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독립적인 단편 소설

아르카니아 학원은 거대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은빛 첨탑은 구름을 뚫고 빛의 마법진을 새기고 있었고, 발밑에는 수백 년 된 고목들이 거대한 뿌리를 지하 깊숙이 박고 있었다. 게임 ‘엘리시움 크로니클’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마법 학원, 아르카니아. 시우는 이곳에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일반 마법 이론’ 교수의 고리타분한 강의에 반쯤 영혼을 잃고 있었다.

“아르카니아의 근간은 바로 학원 지하 깊숙이 위치한 마나의 샘입니다. 이 샘에서 솟아나는 순수한 마나 덕분에 우리는 더욱 고차원적인 마법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죠.”

교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나의 샘. 듣기 좋은 말이었다. 모든 학생들은 학원의 엄청난 마나 밀도와 그로 인해 얻는 마법 훈련의 이점에 대해 찬양했지만, 시우는 늘 어딘가 찜찜했다. 그 ‘마나의 샘’이라는 게 대체 정확히 뭐지? 교과서에는 ‘아르카니아의 비전 중 하나’라고만 적혀 있었다.

“저기, 민준아.”
시우는 옆자리에서 졸고 있던 동급생 민준을 쿡 찔렀다.
“마나의 샘 말이야. 진짜 지하에 샘이 있는 걸까?”
민준은 눈을 비비며 하품했다. “뭐, 그렇겠지. 워낙 오래된 학원이라 전설도 많고.”
“그냥 샘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시우는 말을 흐렸다. 그는 가끔씩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발밑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진동을 느끼곤 했다. 아주 미세하고 규칙적인, 기계음 같은 진동. 학원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그 진동은, 마나의 샘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어떤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며칠 후, 시우는 점심을 먹다 우연히 선배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젠장, 어제 야간 순찰 돌다가 지하 3층 연구실 복도에서 엄청난 마나 파동을 감지했어.”
“또? 그쪽은 원래 좀 불안정하잖아. 마법진이 워낙 복잡해서 그런가.”
“아니, 뭔가 느낌이 달라. 파동 자체가 거칠고… 뭐랄까,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비명 같은 게 섞여 있었다고.”
선배는 몸서리쳤다. 다른 선배는 한숨을 쉬었다. “그쪽은 교수님들도 접근 금지 구역이라고 강조하셨으니 신경 끄는 게 좋아. 괜히 불이익 받을라.”

그 ‘불안정하다’는 마나 파동과 ‘고통스러운 비명’이라는 표현이 시우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평소 호기심이 많았던 시우는 그날 밤, 기숙사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발밑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진동이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졌다. ‘지하 3층 연구실 복도.’ 그곳에 학원의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다음 날부터 시우는 학원 지하 지도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도서관의 낡은 서고에서 희미하게 기록된 학원 건물의 초기 설계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상 10층, 그리고 지하 3층까지는 도면이 상세했지만, 그 아래부터는 점선으로만 표시되어 있었다. ‘하급 마나 통제 구역’, ‘비밀 시설’ 같은 알 수 없는 명칭들이 붙어 있었다.

주말 밤, 시우는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마침 학원 축제 준비로 모두가 들떠 있을 때였다. 그는 야간 순찰 마법사들의 동선을 외우고, 감지 마법진의 사각지대를 파악했다. 은신 마법 스크롤을 들고 지하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 그 통로는 학원 도서관 뒤편, 버려진 창고의 낡은 벽난로 뒤에 숨겨져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차갑고 축축했다. 공기는 지상과는 확연히 다른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흙먼지와 오래된 금속 냄새,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역한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시우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1층, 지하 2층… 선배들이 언급했던 ‘지하 3층 연구실 복도’에 도착했다.

복도는 길고 음산했다. 희미한 마나 램프가 깜빡이며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몇몇 연구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그중 한 문은 잠금 마법이 풀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내부는 고요했다. 복잡한 마법 기구들과 희귀한 마법 재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중앙에는 거대한 마력 증폭 장치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장치 주변의 마법진은 옅게 빛나고 있었고, 웅웅거리는 진동의 원인이 바로 이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시우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 3층’ 아래에 점선으로 표시된 ‘비밀 시설’이 더 신경 쓰였다. 연구실 한쪽 벽면에는 교묘하게 숨겨진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아무런 잠금 마법도 걸려 있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열어둔 것처럼. 시우는 망설임 끝에 문을 열었다.

숨이 턱 막혔다.
길고 구불구불한 계단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계단 곳곳에는 기괴한 모양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계단 폭도 지하 3층까지 내려올 때보다 훨씬 좁고 불안정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흐느낌, 혹은 신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까 맡았던 역한 비린내가 훨씬 진해졌다.

한참을 내려갔을까. 계단의 끝에 도달했다. 시우는 휴대하고 있던 발광 마법석을 꺼내 들었다. 푸른빛이 주위를 비추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곳은 거대한 동굴 형태의 공간이었다. 동굴 벽면에는 수많은 마력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마력선들은 모두 중앙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굴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이 서 있었다. 투명한 마법 수정으로 이루어진 원통 안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부유하고 있었다. 크고, 불분명한 덩어리였다. 끔찍하게 뒤틀린 살점과 희미하게 빛나는 마나 덩어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꿈틀거렸고, 덩어리 곳곳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마력선이 원통 외부의 마력 증폭 장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끔찍한 덩어리에서 사람의 비명 같은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분명한 고통의 비명이었다. 하지만 소리는 마력선과 장치를 통해 변형되고 증폭되어, 지상의 학원 전체를 감싸는 ‘순수한 마나’로 변환되고 있었다. 시우가 지하 3층 복도에서 들었던 ‘고통스러운 비명’은 바로 이것의 원형이었던 것이다.

아르카니아 학원의 ‘마나의 샘’은 샘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무언가, 아니, *살아있었던* 무언가를 고문하고 희생시켜 마나를 강제로 추출하는 거대한 장치였다. 이 모든 학원의 번영과 명성이, 이 끔찍한 금기를 대가로 얻어진 것이었다.

“이게… 이게 대체….”
시우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아왔군. 언젠가는 올 줄 알았다.”

시우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형체가 드러났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일반 마법 이론’을 가르치던 그 교수였다. 그의 얼굴에는 온화함 대신 섬뜩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너 같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가끔씩 여기까지 흘러들어오곤 하지.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너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어.”
교수는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마법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아르카니아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 너의 순수한 마나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시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는 지금, 학원의 가장 끔찍한 진실과 마주한 채, 스스로가 그 진실의 일부가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원통 안의 괴생명체가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시우의 온몸을 꿰뚫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