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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에 피어난 로맨스: 망각의 도시에서 온 초대

**[FADE IN]**

**[SCENE 1: ‘스카이라인’ 건설 현장 입구 – 낮]**

거대한 굴착기들이 굉음을 내며 황량한 땅을 파헤치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하늘로 솟구친다. 덤프트럭들은 끊임없이 흙을 실어 나르며 바삐 움직이고, 그 위로는 ‘스카이라인’이라는 로고가 선명한 현장 사무실 컨테이너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그 앞에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건설 관계자들이 도면을 들고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의 모습에서 비즈니스의 냉철하고 효율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그들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저편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온몸으로 ‘여기는 유적지다!’라고 소리치는 듯한 여인 하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다. 머리는 산발이고, 낡은 야상 점퍼에는 군데군데 흙탕물이 튀어 있다. 손에는 잔뜩 구겨진 종이 뭉치를 꽉 쥐고 있는데, 마치 보물 지도를 움켜쥔 탐험가 같다. 그녀는 바로 고고학 연구원, **한서아(29)**였다.

**서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헥, 헥… 잠깐만요! 이 공사…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청객처럼 나타난 서아를 쳐다본다. 그의 표정에는 짜증과 귀찮음이 역력하다.

**현장 책임자:** (귀찮다는 듯) 또 누구요? 아가씨, 여기 위험한 현장입니다. 출입금지 구역인 거 안 보여요?

**서아:** (구겨진 종이 뭉치를 필사적으로 흔들며) 이건 단순한 땅이 아니에요! 이건… 이건 고대 문명의 흔적이란 말이에요! 제가 수년간 연구해온 전설 속 ‘지하 도시’의 단서가 바로 이곳에…!

책임자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다. 이런 황당한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현장 책임자:** (비웃음) 전설요? 여기 사장님이 땅 팔 때 그런 소리 하나도 없었구만. 우리 사장님이 얼마나 깐깐하신데! 아가씨, 혹시 보상금 노리는 신종 수법인가? 어디서 또 이상한 소문 듣고 와서 떼 쓰는 거 아니에요?

**서아:** (분통) 뭐, 뭐라고요? 지금 저를 모욕하는 거예요? 저는 한서아 연구원이에요! 한국 고고학계의… 비주류지만…! 제 전공에 목숨 건 사람이라고요!

그때, 현장 사무실 컨테이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말끔하게 정돈된 머리, 최고급 원단으로 맞춘 듯한 수트가 흙먼지 날리는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이다. 마치 잡지 화보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남자는 바로 ‘스카이라인’의 후계자이자 현장 책임자, **강윤재(32)**였다. 냉철하고 시니컬한 눈빛이 서아에게 향한다. 그의 등장은 주변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우는 듯했다.

**윤재:** (나른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로) 무슨 소란이죠?

현장 책임자는 윤재에게 달려가 굽신거린다. 그의 태도는 180도 바뀌어 있었다.

**현장 책임자:** 사장님! 별것도 아닌데요. 또 어디서 이상한 소문 듣고 찾아온 민원인입니다. 저번에 멸종 위기종 새 둥지 있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던 사람 생각나네요. 영 귀찮게 합니다.

윤재는 팔짱을 낀 채 서아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의 시선은 마치 전시된 물건을 평가하듯 차가웠다. 서아는 그 시선이 불쾌한 듯 살짝 찌푸린다.

**윤재:** (피식 웃으며) 멸종 위기종… 이번엔 고대 문명이라. 다음엔 외계인 유적이라도 발견했다고 하겠네요. 고고학 연구원이시라? 어쩐지 차림새가 남다르네요. 방금 땅 파다 오셨나?

**서아:** (울컥, 목소리가 커진다) 땅 파다 온 거 맞아요! 당신처럼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도련님은 모를 거예요! 이 땅 아래에 얼마나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 묻혀있는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란 말이에요!

