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독립적인 단편 소설

천하제일무도회. 그 이름만으로도 강호의 모든 무인들을 설레게 하던 전설적인 무예의 향연이, 이번에는 사뭇 다른 무게를 띠고 옥룡봉 정상에 자리한 비무대에 올랐다. 매 100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단순한 무위의 겨룸이 아니었다. 봉인되어 있던 고대 마기의 기운이 다시금 천하를 잠식하려 들자, 오직 대회의 진정한 승자만이 그 마기를 잠재울 수 있다는 천기(天機)가 강호에 퍼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멸마대회(滅魔大會)’라 불렀다.

옥룡봉 정상은 구름을 뚫고 솟아 있었다. 흰 바위들이 기이한 형상으로 솟아나 있었고, 그 사이에 자리한 원형 비무대는 거대한 용의 비늘처럼 단단한 기운을 뿜어냈다. 수천 명의 강호 무인들이 비무대를 둘러싼 관중석을 가득 메웠고, 그들의 시선은 오직 단 하나의 자리를 향해 있었다. 바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자리였다.

“크흐흐, 이번 대회는 실로 볼만하겠군.”

육중한 체구의 혈풍대사가 거친 웃음을 터뜨리며 비무대 한쪽 기둥에 기대섰다. 그의 주변에는 핏빛 기운이 희미하게 감돌았고, 지나가는 무인들은 저절로 길을 비켜섰다. 혈풍대사는 ‘혈마권(血魔拳)’이라는 파괴적인 무공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손을 거친 상대는 모두 피를 토하며 쓰러졌기에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청류검수(淸流劍手)’ 백련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푸른 도포 자락이 바람에 나부꼈지만, 그의 자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는 마치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도 날카로운 ‘청류무영검(淸流無影劍)’으로 강호에 이름을 알린 절대 고수였다. 그의 검 끝은 늘 칼날보다 맑은 물방울을 맺고 있는 듯 신비로운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낡았지만 깨끗한 도포를 입은 한 청년이 서 있었다. ‘무운(武雲)’. 이름처럼 구름 같고 안개 같은 존재였다. 그는 어떤 문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홀로 무림을 떠도는 자유로운 무인이었다. 그의 무위는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예선부터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여주며 고수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칼날이 없었음에도, 검기(劍氣)만으로 상대를 제압했고, 주먹은 비록 투박해 보였으나, 그 한 방 한 방에는 천근추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첫 번째 대진이 발표되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격렬한 기운이 비무대를 뒤덮었다. 굉음과 함께 바닥이 부서지고, 칼날이 부딪히는 쨍한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혈풍대사는 거대한 바위를 부수는 듯한 혈마권을 휘둘러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했고, 백련은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청류무영검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뒤 정확한 급소를 찔러 승리를 거두었다.

무운의 차례가 왔다. 그의 상대는 ‘광풍대도(狂風大刀)’라 불리는 거구의 무사였다. 그는 무운의 조용한 기운을 비웃으며 거대한 칼을 휘둘러왔다.

“하찮은 잔재주로는 내 대도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광풍대도가 하늘을 가르는 기세로 대도를 내리쳤다. 거대한 칼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바람이 무운의 도포를 휘감았다. 그러나 무운은 흔들림 없었다. 그는 그저 고요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대도가 만들어내는 바람의 흐름을 읽어냈다. 그리고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으로 몸을 비틀어 칼날을 피했다.

“헛!”

광풍대도가 당황하며 연속으로 대도를 휘둘렀지만, 무운은 마치 춤을 추듯 그 거친 공격들을 모두 흘려냈다.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정확했으며, 그의 손짓은 느린 듯하면서도 상대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마침내 광풍대도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순간, 무운의 손바닥이 그의 명치에 가볍게 닿았다.

파앗!

겉보기엔 아무런 충격도 없었으나, 광풍대도의 몸이 그대로 뒤로 밀려나 비무대 밖으로 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내… 내상이…!”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운의 공격은 외상을 남기지 않았으나, 상대의 내상을 흔들어 무력화시키는 ‘운룡구천공(雲龍九天功)’의 진수였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구름 속에 거대한 용의 힘을 숨긴 듯한 무공.

대회는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마침내 4강전이 펼쳐졌다. 첫 번째 대진은 혈풍대사와 강호의 또 다른 숨은 고수였다. 혈풍대사는 그의 이름값을 증명하듯 무자비한 혈마권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비무대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대진. 무운과 청류검수 백련.
비무대 중앙에 마주 선 두 사람. 무운은 여전히 평온했고, 백련은 푸른 검 끝을 땅에 박고 고요히 서 있었다.

“그대의 무공은 참으로 흥미롭군. 보이지 않는 강함. 흘러가는 구름 같다고 할까.” 백련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무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대의 검은 맑은 물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비추나, 동시에 그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 속에는 심오한 무학의 경지가 담겨 있었다.
싸움은 시작과 동시에 격렬해졌다. 백련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청류무영검’. 이름 그대로 검의 궤적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서늘한 바람만이 무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이이잉! 파바바박!

무운은 허공을 가르는 검기에 맞서 운룡구천공을 펼쳤다. 그는 몸을 가볍게 움직이며 검기를 피했고, 검의 움직임을 예측해 공간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의 손끝에서 무형의 기운이 뻗어 나가 백련의 검기를 감쌌다.

“이것은… 기(氣)를 이용한 방어인가!”

백련이 놀라며 검기를 더했다. 그의 검은 이제 마치 수십 개의 맑은 실타래처럼 무운을 얽어매려 들었다. 무운은 그 실타래 사이를 유영하듯 움직이며, 기가 닿는 곳마다 검기를 흐트러뜨렸다.

