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닫힌 문의 비명
대화(大和) 제국 27년, 겨울의 끝자락은 유난히도 매서웠다. 수도 한성, 북촌의 기와집들은 새벽마다 서릿발 같은 냉기를 머금고 푸르게 빛났다. 그중에서도 단연 웅장함을 뽐내는 윤 정승 대저택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는 곧 터져 나올 비명을 품고 있었다.
“정승 나리! 정승 나리!”
새벽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시각, 집안을 울리는 다급한 외침이 적막을 깨트렸다.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대청마루에서 한참 떨어진 서재였다. 윤제원 정승은 평소 외부인 출입을 엄히 금하며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았다.
윤 정승의 오랜 심복인 문지기 김 노인이 핏기 없는 얼굴로 서재 문을 부여잡고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쇠락한 나무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은 오히려 음산했다.
“어찌 된 일이냐, 김 노인!”
영감마님, 그러니까 윤 정승의 부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나리께서… 나리께서 문을 열어주시지 않습니다.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고… 어젯밤엔 분명 안에서 빗장을 걸고 주무셨는데…”
김 노인의 목소리는 떨렸다. 문고리를 돌려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굳게 잠긴 문을 향해 영감마님과 몇몇 하인들이 나리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침묵뿐이었다.
결국 집안 어른들의 결정 아래, 건장한 하인 몇 명이 달려들어 서재 문을 부수기로 했다. 쿵, 쿵! 육중한 나무 문이 충격을 받을 때마다 대저택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세 번의 강력한 충격 끝에 삐걱거리던 문이 부서져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뿜어져 나온 차가운 공기와 함께,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하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서재 안은 기묘한 형태로 뒤섞여 있었다. 촛불은 꺼져 있었고, 작은 등불 하나가 겨우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등불 아래, 윤제원 정승이 피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었다.
“나리…!”
영감마님의 비명이 하늘을 찢었다. 사람들은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정승의 가슴에는 날카로운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시선은 천장을 향한 채였고, 입은 경악한 듯 벌어져 있었다.
곧바로 한성부 포도청에 연락이 닿았다. 병조판서의 친인척인 윤 정승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한성부 판관과 포도대장이 직접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들과 함께 나타난 이는 포도청의 기피 대상 1호, 그러나 동시에 가장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괴짜, 이현 수사관이었다.
“아니, 흑묘(黑猫)가 여긴 어쩐 일이오?”
포도대장 최광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현은 조용히 걸어 들어오며 주변을 스캔했다. 그의 눈은 마치 어둠 속의 고양이 눈처럼 번득였다. 몸집은 왜소했지만, 주변의 모든 정보를 흡수하는 듯한 기운을 풍겼다.
“판관 나리께서 굳이 저를 부르셨으니 온 것입니다. 대장 나리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닙니다.”
이현의 말투는 늘 그랬다.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면박을 줄 수 없었다. 그의 기이한 행적과 괴팍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가 해결한 미제 사건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있었다. 특히 밀실 사건 해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람들은 그를 ‘흑묘’라 불렀다. 그림자처럼 나타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사라지는 그의 모습이 마치 검은 고양이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였다.
“각설하고, 이현 수사관. 윤 정승께서 서재 안에서 칼에 찔려 돌아가셨소. 보시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쇠창살로 굳게 막혀 있었소. 어떤 외부인도 들어올 수 없었던 상황이오.”
최광일 대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바닥에 흐트러진 핏자국, 쓰러진 윤 정승의 시신, 그리고 그 옆에 꽂힌 칼. 이현은 시신에 가까이 다가갔다. 포졸들이 만류하려 했지만, 최 대장이 손짓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이현의 방식이었다.
그는 먼저 시신을 살폈다. 칼이 박힌 위치, 피가 튀긴 방향, 시신의 자세. 그리고는 느릿하게 눈을 들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 굳게 닫힌 쇠창살은 안에서 용접이라도 한 듯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어떤 틈도 보이지 않았다.
벽. 낡은 책장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틈새를 찾아보았지만, 모두 견고하게 이어져 있었다.
천장. 묵은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 어디에도 인위적인 통로의 흔적은 없었다.
그리고 문. 부서진 채 열려 있는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묵직한 나무 빗장이 문틀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외부에서 열 수 없는 구조였다.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는 말이군.”
이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최 대장은 그가 혹시 미쳤나 싶어 얼굴을 찌푸렸다.
