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허의 심장
**제17화: 침묵하는 우주, 맥동하는 심장**
우주선 ‘아틀라스 호’의 탐사선이 착륙한 행성 97-브라보의 표면은 지옥보다 더 고요했다. 붉은 흙먼지가 희미한 대기 속을 느리게 부유했고, 거대한 수정처럼 솟아오른 암석들은 날카로운 이빨처럼 하늘을 찢을 듯했다. 망망한 심우주의 어느 이름 없는 구석, 아무도 도달한 적 없는 이 황량한 세계는, 그 자체로 거대한 비극의 조형물처럼 보였다.
“젠장, 박 팀장. 이게 대체 무슨….” 강민준 선장의 목소리는 송신기를 통해 답답하게 울렸다. 그의 눈은 탐사팀이 발굴해낸 거대한 구조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설 부선장, 함선 상태는? 통신은?”
이설 부선장의 딱딱한 보고가 이어졌다. “에너지 스파이크가 비정상적입니다, 선장님. 외부 스캐너가 완전히 먹통이에요. 함선과 통신도 시도 때도 없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전자기 간섭이 아니에요.”
탐사팀장 박준혁은 강민준 선장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붉은 흙먼지가 가득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발견한 그 ‘무엇’을 넋 나간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잃어버린 신을 마주한 광신도처럼.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한 검은 결정이 솟아 있었다. 행성 표면을 뚫고 솟아오른 그것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표면이 불규칙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은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했고, 그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은 눈으로 좇기조차 버거웠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자연물도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기적이며, 동시에 거대한 오류였다.
“데이터 분석이 안 됩니다.” 옆에서 스캐너를 든 채 고뇌하던 기술장교 최유진이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든 수치가… 불가능해요. 존재할 수 없는 물질 밀도, 측정 불가능한 에너지원, 그리고….”
최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검은 결정의 한가운데, 마치 심장처럼 박혀 있는 작은 균열에 멈춰 있었다. 그 균열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은 일반적인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색깔이 없었고, 형태가 없었으며, 존재 자체가 시야를 왜곡시키는 듯했다.
“그리고 뭐?” 강민준 선장이 다그치듯 물었다. 박준혁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이제 손을 뻗어 검은 결정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환영이 보입니다.” 최유진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영상들이 스쳐 지나가요. 고대어 같은 소리도 들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준혁이 나지막이 신음했다. 그는 마침내 손끝으로 검은 결정을 건드린 참이었다. 닿는 순간, 거대한 에너지가 그의 몸을 관통한 듯했다. 박준혁의 몸이 경련했고, 그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뒤집혔다.
“박 팀장!” 강민준 선장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결정은 박준혁의 접촉을 기점으로 더욱 격렬하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 심장 박동 같은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졌고, 행성 전체가 그 박동에 맞춰 진동하는 듯했다. 붉은 안개는 순식간에 짙어졌고, 시야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흐려졌다.
“선장님! 지진입니다! 행성 지표면이 붕괴하고 있어요!” 이설 부선장의 다급한 외침이 귀청을 때렸다. “탐사선에 비상사태 발생! 자동 이륙 시스템 오작동!”
그 순간, 박준혁의 몸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의 입에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구멍처럼 서서히 투명해지더니, 거대한 검은 결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사라졌다. 그의 흔적은 붉은 먼지조차 남기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박 팀장!” 강민준 선장의 외침은 짙어진 안개와 진동하는 대기 속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검은 결정의 중앙에 박혀 있던 희미한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눈이 천천히 뜨이는 것처럼. 그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더 이상 시야를 왜곡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현실의 형태를 지우는 듯한, 광적인 에너지였다. 빛이 닿는 모든 것들이 형태를 잃고 녹아내렸다. 붉은 암석이, 붉은 먼지가, 그리고 탐사선의 기체마저도 서서히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탈출해야 합니다, 선장님! 지금 당장!” 최유진이 절규했다. 그녀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뒤편, 행성 상공에 대기 중이던 ‘아틀라스 호’에서 더욱 절망적인 통신이 날아들었다.
“선장님! 비상! 함선이… 함선이 끌려들고 있습니다! 행성 표면에서 거대한 중력파가 발생했어요! 워프 엔진 가동 불능! 모든 시스템이 강제로 셧다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추락하고 있어요!”
이설 부선장의 목소리는 패닉에 휩싸여 있었다. ‘아틀라스 호’는 거대한 검은 결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서히 아래로, 어둠 속으로 끌려 내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마치 작은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무력하게 끌려 내려오는 모습은, 압도적인 절망 그 자체였다.
지표면의 검은 결정은 이제 완연히 눈을 뜬 듯 보였다. 균열 너머로는 어떠한 공간도, 시간도,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무(無)의 심연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우주선 아틀라스 호와 그 안에 타고 있는 모든 승무원들을, 그리고 이 행성 97-브라보의 모든 존재들을 삼키려 하는 거대한 공허의 심장이었다.
강민준 선장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가 쌓아 올린 과학과 이성이, 고작 몇 분 만에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었다. 그는 권총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눈앞의 심연은 총알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틀라스 호’는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선장과 최유진은 붉은 안개와 함께 펼쳐진 무한한 공허의 입구 앞에서, 마치 작은 티끌처럼 무력하게 서 있었다. 거대한 공허의 심장이 맥동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지표면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진동했다. 거대한 균열이 강민준 선장의 발밑을 향해 빠르게 벌어졌다. 그는 허둥지둥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발밑의 땅이 사라지고, 그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비친 마지막 광경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검은 결정의 거대한 눈동자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박준혁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미소를 띠고서.
“박… 팀장…!”
강민준 선장의 외침은, 공허의 심장이 삼킨 우주의 고요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