“하아압!”

무운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백련의 손목을 노렸다. 백련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검을 비틀어 막아냈지만, 그 순간 무운의 발이 움직였다. 마치 거대한 용이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발차기. ‘운룡천각(雲龍天脚)’.

콰앙!

발차기가 백련의 검집에 부딪혔다. 백련의 몸이 잠시 휘청거렸고, 그 찰나의 순간 무운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그의 손바닥에서 응축된 기운이 번개처럼 뻗어 나가 백련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크흐읍!”

백련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놀랍군. 이토록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기운은 처음이다. 그러나… 내게 아직 남은 일격이 있다!”

백련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온몸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검 끝에는 거대한 물줄기가 응축되는 듯했다.
“청류극수검(淸流極水劍)!”

모든 기운을 한 곳에 모은 일격. 그 검은 한 줄기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비무대를 갈랐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무운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온몸에서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거대한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잠자던 용이 깨어나는 듯한 기운.

“운룡승천(雲龍昇天)!”

무운은 검을 들지 않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황금빛 기운이 솟아나더니, 거대한 용의 형상을 이루며 백련의 검기를 맞받아쳤다. 물줄기와 용이 부딪히는 순간, 비무대 전체가 진동했고, 관중석의 사람들은 비명과 함께 귀를 막았다.

굉음이 멎고 연기가 걷히자, 비무대 중앙에는 무운이 조용히 서 있었다. 백련은 비무대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패배자의 좌절감 대신 경외심이 서려 있었다.

“천하제일인의 재목이로군… 경이롭다.”

무운은 백련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혈풍대사 대 무운.

비무대에 선 두 사람은 극과 극의 존재 같았다. 한 명은 핏빛 살기로 가득했고, 다른 한 명은 구름처럼 고요했다.
“어린놈이 꽤 하는군. 허나 네놈의 그 잔재주는 내 혈마권 앞에선 한낱 모래성에 불과할 것이다!” 혈풍대사가 으르렁거렸다.

“모든 무공에는 그 나름의 길이 있습니다. 대사님의 길은 파괴의 극에 달했지만, 제 길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길입니다.” 무운이 차분하게 답했다.

“건방진 소리! 죽어라!”

혈풍대사가 비무대를 박차고 튀어 올랐다. 그의 주먹에서는 핏빛 기운이 뭉쳐 거대한 악마의 형상을 이루었다. ‘혈마폭풍권(血魔暴風拳)’. 비무대를 뒤덮는 강렬한 살기. 공기마저 찢어발기는 듯한 파괴력.

무운은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을 비우고, 혈풍대사의 기운 흐름을 읽었다. 그의 몸은 이제 거대한 폭풍 속의 작은 나뭇잎처럼 흔들렸지만, 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흐읍!”

무운의 온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솟아났다. 그의 발이 비무대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혈풍대사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가는 운룡구천공의 기운은 혈마폭풍권을 감싸 안으며 그 파괴력을 조금씩 흡수하는 듯했다.

“무… 무엇이냐! 내 혈마권이 막히다니!”

혈풍대사가 당황하며 더욱 거친 공격을 퍼부었다. 비무대는 온통 붉은 기운과 황금빛 기운으로 뒤덮여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러나 무운은 혈풍대사의 공격을 흘려내고, 감싸 안으며, 마치 바위가 파도에 깎이듯 서서히 혈풍대사의 기운을 소모시켰다.

마침내 혈풍대사의 공격이 약해지는 찰나, 무운의 눈이 번뜩였다.
“운룡신권(雲龍神拳)!”

그의 주먹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겉으로는 평범한 주먹질이었지만, 그 속에는 이제까지 무운이 혈풍대사에게서 흡수하고, 자신의 운룡구천공으로 증폭시킨 모든 기운이 담겨 있었다. 거대한 용의 형상이 무운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와 혈풍대사를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앙!

혈풍대사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 거대한 기운에 휩싸였다. 핏빛 기운이 산산조각 났고, 그는 그대로 비무대 바닥에 처박혔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그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과 함께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

“승자, 무운!”

심판의 외침이 옥룡봉 전체에 울려 퍼졌다. 관중석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이내 거대한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그들은 ‘천하제일인’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었다. 강렬하고 파괴적인 무공 대신,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이치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승리한 새로운 천하제일인.

무운은 비무대 중앙에 서서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어깨에는 이제 천하의 운명이라는 무거운 짐이 놓여 있었다. 그는 봉인되어 있던 마기의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옥룡봉의 가장 깊은 곳, 천년 전에 마기를 봉인했던 성물(聖物)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성물은 고대의 비석 형태였다. 그 주변에서는 끈적하고 탁한 흑마기(黑魔氣)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무운은 성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운룡구천공의 진정한 마지막 경지, ‘운룡귀원공(雲龍歸元功)’을 펼쳤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기운이 흑마기를 밀어냈다. 황금빛 용의 기운이 성물과 무운을 감쌌고, 흑마기는 그 황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같은 마기의 저항이 느껴졌지만, 무운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기운은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마기를 흡수하고 정화했다.

밤하늘을 뒤덮었던 흑마기가 점차 옅어지고, 새벽의 여명이 동쪽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흑마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성물은 다시금 본래의 맑고 신성한 빛을 되찾았고, 옥룡봉에는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무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했지만, 그의 눈빛은 더욱 깊고 단단해져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무인(武人)이 아니었다. 천하의 운명을 짊어진, 진정한 천하제일인이자, 세상을 지키는 새로운 수호자였다. 옥룡봉 아래로 펼쳐진 세상은, 그를 알든 모르든, 이제 그의 손길 아래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