“이현 수사관! 대체 무슨 헛소리를…!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오!”
“그래서 더더욱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이현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몸을 굽혀 바닥을 살폈다. 핏자국 외에 먼지 낀 마루바닥에 희미한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윤 정승의 묵직한 가죽신 발자국이 아니었다. 좀 더 작고, 가벼운, 그리고 묘하게 뒤틀린 듯한 발자국이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문이 열린 곳까지만 이어져 있었다.
“누가 방에 들어왔다가 나갔다는 말이오?” 최 대장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현은 대답 없이 손가락으로 마루 바닥의 한 점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먼지 속에 가려진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한 선 하나. 마치 무언가가 끌려간 듯한 흔적이었다.
“정승 나리께서 돌아가신 시각은 언제로 추정되오?”
그의 질문에 한성부 의원이 나섰다. “대략 두 시진 전쯤으로 보입니다. 심장이 멈춘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질 무렵, 대략 자정에서 새벽 두 시 사이. 그때까지 윤 정승은 분명 서재에 혼자였다.
이현은 다시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칼은 날카로웠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칼이었다. 자객들이나 호위 무사들이 지니는 종류의 칼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방에서 쓰는 식칼에 가까웠다.
그의 눈은 다시 서재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겹겹이 쌓인 책들, 벼루와 붓, 종이. 그리고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찻상. 찻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윤 정승의 것이 분명했지만, 다른 하나는 사용한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차가 식어 붙은 자국이 선명했다.
“이 방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문은 안에서 빗장까지 잠겨 있었고, 창문은 쇠창살로 외부 침입이 불가능합니다. 천장도 마찬가지고, 땅굴이나 비밀 통로의 흔적도 전혀 없습니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입니다.”
최 대장이 강조하며 말했다. 그는 이미 이 사건을 자살로 종결시키려는 듯했다. 높은 관직에 있던 이가 칼에 찔려 죽은 밀실 사건은, 수사의 어려움과 책임감 때문에 늘 자살로 결론 내려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서재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곰팡이 냄새, 낡은 종이 냄새, 그리고 피 냄새… 그 모든 것 속에서 이현은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다른 향기를 감지했다.
“완벽한 밀실은 없습니다, 대장 나리.”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부서진 문틀을 지나, 멀리 대청마루 끝에 있는 정원의 작은 연못을 향했다.
“저 연못에 핀 연꽃은 지금 시기에는 볼 수 없는데, 이 방에서 연꽃 향기가 나는군요.”
모두의 시선이 당황하여 그를 따랐다. 연꽃? 아무도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 희미한 발자국과 끌려간 듯한 흔적, 찻잔의 흔적. 이 모든 것이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현은 시신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죽은 윤 정승의 입은 여전히 벌어져 있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닌, 기이한 체념이 서려 있었다.
“윤 정승은 죽기 전에, 자신을 죽인 범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범인을 직접 자신의 서재로 들였을지도 모릅니다.”
정적. 최 대장과 포졸들, 그리고 윤 정승의 가족들까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자신을 밀실에 가둘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현은 시신 옆에 꽂힌 칼을 내려다보았다. 칼날에 묻은 피는 이미 말라붙어 있었다.
“밀실 살인 사건은 언제나 트릭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그 트릭은 언제나 너무나도 단순해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지요.”
이현은 서재 문턱으로 돌아섰다. 그의 시선은 부서진 문과 그 주변을 맴돌았다.
“이 살인은 치밀하게 계획되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성급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갈 때, 마지막 증거를 지우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재 안쪽, 바닥에 흐트러진 핏자국 사이로 굴러다니는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응시했다. 문틀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인 줄 알았던 그것은, 윤 정승의 손톱만한 크기였다. 그리고 그 나무 조각에는 붉은색 실오라기 한 가닥이 매달려 있었다.
“이제부터 이 서재의 모든 것을 조사할 겁니다. 아무도 이 방에 함부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습니다. 포졸들은 바깥에서 대기하고, 저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이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밀실 살인. 그의 촉이 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거대한 거짓 속에 숨겨진, 치밀한 진실의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의 첫 수는, 이미 놓여 있었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방 안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현의 마지막 말은 싸늘한 서재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침묵했다. 최 대장은 이현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의 섬뜩한 눈빛 앞에서 입을 열 수 없었다. 범인은 이미 떠났을 터인데, 이현은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과연 흑묘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밀실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