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 87화: 찢어진 정적**

도시의 잔해가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두터운 먼지구름을 이고 있었고, 붕괴된 마천루의 앙상한 골조들이 저마다 기형적인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진은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 철근이 뒤틀린 잔해 더미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갔다. 낡은 방진 마스크 너머로 들이쉬는 공기는 금속과 곰팡이 섞인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벌써 일주일째, 이 지옥 같은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오른손에 든 스캐너는 주기적으로 미약한 전파 신호를 깜빡였다. 목표는 구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제3 데이터 센터. 쓸만한 배터리 셀이나 하다못해 낡은 저장 장치라도 건질 수 있다면, 적어도 오늘 밤은 차가운 암흑 속에서 떨지 않아도 될 터였다. 문제는 그곳까지 가는 길이었다. 녀석들의 영역.

“젠장… 갈수록 더하네.”

진은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붉은색 녹이 슬어 삭아버린 차량들의 잔해가 시체처럼 널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콘크리트 파편과 알 수 없는 유기물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며칠 전부터 진을 추격하고 있는 ‘잔해종’의 흔적이었다. 그것들은 빛에 약했고, 소리에 극도로 민감했지만, 일단 냄새를 맡으면 끈질기게 추격해 왔다. 그리고 한 번 포착되면, 그 속도와 무리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낡은 고층 건물의 뼈대 사이로 간신히 통과하자, 좁고 어두운 골목이 나타났다. 바닥은 알 수 없는 액체로 흥건했고, 진의 방수 부츠가 그 위를 밟을 때마다 끈적한 소리가 났다. 진은 소리 없이 걸으려 애썼지만, 고요함 속에서는 작은 물방울 소리마저도 천둥처럼 울렸다.

스캐너의 깜빡임이 갑자기 격렬해졌다. 목표 지점까지 불과 500미터. 그러나 동시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 생체 신호, 다수.

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경고음은 분명한 위협을 알렸다.
잔해종.

진은 본능적으로 벽에 등을 기댔다. 낡은 금속성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스캐너 화면에 점멸하는 붉은 점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대여섯 마리. 그것들은 시야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미세한 진동과 소리에 반응했다. 폐허 도시를 걸을 때마다 진이 느끼던 그 미세한 울림, 그 비틀린 교감망을 통해 움직이는 녀석들이었다.

“이런…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붙었다. 서둘러 허리춤에 찬 에너지 블래스터를 움켜쥐었다. 충전량은 고작 30%. 비상시에만 써야 할 최후의 수단이었다. 지금은 정면 대결이 아닌 회피가 우선이었다.

사방은 어두웠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골목은 잔해종에게 완벽한 사냥터였다. 진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신경을 온몸의 피부 끝까지 끌어올렸다. 아주 미세한 진동, 냄새, 바람의 흐름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크으… 으으…”

낮고 긁히는 듯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잔해종 특유의 울음소리였다. 그것들은 인간의 목소리와는 다른, 마치 뼈를 긁어대는 듯한 불협화음을 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이 좁은 골목을 뚫고 지나가기엔 너무 위험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진의 눈에 띈 것은 낡은 건물의 지하실 입구였다. 녹슨 철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그 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잔해종은 어둠 속에서 더 강했지만, 진에게는 작은 휴대용 라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실은 소리가 외부로 쉽게 전달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진은 재빨리 판단했다. 일단 지하실로 들어가서 녀석들을 따돌린 후, 다른 출구를 찾아야 했다.

바닥의 끈적한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한 발, 또 한 발.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진은 심장이 뜯겨나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낡은 철문 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젠장, 너무 늦었나?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골목을 채웠다. 잔해종이 진의 움직임을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진은 지하실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필사적으로 뛰어 내려갔다. 발소리가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쳤다. 등 뒤에서 무언가 쫓아오는 듯한 섬뜩한 기척이 느껴졌다. 놈들이 따라 들어왔다!

지하 2층에 도착하자, 진은 작은 격납고 같은 공간에 다다랐다. 먼지 쌓인 낡은 기계들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진은 숨을 곳을 찾았다. 거대한 발전기 뒤편의 좁은 공간. 몸을 구겨 넣고, 휴대용 라이트를 껐다.

완벽한 어둠.

잔해종은 빛을 보지 못하지만, 어둠 속에서 진의 움직임은 더더욱 제한될 터였다.
그때, 진의 귀에 닿은 것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마치 수십 마리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 이어서 철근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눅눅한 흙과 비린 피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것들이 들어왔다.

