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아델가르트의 그림자

나는 죽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칙칙한 스터디 카페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 속에서, 며칠 밤을 새워 읽던 전공 서적에 얼굴을 박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마지막 기억은 잉크 냄새와, 뻐근하게 조여오던 뒷목의 통증, 그리고 코끝을 스치던 희미한 커피 향이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취업 준비생, 이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푸른 하늘은 새하얀 뭉게구름으로 가득했고, 그 아래 거대한 성채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법으로 쌓아 올린 듯 매끄럽고 견고한 회색빛 벽면, 첨탑은 아득히 하늘로 솟아 있었다. 그 성벽 아래로 울창한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멀리서 영롱하게 빛나는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내 손에는 빛바랜 양피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아델가르트 마법 학원 합격 증서’.

나는 칼렌이 되었다. 이 세계에서 태어난, 마나 친화력만큼은 천재적이었지만 귀족 가문도, 변변찮은 배경도 없는 고아 소년. 전생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올수록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낯선 이 세상의 경이로움에 압도되었다. 거대한 마법 문명이 있었고, 용이 하늘을 날며, 정령과 대화할 수 있는 자들이 존재했다. 마법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법의 정점이라 불리는 아델가르트 마법 학원의 신입생이 되었다.

***

아델가르트 학원은 명성에 걸맞게 위대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중앙 강당은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그 위를 수놓은 마법진은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빛을 뿜어냈다. 수십 개의 마법탑에서는 각기 다른 색의 마나 광선이 뿜어져 나왔고,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이 공중 부양 마법으로 의자를 띄우거나, 손짓 한 번으로 불꽃을 피워 올리는 모습이 흔했다.

나는 재능만큼은 뒤지지 않았고, 전생의 지식을 활용해 마법 이론을 빠르게 습득했다. 덕분에 입학 초기, 나를 경계하던 귀족 자제들도 점차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학생이라 해도, 이 학원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들이 존재했다. 그중 가장 기괴하고 섬뜩한 곳은 단연 ‘중앙 도서관 최하층’이었다.

“칼렌, 오늘도 책 파고들 생각이야? 좀 쉬엄쉬엄 해. 몸도 마나도 쉬어줘야지.”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친구, 로웬이 내 쪽으로 구운 고기 한 덩이를 밀어주며 말했다. 넉살 좋고 붙임성 있는 로웬은 이 학원에서 내가 마음을 연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나는 포크로 고기를 찍으며 대답했다.

“궁금한 게 있어서. 특히 고대 마법의 역사 쪽을 좀 더 파봐야 해.”

“고대 마법? 그거 교수님들도 다들 기피하는 분야 아니냐? 기록도 제대로 안 남아있고, 금지된 마법이랑 엮인 것도 많고… 굳이 그쪽으로 머리 싸맬 필요 있어?”

로웬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실제로 고대 마법사는 기록 말살형이라도 당한 듯, 이 학원의 거대한 도서관에서도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간간이 발견되는 자료들은 해독 불가능한 고어나 암호로 가득했고, 그 내용도 하나같이 불길하고 섬뜩한 주술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그쪽에 이끌렸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저 심장이, 내 안의 마나가 그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것은 몇 번인가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문서들이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숨겨둔 듯, 다른 책들 사이에 끼워져 있던 조악한 양피지 조각들. 거기에는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림자는 살아 숨 쉬고, 땅속 깊은 곳에서 태동한다. 희생의 제물은… 학원의 번영은…*

문장이 완성되지 않아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학원의 지하에는 뭔가 숨겨져 있다는 막연한 확신. 그것은 내가 이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기시감과 묘하게 겹쳐졌다.

“그나저나, 어제도 또 사라졌대. 3학년의 에드윈 선배.” 로웬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사라져? 어디로?”

“글쎄?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학’이라고는 하는데… 벌써 이번 학기에만 세 번째잖아. 에드윈 선배는 학년 수석에 마나 친화력도 엄청 좋았다고. 그런 사람이 갑자기 휴학이라니…” 로웬은 주변을 흘끗거리며 말을 줄였다. 학원에서 이런 소문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사라진 학생들. 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엘리트들.

이 학원의 지하 도서관은 일반 학생에게는 3층까지, 조교와 일부 특수 과목 교수에게만 5층까지 출입이 허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아무도 발을 들일 수 없었다. 학원장의 직인이 찍힌 특별 허가증이 있어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돌 뿐이었다.