**윤재:** (눈썹을 한쪽 올리며) 인류의 유산? 그 유산이 저한테 한 푼이라도 줍니까? 저는 이 땅을 사서 새로운 주거 단지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수천억이 들어간 프로젝트를, 증명되지도 않은 ‘전설’ 때문에 멈추라고요?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서아:** (단호하게) 증명되지 않았다니요! 여기 보세요! (구겨진 종이 뭉치에서 빛바랜 옛 문헌 사본과 자신이 직접 그린 스케치를 꺼내 펼친다) 이건 제가 발견한 17세기 지방지에서 발췌한 내용이에요. ‘망각의 도시, 지하에 잠들다’라는 구절이 명확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주변 지형과 대조해본 결과…

윤재는 서아의 말허리를 단호하게 자른다.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윤재:** (피곤하다는 듯) 죄송하지만, 저는 동화책 읽어줄 시간은 없습니다. 법적 근거가 있습니까? 정식 발굴 허가라도 받아오셨어요? 아니면, 문화재청에서 공식적인 보존 명령이라도 내려왔습니까?

서아는 할 말을 잃는다. 그녀는 번번이 학계에서 ‘과도한 상상력’으로 치부되며 정식 발굴 허가를 받지 못했다. 비록 그녀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지만,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했다는 냉정한 현실이 그녀를 짓눌렀다.

**서아:** (작은 목소리로) 그건… 아직…

**윤재:** (확인 사살하듯) 그럼 나가세요. 이봐요, 이 분 정중하게 모시고 나가. 혹시 불응하면 업무 방해로 신고하고. 강경하게 처리하세요.

현장 책임자가 손짓하자, 건장한 경비원 두 명이 서아에게 다가온다. 그들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서아:** (억울함에 눈가가 붉어진다) 뭐, 뭐예요! 저는 단지…!

경비원들이 서아의 팔을 잡고 끌어내려 하자, 서아는 완강히 저항한다. 그녀의 가방에서 흙먼지 묻은 작은 곡괭이와 붓 같은 발굴 도구들이 왈그랑 쏟아져 나온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의 열정이 그대로 쏟아지는 듯했다.

**서아:** (버둥거리며) 이거 놓으세요! 이 땅은… 이 땅은 당신 같은 속물들이 함부로 건드릴 곳이 아니라고요! 인류의 미래가 달린 곳이라고요!

윤재는 그런 서아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한심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는 이런 소란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윤재:** (혼잣말처럼, 그러나 들리게)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군.

경비원들이 서아를 현장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서아는 마지막까지 윤재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로 갈라져 있었다.

**서아:** 두고 봐요! 당신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예요! 이 망각의 도시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요!

윤재는 코웃음을 친다.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윤재:** (피식) 망각의 도시? 참 로맨틱하네요. 동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SCENE 2: ‘스카이라인’ 건설 현장 – 다음 날, 오후]**

다음 날 오후. 공사는 어제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거대한 포크레인이 흙을 퍼 나르고, 덤프트럭들이 줄지어 대기한다. 윤재는 현장 중심부에서 설계 도면을 보며 인부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사업가로서의 날카로움과 냉철함이 묻어났다.

**윤재:** (무전기에 대고) 3번 구역, 지하 터파기 작업 더 깊게 들어가세요. 지질 검사 결과 이상 없다고 했으니 속도 내도 좋습니다. 예정보다 더 빨리 끝내도록 하세요.

그때였다. 거대한 굴착기가 땅을 파고 들어가던 중, ‘콰앙!’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굴착기의 삽날이 무언가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그 충격에 굴착기 전체가 흔들렸고, 인부들이 놀라 작업을 멈추고 웅성거린다. 현장의 활기 넘치던 분위기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인부 1:** (당황) 어, 뭐야? 바위인가? 이쪽엔 암반 없다고 했는데… 지질 검사 결과가 잘못됐나?

