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독립적인 단편 소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깨진 콘크리트 잔해와 그 사이를 뚫고 솟아난 낯선 붉은 덩굴이었다. 퀴퀴한 흙먼지와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어딘가 축축하고 끈적이는 역겨운 기운이 코끝을 찔렀다. 어제까지 내가 살던 세계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풍경. 머릿속은 지끈거렸고, 몸은 둔기라도 맞은 듯 쑤셨다.

“젠장… 여기가 어디야.”

쉰 목소리가 겨우 터져 나왔다. 겨우 몸을 일으키자 시야가 휘청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의 잔해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덩굴들이 벽을 휘감아 폐허를 삼키려 들고, 아스팔트는 갈라져 틈새마다 이끼와 알 수 없는 식물들이 자라났다. 하늘은 잿빛에 가까웠고, 태양은 희미한 원형으로 간신히 그 존재를 알릴 뿐이었다. 꿈이기를 바랐지만, 발밑에 뒹구는 부서진 금속 조각의 차가운 감촉은 현실임을 비정하게 속삭였다.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어제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졸고 있었다. 이어폰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흘렀고,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리고는… 번개? 아니, 거대한 섬광. 그 다음은 모든 것이 암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이세계 전생? 판타지 소설에서나 보던 게 나한테 일어났다고?”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뱃속에서 공허한 울림이 치솟았다. 배가 고팠다. 갈증도 심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눈에 띄는 것은 온통 죽음의 흔적뿐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폐허를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건물 잔해 사이에서 녹슨 철근 조각을 주워들었다. 딱히 쓸모는 없어 보였지만, 맨손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위안이라도 얻고 싶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끄르르륵, 끄르르륵.

낮고 굵직한 그르렁거림이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버려진 차량의 잔해 뒤에 웅크려 앉아 소리의 근원지를 살폈다.

그리고 보았다.

그것은 개였다. 아니, 개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털은 드문드문 빠져 흉측한 살덩이가 드러나 있었고, 등줄기를 따라 날카로운 뼈들이 솟아나 있었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끈적한 침을 흘리고 있었다. 보통 개의 두 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몸집. 분명 내가 알던 ‘개’가 아니었다.

‘돌연변이… 괴물.’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저것과 맞닥뜨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했다. 괴물은 무언가를 찾는 듯 코를 킁킁거리며 폐허를 배회하고 있었다. 내 쪽으로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운명은 지우의 편이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괴물의 코가 킁킁거리더니 이내 지우가 숨은 쪽으로 획 돌아섰다. 붉은 눈이 섬뜩하게 이쪽을 노려보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지우는 얼어붙었다.

괴물이 앞발로 땅을 긁으며 으르렁거렸다. 곧 달려들 기세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지우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생각이 스쳤다. 도망쳐도 잡힐 것이다. 저 덩치로 분명 나보다 빠를 터. 살려면 싸워야 했다. 떨리는 손으로 녹슨 철근을 꽉 움켜쥐었다.

“크아악!”

괴물이 달려들었다. 지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던졌다. 날카로운 발톱이 지우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흙먼지가 풀썩 일었다. 괴물의 빈틈을 노려 철근을 휘둘렀다. 쾅! 철근이 괴물의 옆구리에 맞았지만, 둔탁한 소리만 날 뿐이었다.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짧게 짖었지만, 이내 눈빛이 더욱 사나워졌다. 철근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괴물이 다시 몸을 돌려 점프했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우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죽음의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 순간, 지우의 눈에 옆에 뒹굴던 날카로운 파이프 조각이 들어왔다. 재활용 공장에서나 볼 법한, 끝이 뾰족하게 찢어진 쇠파이프였다.

‘저거다!’

괴물이 공중에서 떨어지는 찰나, 지우는 몸을 굴러 파이프를 잡고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녀석의 약점은 어디일까. 뼈가 솟아난 등? 단단한 가죽? 아니, 분명 어딘가 약한 곳이 있을 터였다. 붉게 빛나는 눈, 아니면…

괴물이 땅에 착지하며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지우는 파이프를 들고 그 틈을 파고들었다. 목표는 녀석의 턱밑, 뼈가 튀어나오지 않은 부드러운 살점이었다. 죽기 살기로 휘두른 파이프가 녀석의 턱을 꿰뚫었다.

끼이이이익!

괴물은 비명을 질렀다. 끔찍한 소리였다. 거대한 몸뚱이가 경련하듯 떨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붉은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괴물은 그렇게 죽었다.

지우는 숨을 헐떡였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겨우겨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한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괴물의 시체를 보며 주저앉았다.

‘내가… 짐승을 죽였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괴물의 시체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붉고 투명한 빛이 시체에서 솟아나 지우를 향해 흘러들어왔다. 마치 작은 조약돌 같은 것이 빛을 내며 몸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

놀랍게도 아까 전의 피로감과 통증이 조금 가시는 것을 느꼈다. 뱃속의 공허함도 미미하게 채워지는 듯했다. 이건 대체…

‘마석.’

갑자기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떠올랐다. 이세계 소설에서 흔히 보던, 괴물을 잡으면 얻는 에너지 결정체. 그게 내 몸으로 들어온 것인가? 힘이…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다.

지우는 고개를 들어 다시 폐허를 응시했다. 무너진 빌딩 숲, 잿빛 하늘,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또 다른 짐승의 울음소리. 이곳은 생존이 곧 법칙인 잔혹한 세계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어제의 지우는 죽었다. 이곳에는 살아남아야 하는 지우만이 있을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근과 파이프를 다시 챙겼다. 괴물의 시체는 역겨웠지만, 어쩌면 저것도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반드시 찾아야 했다. 먹을 것, 마실 것, 그리고 더 강해질 방법.

“좋아… 다시 시작이다.”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부터 지우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살아남는 것.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폐허 속에서, 지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혼란스럽거나 겁에 질려 있지 않았다. 차가운 이성을 간직한 채,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 황폐해진 세계에서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