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란 마법 학원은 언제나 거대한 미스터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수백 년 된 대리석 기둥과 고풍스러운 아치형 천장, 그리고 밤하늘의 별자리와 연결된 듯 반짝이는 첨탑들. 그 모든 아름다움 아래,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소문과 금기들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다. 특히, 밤이 깊어질수록 북쪽 도서관 지하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오래된 금서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둥, 한때 마법사들의 은밀한 결사체가 실험을 벌였다는 둥.
강민준에게 그런 소문은 그저 지루한 수업을 견디게 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 그는 아크란의 2학년 학생이었지만, 명문 학원의 엘리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타고난 호기심과 규칙에 대한 미묘한 경멸이 늘 그를 말썽의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선배, 진짜 괜찮겠어요?”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1학년 한소라였다. 그녀는 안경 너머로 잔뜩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민준의 최신 ‘아이디어’ 덕분에 둘은 지금, 북쪽 도서관 맨 아래층, 아무도 찾지 않는 고서 보관실에서 벌점 청소 중이었다. 민준이 교칙 위반으로 마력 감지기를 개조하려다 걸렸고, 소라는 그를 돕다가 덤터기를 썼다.
“괜찮고 말고 할 게 뭐 있냐. 어차피 벌점은 확정인데.” 민준은 낡은 책등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먼지가 푸석하게 일어났다. “솔직히 말해봐, 너도 여기 궁금했잖아?”
소라는 대답 대신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는 아크란에 입학한 지 반년 만에 이미 ‘규율의 수호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민준의 꼬임에 넘어가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민준의 말대로, 그녀 역시 이 금단의 공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여긴 진짜… 공기가 달라요.” 소라가 속삭였다. 차갑고, 습하고, 오래된 종이 냄새 너머로 쇠 비린내가 희미하게 섞여 있는 듯했다.
민준은 허리에 찬 마력등을 뽑아 들었다. 붉은 마력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드러운 빛이 어둠을 가르고 먼지 낀 책장들을 비췄다. 수백 년 된 마법 이론서와 고대 문헌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대부분은 이미 판독 불가능한 언어로 쓰여 있거나, 너무 낡아 만지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왠지 이런 데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민준은 중얼거리며 손으로 책장 깊숙한 곳을 더듬었다. 그의 촉은 늘 정확했다.
“뭘 찾는데요?” 소라가 불안하게 물었다.
“글쎄. 어쩌면 전설의 비기 같은 거? 아니면 최소한 내 벌점을 상쇄할 만한 귀한 유물이라도.” 민준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눈은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민준의 손가락 끝이 닿은 책장 뒤쪽 벽에서 ‘딸깍’ 하는 작은 기계음이 울렸다. 소라가 화들짝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선배!”
“쉿.”
민준은 곧바로 손을 빼고 그 소리가 난 곳을 응시했다. 책장 전체가 앞으로 조금 기울어지더니,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왼쪽으로 천천히 밀려났다. 그 뒤에 드러난 것은 대리석 벽이 아니었다. 거칠게 다듬어진 콘크리트 벽, 그리고 그 중앙에 금속으로 된 육중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에는 마법진 대신 알 수 없는 기호들과 녹슨 손잡이가 박혀 있었다.
“이게 뭐야…” 소라는 경악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기록에도 없는 곳이에요!”
“그렇겠지. 기록에 있으면 금기가 아니잖아.” 민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짜’ 같았다. 마력등의 붉은 빛이 금속 문에 반사되어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민준은 조심스럽게 문에 다가갔다. 녹슨 손잡이는 그의 손길에 삐걱이며 돌아갔다. 안쪽에서 냉기가 스며 나왔다. 오래 갇혀 있던 어둠이 깨어나듯, 문이 서서히 열렸다.
문 너머는 한 칸짜리 좁은 공간이었다. 아니, 공간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통로였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발밑은 축축한 금속판으로 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희미한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학원 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진짜 지하 시설인가 봐요…” 소라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무심코 마법으로 작은 불꽃을 띄워 어둠을 비추려 했다.
하지만 불꽃은 채 빛을 발하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마치 그 공간을 가득 채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억눌린 듯이. 민준의 마력등조차도 평소보다 훨씬 어둡게 빛났다.
“마법이 잘 안 통해서…?” 민준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마력등을 흔들어 보았다. 이곳은 분명히 마법 학원 지하인데, 마력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통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벽면을 따라 이어진 굵은 전선들과 파이프들이 보였다. 거대한 장비들을 움직이는 듯한 둔탁한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전해져왔다. 그리고 멀리서, 낮게 울리는 ‘웅-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기계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젠장, 여기가 무슨 발전소도 아니고.” 민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소라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민준의 교복 소매를 꽉 붙들었다. “선배, 돌아가요. 여긴… 뭔가 이상해요.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뭘. 게다가… 마력이 이렇게 약해지는 곳이라니, 마법 학원 지하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더 궁금하지 않냐?”
민준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가 발을 내딛자,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통로의 끝에는 또 다른 금속 문이 있었다. 이전 문보다 훨씬 더 크고 두꺼웠다.
문 옆에는 작은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랬지만, 희미하게 빛나는 액정 화면에 알 수 없는 문자열과 도표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법적인 장치라기보다는… 정교한 과학 기술의 산물 같았다.
“이거… 진짜 옛날 컴퓨터 같은 건가?” 민준이 단말기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 순간, 단말기의 화면이 갑자기 환하게 바뀌었다.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이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젠장!” 민준은 손을 떼고 뒷걸음질 쳤다.
소라가 비명을 질렀다. “선배! 우리가 뭔가 잘못 건드렸어요!”
경고음과 동시에 육중한 금속 문이 천천히, 그리고 끔찍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스며 나오는 것은 차가운 냉기가 아니었다. 희미한 푸른빛과 함께, 끈적이는 비린내, 그리고… 무언가 축축하고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학원 지하의 ‘금기’라는 소문이 얼마나 순진한 이야기였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거대한 원형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의 투명한 수조가 솟아 있었다. 수조 안에는 푸른 액체가 가득했고, 그 안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것은 마치 심해의 괴수처럼 거대한 팔다리와 지느러미를 가진 듯했다. 그리고 그 생명체의 절반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섬뜩하게도, 눈을 감은 채 푸른 액체 속을 떠다니는 그 ‘것’은, 인간의 상반신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의 하반신이 기괴하게 융합된 형태였다.
주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장비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거대한 케이블들이 수조로 이어져 있었고, 벽면을 따라 늘어선 무수한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데이터와 그래프들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과학 기술로 이루어진 금단의 실험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한 문구가 거대한 수조 아래, 낡은 금속판에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프로젝트: 오메가-M. 인간과 마력 생명체의 궁극적 융합.」
소라는 충격으로 굳어버린 듯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민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것은 단순한 소문이나 마법사의 금기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끔찍한 현실이었다.
그때, 거대한 수조 안의 ‘그것’이 천천히 눈을 떴다. 푸른 액체 속에서 번뜩이는, 섬뜩하게 빛나는 노란 눈동자가 정확히 그들을 향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들의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허락으로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불길한 예감. 민준은 숨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학원의 최고 마법 이론 교수이자 규율부장인 엘리어스 교수가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달빛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마력이 응축된 수정구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단 한 점의 표정도 없었다. 다만, 민준과 소라를 향한 시선에는, 거대한 수조 속의 ‘금기’를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차갑고 무감정한 시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곳은 마법의 전당이 아니었다.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빚어낸, 차가운 생체 실험실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금기를 목격해버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