윤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굴착기가 부딪힌 곳으로 다가갔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흙더미 아래를 꿰뚫었다. 굴착기가 파헤친 흙더미 아래로, 어둡고 깊은 구멍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구멍의 가장자리에는,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듯한 돌벽의 일부가 희미하게 보였다. 완벽하게 직선으로 깎인 돌의 표면은 자연적인 암반과는 확연히 달랐다.

**윤재:** (혼잣말처럼) 돌벽…? 설마…

그는 뭔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제 그 이상한 여자가 했던 말이 귓가를 스친다. ‘망각의 도시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요!’ 그의 냉철한 이성은 미신을 거부했지만, 눈앞의 광경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인부 2:** (조심스럽게) 사장님, 이거… 좀 이상합니다. 바위 같지는 않은데요… 뭔가 문양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윤재는 조심스럽게 구멍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서 어둠 속을 비추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교하게 조각된 문양으로 뒤덮인 거대한 돌문이었다. 그 돌문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마치 잠자는 거인처럼 지하 깊숙이 묻혀 있었다. 문양은 정교하고 신비로웠으며, 분명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윤재:** (놀라움과 당혹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이건… 말도 안 돼…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현장 입구 쪽에서, 어제와 똑같은 산발머리 여인이 이번에는 작은 삽과 지도를 들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확신에 찬 얼굴로 현장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그 무엇보다 빛나고 있었다.

**서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제가… 제가 뭐라고 했어요! 제가 진짜라고 했잖아요! 제 말이 맞았잖아요!

윤재는 멍하니 서아를 바라봤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정말… 그 여자의 말이 맞았던 건가?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켰다.

**[SCENE 3: 지하 유적 입구 – 저녁]**

굴착기가 뚫어낸 구멍 주변에는 간이 펜스가 설치되고, 몇몇 조사원들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윤재의 지시로 아직 정식 발굴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라, 누구도 함부로 돌문을 건드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윤재는 굳은 얼굴로 거대한 돌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서아가 흥분과 감격에 찬 얼굴로 돌문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손길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연인을 만난 듯 조심스럽고 애틋했다.

**서아:** (감격에 젖어) 보세요! 이 문양… 이건 제가 지방지에서 본 기록 속의 ‘별자리를 품은 거북이’ 문양과 정확히 일치해요! 이 거북이는 고대 부족에게 지혜와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였고, 이 별자리는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윤재는 서아의 횡설수설을 듣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공사 지연’, ‘예산 초과’, ‘이미지 타격’이라는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윤재:** (지친 목소리로) 그래서요. 그 별자리가 지금 이 문을 열어줍니까? 아니면 우리가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려주기라도 합니까?

**서아:** (눈을 반짝이며) 어쩌면요! 고대인들은 자연의 섭리를 따라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어요. 이 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라, 어떤 주술적인 장치… 혹은 천문학적인 원리를 이용한 잠금장치일 거예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읽는 자만이 열 수 있는 문!

**윤재:** (황당) 주술이요? 지금 21세기에 주술을 논하는 겁니까? 그냥 폭파시키면 안 돼요? 깔끔하게 정리하고 공사 진행해야 합니다.

**서아:** (경악) 폭파라뇨!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건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라고요! 당신은… 당신은 정말 문화재에 대한 아무런 존중도 없어요? 돌덩이로 보여요?

**윤재:** (냉정하게) 존중 이전에, 저는 수천억 원이 걸린 프로젝트의 책임자입니다. 이 문 하나 때문에 제 사업이 망하게 생겼는데, 제가 존중이 나올까요? 그리고 아가씨, 여기 아직 정식 발굴 현장도 아닙니다. 사유지에 무단 침입해서… 또 쫓겨나고 싶어요?

**서아:** (말허리를 자르며) 사유지 이전에 인류의 유산입니다! 어젯밤부터 잠도 안 자고 이 주변을 탐사했어요. 그리고 확신했어요. 이 문은… 당신이 그렇게 쉽게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에요. 이건 분명 신비로운 방법을 통해서만 열릴 거예요.