나는 3층에서도 가장 구석진,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고서적 코너에 앉아 있었다. 낡은 책장 사이로 먼지 섞인 햇살이 희미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손에 들린 책은 겉표지가 삭아 떨어져 나간, 제목조차 알 수 없는 고문헌이었다. 그 안에 내가 찾던 단서가 있었다.

*‘심연의 그림자가 마나를 갈망할 때, 아델가르트는 빛을 잃으리라. 균열은 지하에서부터 시작되니, 결코 내려가지 말라.’*

찢어진 페이지에 단편적으로 남은 경고문. 섬뜩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 안의 호기심은 더욱 불타올랐다. 이 세계에 전생한 이후, 나는 모든 것을 명쾌하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로웬이 말했던 사라진 학생들, 내가 발견했던 의문의 경고문들, 그리고 이 학원의 밑바닥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직감.

나는 한밤중에 몰래 중앙 도서관으로 향했다. 달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여 3층까지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음산한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향한 곳은 3층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늘 잠겨있던 작은 문이었다. 교수들도 함부로 드나들지 않는다는, 도서관 지하 4층으로 통하는 문. 오래전부터 이곳에 무언가 있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강력한 마법 잠금 때문에 아무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며칠 전, 우연히 이 문과 관련된 오래된 기록을 찾았다. ‘진실의 눈물’이라는 고대 유물이 발동될 때, 이 잠금이 일시적으로 해제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유물을 호기심 삼아 만져보다가… 우연히 발동시켜 버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살짝 비틀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철컥, 하고 육중한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오래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무언가 썩어가는 듯한 비릿한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다. 일반적인 도서관 지하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숨 쉬고 있는 듯한 냄새였다.

문틈 너머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마치 누군가 아래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한 발짝, 어둠 속으로 내디뎠다. 낡은 돌계단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격렬하게 울렸다.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갑고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치 희미한 노랫소리처럼, 혹은 고통스러운 신음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더 깊이… 더 깊은 곳으로… 와라…*

그것은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안의 마나가 그 목소리에 미묘하게 반응하며 저릿하게 울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존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는 플래시 라이트 마법으로 주변을 밝혔다. 불빛이 닿은 곳은 돌벽과 천장 곳곳을 기어가는 덩굴식물들, 그리고 정체 모를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린 자국으로 가득했다. 이것은 평범한 도서관 지하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기려 한, 끔찍한 진실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수십 개의 마나석이 박힌 기둥이 듬성듬성 서 있었고, 그 사이를 수많은 마법진이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 마법진들은 섬뜩하리만치 거대한 중앙 마법진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마법진 위에는,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검은 수정이 있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뽑아 올린 듯한,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검은 결정체. 그 표면에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이고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검은 수정 주위에는, 정체 모를 액체가 가득 채워진 유리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유리관 안에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숨이 턱 막혔다.

유리관 안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분명히 살아있는 인간의 형상. 그들은 모두 젊었고,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다만, 그들의 피부는 마치 마나를 완전히 빼앗긴 듯 창백했고, 몸 전체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생체 마나가 검은 수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로웬이 말했던 사라진 학생들. 학원의 ‘번영’을 위한다던 고대 기록의 의미. 이 모든 것의 전모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델가르트 학원의 뛰어난 엘리트 학생들이었다.

그 순간, 내 발소리가 낸 작은 울림이 지하 공간에 퍼졌다. 검은 수정에서 섬뜩한 파동이 일었다. 그리고 유리관 속에서 잠들어 있던 한 학생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이곳은 금기였다. 학원의 명성 아래 감춰진, 끔찍하고 거대한 금기.

내가 발을 헛디뎠을 때였다. 낡은 돌계단 한 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낡은 기둥 뒤편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는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학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평소 존경하던, 마법 이론 교수이자 학원장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엘리야 교수였다.

교수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의 손에는 마나로 빛나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이곳은… 아무도 접근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감히… 이 비밀을 목격했구나.”

교수의 눈빛은 평소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살인자의 그것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칼렌… 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내 몸이 마비되었다. 교수에게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시야는 점차 흐려져 갔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차갑게 빛나는 검은 수정과, 유리관 속에서 창백하게 잠들어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