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이 무거운 물감처럼 세상의 색을 집어삼킨 지 3년. 잿빛 빌딩 숲과 썩은 피 냄새, 그리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들의 비명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햇살조차 썩어가는 도시를 비추는 등불 같았다.

“이쪽이야, 진우 씨.”

윤세아의 목소리가 텅 빈 도서관 서가 사이를 메아리쳤다. 그녀는 익숙하게 손전등을 휘둘러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들을 밀어냈다. 서가 사이를 채웠던 수많은 책들은 이제 축축한 곰팡이와 뒤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좀비 사태 초기에 불타지 않고 남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였지만, 시간 앞에는 장사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내부도 엉망이었다.

강진우는 낡은 배낭을 고쳐 메며 세아의 뒤를 따랐다. 눅눅한 공기가 폐를 짓눌렀지만, 이젠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곳 도서관은 소문만 무성했던 장소다. 폐쇄되기 전, 귀한 고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물론 대부분은 헛소문이었지만, 작은 가능성이라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필요한 건 비상식량이나 약품, 혹은 총알 한 줌보다 훨씬 절박한 것이었다. 바로 ‘정보’.

“읏… 냄새.”

세아가 코를 찡그렸다.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썩은 내가 뒤섞인 지독한 냄새였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던 때가 언제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바닥에는 부서진 의자와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었고, 군데군데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총알은 귀했고, 소음은 더 큰 위험을 불러왔다. 근접 무기는 언제나 마지막 보루였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 누가 진작에 다 털어갔거나, 아니면… 그냥 개소리였거나.”

세아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전등 빛이 한때 안내 데스크였을 법한 곳을 비추었다. 널브러진 서류와 부서진 컴퓨터 잔해만 가득했다.

진우는 대답 대신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습기와 함께 벽을 타고 흐른 물줄기가 천장의 일부를 뜯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 거대한 석상이나 조각이었을 법한 부조가 드러나 있었다. 이 도서관이 지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듯한, 고대 문양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장식처럼 보였지만, 진우의 눈에는 달랐다.

“이거… 원래 도서관에 있던 건가?”

진우의 낮은 목소리에 세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손전등 빛이 부조를 따라 움직였다.

“글쎄… 이 건물 자체가 오래되긴 했지만, 이런 양식은 본 적이 없는데.”

부조는 사람의 형상보다는 기하학적인 도형들과 알 수 없는 상징들로 가득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중앙에 새겨진 거대한 원형 문양이었다. 마치 복잡한 시계 태엽처럼 보였다. 그 안쪽으로는 작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는데, 별자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나타내는 지도 같기도 했다.

진우는 낡은 배낭에서 작은 공구 세트를 꺼냈다. 쇠 지렛대를 천장과 부조 틈새에 끼워 넣고 힘껏 눌렀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 석고판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그 안쪽으로 오래된 벽돌과 함께 미세하게 갈라진 틈이 보였다.

“진우 씨, 뭘 하는 거야?”

세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런 폐건물에서 무언가를 건드리는 건 언제나 위험했다. 언제 무너질지,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느낌이 좋지 않아.” 진우는 짧게 대답하며 계속해서 지렛대로 틈을 벌렸다.

그의 직감은 종종 생사를 갈랐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벽의 틈을 넓혀갔다. 결국, 묵직한 소리와 함께 벽돌 몇 개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예상치 못한, 서늘하고 퀘퀘한 공기였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은은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향내가 섞여 올라왔다.

“이건… 지하 공간인가?”

세아의 손전등이 무너진 벽 너머를 비췄다. 좁은 통로가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먼지 가득한 계단이 아래로 한참이나 내려가는 듯 보였다. 계단 벽면에도 천장의 부조와 비슷한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누가 이런 걸 여기다 숨겨놨지?”

세아가 중얼거렸다. 도서관 지하 창고나 보일러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석재와 오래된 벽돌들은 최소 몇 세기는 족히 된 것처럼 보였다.

진우는 통로 입구에 귀를 대고 잠시 침묵했다. 워커의 울음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깊은 침묵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들어갈 거야?”

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기대와 함께 깊은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진우는 쇠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이곳은 그들이 찾던 ‘정보’와는 거리가 멀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거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시에, 이 지독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이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문으로 보였다.

“그래.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가 바로 저 안에 있을지도 몰라.”

진우는 천천히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세아는 긴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손전등 불빛이 희미하게 지하 통로의 끝을 비췄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그림자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알았다. 이 문을 넘어선 순간,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혹은 더 큰 재앙의 불씨가 저 어둠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계단을 한참 내려가자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공기는 답답했고, 폐 속으로 들어오는 것마다 불순물 덩어리 같았다. 진우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좁은 통로가 끝나고,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은 단순한 지하 창고가 아니었다. 흙과 돌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벽면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건… 대체 뭐야?”

세아의 목소리가 경외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울렸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거대한 원형 홀의 입구였다. 홀의 중앙에는 묘한 빛을 내는 거대한 검은색 돌기둥이 솟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깨진 석상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벽을 따라서는 몇 개의 통로가 더 이어져 있었는데,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홀 바닥에 흩어져 있는 유골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해골과는 달랐다. 뼈마디가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거나,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나 있었다. 흡사 조각 예술품처럼 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굳어버린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워커… 는 아니야.” 진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훨씬 오래된 것 같아.”

오랜 시간 동안 갇혀 있었던 것인지, 유골에는 피와 살점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바싹 마른 뼈대만이 끔찍한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세아는 숨을 들이켰다. “이 사람들이 뭘 발견했던 걸까? 그래서 이렇게 된 걸까?”

진우의 눈은 검은 돌기둥에 고정되어 있었다. 돌기둥 표면에도 희미하게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들은 천장의 부조와 흡사했다. 그는 돌기둥에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표면을 쓸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진우의 손이 닿은 부분에서 돌기둥 전체로 희미한 파란색 빛이 번졌다.

번쩍!

홀을 가득 채웠던 어둠이 순간적으로 물러나고, 모든 것이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기둥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석상 조각들도 빛에 반응하듯 일렁였다.

“진우 씨!” 세아가 놀라 소리쳤다.

진우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파란색 빛은 잠깐 일렁이더니 이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그는 기둥 표면에 새겨진 문자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스스슥… 돌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진우는 재빨리 쇠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세아도 권총을 뽑아 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젠장, 또 뭐야?” 세아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워커가 아니었다. 기이하게 뒤틀린 유골이 스스로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처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일어서는 것들은, 유골들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텅 빈 구멍이 뚫려 있었고, 앙상한 갈비뼈 사이로 스산한 바람 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유골들의 심장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서, 검은 돌기둥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유골이 아니었다. 이 고대 유적의 파수꾼들이었다. 혹은… 유적에 갇힌 마지막 희생자들이었다.

진우는 세아의 손목을 잡고 빠르게 속삭였다. “뛰어!”

두 사람은 빛이 사라진 검은 돌기둥과 기괴하게 깨어난 유골 파수꾼들을 뒤로한 채, 왔던 길 반대편의 어두운 통로 중 하나로 전력 질주했다. 그들 뒤에서는 뼈가 부딪히는 끔찍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 인류는 또 다른 종류의 공포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잊혀진 고대의 저주가 다시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