윤재는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았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윤재:** (한숨) 좋습니다. 그럼 당신은 이 문을 어떻게 열 생각인데요? ‘별자리를 품은 거북이’에게 기도라도 할 겁니까?

서아는 윤재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문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그녀의 눈은 번뜩였고, 손가락은 돌벽의 미세한 틈새와 문양을 따라 섬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모든 돌 하나하나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서아:** (중얼거리듯) 거북이… 별자리… 특정 시기… 혹시 이 문이 열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건가? 아니면 어떤 특정 압력을 줘야 하는 건가?

그때, 그녀의 손이 돌문 한가운데 박혀 있는,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돌 조각에 닿았다. 그 조각은 다른 문양과 달리 약간 튀어나와 있었고, 표면은 닳아 있었다. 무언가 만져진 흔적이었다.

**서아:**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거… 눌리는 건가?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 조각을 누르자, 갑자기 ‘쉬이이이익…’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돌문이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안쪽으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거인처럼, 굉음을 내며 지하 깊은 곳으로 향하는 어두운 통로를 드러냈다. 돌문이 움직이는 동안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윤재는 물론, 주변에서 지켜보던 인부들까지 모두 얼어붙었다. 윤재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의 냉철했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윤재:** (믿을 수 없다는 듯) 말도 안 돼… 이게 진짜…

**서아:** (환호하며) 제가 뭐랬어요! 이건 단순한 문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어서요! 들어가 봐야 해요! 이곳의 비밀을 파헤쳐야 해요!

서아는 눈을 반짝이며 어둠 속으로 막 발을 들이려 했다. 고고학자의 본능이 그녀를 이끌었다. 윤재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그의 손은 그녀의 팔목을 강하게 붙들었다.

**윤재:** (급하게) 잠깐만!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아직 안전 점검도 안 했고, 뭐가 나올 줄 알고… 당신까지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서아:** (흥분해서) 위험 따위가 문제겠어요? 인류의 위대한 유적이 눈앞에 있는데! 이건 역사적인 순간이에요! 당신도 봐야 해요! 이곳의 신비를!

서아는 윤재의 손을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망설임 없이 한 발짝 내디뎠다. 그때였다. ‘우르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방금 열렸던 거대한 돌문이 다시 ‘쿵!’ 하고 닫히기 시작했다. 마치 침입자를 가두려는 듯, 돌문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닫히고 있었다.

**윤재:** (경악) 젠장! 문이 닫힌다!

윤재는 급히 서아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서아는 이미 몇 발자국 들어간 상태였고, 닫히는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보며 서아는 외쳤다.

**서아:** (다급하게) 윤재 씨! 어서요! 같이 들어가야죠!

윤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아에게 몸을 던졌다. 닫히는 문과 서아 사이의 좁은 틈으로 겨우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순간, 돌문은 ‘콰앙!’ 하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닫혀버렸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입을 다물 듯, 모든 빛과 소리를 삼켜버렸다.

**[SCENE 4: 지하 유적 통로 – 직후]**

순식간에 찾아온 완전한 암흑. 흙먼지와 눅눅한 흙냄새, 그리고 오래된 돌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윤재와 서아는 서로의 존재를 겨우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함 속에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서아:** (놀랐지만 이내 들뜬 목소리) 으악! 깜짝이야! 으음… 그런데 어두워도 너무 어둡네요. 진짜 지하 도시 맞나 봐요!

**윤재:** (짜증과 당혹감에 섞인 목소리) 깜짝이야? 지금 그게 할 소리예요? 당신 때문에 내가 지금… 젠장, 휴대폰!

윤재는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폰을 꺼냈지만, 화면에는 ‘서비스 없음’ 메시지와 함께 전력 부족을 알리는 붉은 배터리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윤재:** (절망) 안 돼…! 이런 타이밍에 배터리가…!