진은 발전기 뒤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에너지 블래스터를 들어 올렸다. 녀석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최소한 한두 마리라도 제거하고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블래스터의 발포음은 다른 녀석들을 불러 모을 위험이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멈췄다. 진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심장이 귀청을 때리는 듯했다. 차가운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에는 피가 통하지 않는 듯 저려왔다.

어둠 속에서, 진은 겨우 형태를 감지할 수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 울퉁불퉁하고 기괴한 형상. 뼈와 살이 뒤틀린 듯한 모습. 그것의 머리 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촉수처럼 뻗어 나온 팔다리들이 주변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콰직-!
갑자기 근처에서 낡은 금속 파이프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잔해종 중 한 마리가 주변을 탐색하다가 파이프를 부순 것이다. 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조차 멈췄다. 어둠 속에서 진의 생명 신호가 감지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때, 진의 발치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진이 몸을 움직이다가 무심코 건드린 것이었다. 찰칵, 찰칵-! 돌멩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지하실을 찢어발겼다.

잔해종의 촉수들이 순식간에 진이 숨어 있는 발전기 방향으로 향했다.
“젠장…!”

진은 망설일 틈도 없이 에너지 블래스터를 겨눴다. 조준경에 붉은 불빛이 순간적으로 점멸했다. 트리거를 당겼다.

쉬이이잉-! 굉음과 함께 푸른 에너지 볼트가 어둠을 갈랐다. 가장 가까이 있던 잔해종의 거대한 몸체에 명중했다. 기괴한 비명 소리가 지하실을 뒤흔들었다. 몸이 뒤틀리고,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연기 속에서 녀석의 형태가 다시 튀어나왔다. 완벽하게 파괴되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다른 잔해종들이 진이 숨어 있는 곳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바닥을 긁어대는 뼈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체들이 육박해 왔다.

진은 발전기 뒤에서 튀어나와 반대편으로 전력 질주했다. 이대로 잡히면 끝이었다. 남은 에너지는 고작 20%.

“크아아악!”

진은 뛰는 와중에도 휴대용 라이트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라이트가 깨지면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잔해종들은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놈들은 이미 소리와 진동으로 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진은 눈앞에 보이는 낡은 환풍구 통로로 몸을 날렸다. 좁고 먼지투성이였지만, 녀석들의 거대한 몸으로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통로 안으로 진의 몸이 완전히 들어서자마자, 뒤에서 육중한 둔탁음이 들렸다. 녀석들이 환풍구 입구를 몸으로 들이받은 것이다.

온몸이 진흙과 땀으로 끈적거렸다. 진은 숨을 헐떡이며 앞으로 기어갔다. 좁은 통로 안에서 사방이 막힌 채, 진은 다음 수를 생각했다. 이 환풍구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까? 혹시 막다른 길이라면?

그때, 통로의 끝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바깥의 잿빛 하늘이 아니었다. 주황색, 그리고 푸른색의 인공적인 빛. 그리고 들려오는 낮은 기계음.
데이터 센터.

진의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었다. 잔해종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고 겨우 도달한 곳. 하지만 저 빛은 과연 희망일까,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일까?

진은 조심스럽게 환풍구 끝에 다다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서버 랙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서 있었다.

진과는 다른, 깨끗한 방호복을 입은 인간형 실루엣이. 그것은 서버 랙 사이를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손에는 익숙한 에너지 블래스터가 들려 있었고, 등 뒤에는 진이 평생 보지 못했던 고성능 에너지 셀이 번쩍였다.

진의 눈이 커졌다. 이 폐허에, 자신 외의 다른 생존자가, 그것도 이렇게 완벽한 장비를 갖춘 채 존재할 줄이야.
그때, 아래에 있던 실루엣이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진이 있는 환풍구 쪽을 응시했다. 마치 진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침묵이 흘렀다. 잔해종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하지만 진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잔해종의 위협이 아니었다.

저 실루엣의 정체는 무엇일까?
친구일까, 아니면… 더 거대한 포식자일까?

진은 차가운 금속 통로에 몸을 바싹 붙였다. 환풍구 밖, 빛 아래 서 있는 그 존재에게서 묘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진은 깨달았다. 방금까지의 생존 싸움은, 어쩌면 거대한 장막 뒤에 가려진 또 다른 시작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