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균열
아르카나 마법학원의 중앙 홀은 언제나 그랬듯 쨍한 마법광으로 가득했다. 천장 높은 곳에 촘촘히 박힌 마나석 크리스탈이 뿜어내는 은은한 빛은 대리석 바닥에 닿아 다시 한번 산란하며, 이곳이 그저 평범한 건물이 아님을 웅변했다. 학원생들의 발소리, 마법진을 새기는 깃펜의 사각거림, 가끔씩 터져 나오는 마법 실험의 잔향까지. 이 모든 것이 태민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강태민은 복도 한편의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창밖으로는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거대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학원생들이 훈련하는 비행 마법 연습장이 보였다. 빗자루를 타고 창공을 가르는 선배들의 모습은 맹렬했고, 그들의 뒤로 마나가 뿜어내는 푸른 궤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저들 속에 자신이 낄 수 있을까. 태민은 그저 이 아르카나의 광휘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다. 어릴 적 우연히 마법 재능이 발현되어 기적적으로 아르카나에 입학했지만, 이곳은 선택받은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명망 높은 마법 가문의 후계자들, 어릴 때부터 귀족들의 전용 마법사를 사사한 천재들, 혹은 희귀한 마법 유물을 지니고 태어난 운 좋은 이들이 즐비했다. 태민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커녕, 숨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어이, 강태민! 거기서 뭐 해?”
등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태민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유진아 선배였다. 길게 늘어뜨린 갈색 머리에 늘 허술하게 걸치고 다니는 마법 로브, 그리고 묘하게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유진아는 3학년 선배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태민에게 유일하게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이었다.
“아, 선배. 그냥… 구경하고 있었어요.”
유진아는 태민의 옆에 서서 창밖을 힐끗 보더니 픽 웃었다. “아직도 이 학원의 으리으리함에 질려있나 보네. 매일 봐도 안 질리는 건 인정해 주마.”
“선배는… 괜찮으세요?”
“난 뭐, 워낙 배짱이 두둑한 편이라서 말이지.” 유진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너 정도면 꽤 잘하고 있어. 마나 감응력은 좀 떨어져도, 마법진 설계는 꽤 재능 있잖아? 포기하지 마.”
그녀의 격려에 태민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선배.”
유진아는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오늘은 뭔가 좀 이상한데?”
“네? 뭐가요?”
“모르겠어? 아침부터 마나의 흐름이 좀… 불안정하다고 해야 하나. 미약한 진동 같은 것도 느껴지는 것 같고.” 유진아는 이마를 찌푸리며 복도 바닥에 손을 짚었다. “아무래도 지하 심층부 쪽에서 뭔가 있는 것 같아. 으음…”
‘지하 심층부’. 그 단어에 태민은 순간 흠칫했다. 아르카나 마법학원에는 몇 가지 명확한 금기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하 심층부 출입 금지’였다. 학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이며, 아무리 고위 교수나 교장이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고대 마법의 원천이 잠들어 있다거나, 학원의 건립 목적 자체가 그곳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등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다. 심지어는 그곳에 봉인된 끔찍한 존재가 있다고 믿는 학생들도 있었다.
“또 심층부 이야기예요? 거긴 언제나 좀 그렇잖아요.” 태민은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하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심하잖아.” 유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태민의 어깨를 툭 쳤다. “뭐,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우린 수업이나 잘 듣자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앞서 걸어갔다. 태민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저 멀리, 비행 마법 연습장 너머의 숲 깊숙한 곳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한 빛줄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불길한 빛.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태민의 눈에는 분명히 각인되었다.
“저건… 뭐지?”
태민은 직감했다. 유진아가 말했던 마나의 불안정함, 그리고 방금 본 그 불길한 빛. 분명 지하 심층부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답을 주려는 듯, 그의 발아래에서 미세하지만 명확한 진동이 다시 한번 울렸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태민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뇌리에는 낮에 보았던 붉고 검은 빛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금기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호기심이 동시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결국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맨발로 바닥을 짚었다. 복도에서는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듯 고요했다. 태민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어딘가에 이끌리는 듯 기숙사 문을 조용히 열었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학원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 나섰다. 평소에는 늘 잠겨있던 지하 계단 문이 오늘따라 미묘하게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틈새로 비집고 나오는 어둠은 그 어떤 마법광으로도 뚫을 수 없을 만큼 짙었다.
태민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들어가면 안 된다. 이곳은 금기다.’ 이성이 경고했지만, 그의 발은 이미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었고, 어디선가 눅눅하고 불쾌한 냄새가 풍겨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갈수록 마법광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손에 든 소형 마나석 조명이 겨우 발치만을 비출 뿐이었다. 벽에는 넝쿨 같은 검은 이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축축한 습기가 온몸을 감쌌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단은 끊어지고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 양옆으로는 낡고 육중한 철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문틈으로 희미한 마나의 잔류가 느껴졌지만, 그건 평소에 느끼던 깨끗한 마나와는 달랐다. 무언가 뒤틀리고, 뭉그러진 듯한 불쾌한 기운이었다.
그때, 통로 끝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느끼는 듯하기도 하고, 긁는 듯하기도 한 이상한 소리. 마치 어딘가에 갇힌 존재가 필사적으로 벽을 긁어대는 소리 같았다. 태민은 저도 모르게 마나석 조명을 꽉 쥐었다. 이성과 본능이 동시에 외쳤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호기심은 이미 두려움을 넘어섰다. 그는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통로 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다른 문과는 확연히 다른, 거대하고 낡은 석문이 있었다. 문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마법진은 검은색 마나로 뒤덮여 활성 상태인 듯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석문 바로 앞에서, 태민은 얼어붙었다.
석문의 틈새로, 아주 가는 실 같은 붉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낮에 하늘로 치솟았던 바로 그 붉고 검은 마나의 기운이 석문 너머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흐느끼는 듯한 소리는 이제 좀 더 선명해졌고, 분명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무언가 끔찍한 것이 저 석문 너머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봉인이 흔들리고 있었다.
태민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차가운 석문에 가져다 댔다. 문에 닿는 순간, 그의 몸에 강력한 충격이 전해졌다. 환상처럼 수많은 이미지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고통, 절규, 파괴… 그리고 거대한 검은 그림자. 그 그림자는 마치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으윽!”
태민은 비명을 삼키며 손을 떼어냈다. 차가운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대는 것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호기심 많은 학생이 찾아왔군.”
태민은 흠칫 놀라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 서 있는 것은 한 명의 남자였다. 그는 아르카나의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태민이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의 눈은 달빛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고, 입술은 비릿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금기된 장소에 발을 들인 걸 환영한다, 강태민.”
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숨겨진 위협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태민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깨달았다. 석문 너머의 금기가,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이, 이제 막 그에게 속삭이기 시작한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