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휴대용 분석기를 꺼냈다. 낡은 금속 외벽에 분석기를 갖다 대자, 작은 화면에 알 수 없는 데이터들이 빠르게 스크롤되었다.
“전력… 감지?”
지혁의 눈이 커졌다. 아주 미약하지만, 건물 내부에서 전력 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폐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시설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은, 침묵하는 황야보다 더욱 차가운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지혁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총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