**서아:** (태연하게) 어차피 여기선 안 터질 거예요. 고대 유적은 현대 문명의 전파를 거부하거든요. 마치 이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죠?

**윤재:** (버럭)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문이 잠겼다고요! 우리가 갇혔다고! 당신 때문에! 당신이 나를 끌고 들어온 거라고요!

**서아:** (시무룩하게) 꼭 저 때문은 아니잖아요. 윤재 씨도 들어왔으니까… 절 구하려고 하다가…

**윤재:** (기가 막힌 듯) 당신 구하려다 들어온 거지! 누가 이런 흙먼지 폴폴 날리는 지하 굴에 자진해서 들어오겠어! 아, 정말… (이마를 짚는다) 이젠 사업도 망하고, 인생도 망하게 생겼네…

서아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에게는 이 어둠조차 설렘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고대 유적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의 심장은 벅차올랐다.

**서아:** (들뜬 목소리로) 괜찮아요! 분명 탈출구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봐요, 이 신비로운 공기! 분명 이곳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예요! 자, 이제 탐사를 시작해야죠! 첫 발굴 현장이라고 생각해요!

**윤재:** (절규) 탐사요? 제정신입니까? 우리는 지금 조난당한 거라고요! 살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윤재는 자신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수천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지휘하던 자신이, 이름도 모를 지하 유적에, 그것도 엉뚱한 고고학 연구원과 함께 갇히다니. 이것은 분명 악몽일 터였다.

**서아:** (주머니를 뒤적이며) 아, 맞다! 제 플래시!

서아가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불을 켰다. 하지만 오래된 플래시라 그런지, 빛은 희미하고 깜빡거렸다. 마치 유령의 눈동자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윤재:** (한숨) 차라리 안 켜는 게 낫겠네요. 귀신 나올 것 같잖아. 불빛이 더 무서워요.

**서아:** (두리번거리며) 음… 그래도 이걸로라도 움직여야죠! 자, 윤재 씨, 이쪽으로 와봐요! 뭔가 보이는 것 같아요! 벽에 뭔가 새겨져 있어요!

서아는 희미한 플래시 불빛을 의지한 채, 미지의 어둠 속으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윤재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억만금을 줘도 싫을 이 상황에, 그는 대체 왜 저 여자에게 끌려 들어간 걸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지금은 어서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들이 걸어가는 통로의 벽면에는 희미하게 고대 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플래시 불빛에 반사되어 글자들이 기이하게 흔들렸다.

**서아:** (플래시로 벽면을 비추며) 이 글자… 역시 제가 예상했던 ‘루미나 부족’의 언어와 유사해요! 이들은 빛과 어둠,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숭배했던 문명으로 알려져 있죠!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시간에 순응했던 현명한 자들이에요!

**윤재:** (무관심하게) 그래서요? 그게 우리가 여기서 나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죠? 당장 탈출 방법을 알려줘요.

**서아:** (흥분해서) 엄청난 도움이 되죠! 이들의 언어를 이해하면, 이 유적의 구조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탈출 방법도! 보세요! 여기… ‘태양이 잠들고 달이 춤출 때, 감춰진 길은 열린다’라고 쓰여있어요!

**윤재:** (비웃음) 태양이 잠들고 달이 춤춘다고? 말장난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걸 해석이라고 내놓는 겁니까?

**서아:** (발끈) 말장난 아니에요! 고대인들은 자연 현상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고! 이건 분명 이 유적의 작동 방식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그들이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걷자, 희미한 플래시 불빛 너머로 거대한 지하 홀이 나타났다. 홀의 중앙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원형 제단이 있었고, 돔형 천장에는 수많은 별자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사방의 벽면에는 정교한 벽화들이 펼쳐져 있었다. 벽화 속에는 고대인들이 빛과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거북이를 숭배하는 모습, 그리고 미지의 행성을 바라보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서아:** (넋을 잃고) 와… 완벽해…! 전설이 사실이었어! 이런 곳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윤재도 거대한 홀의 위용에 잠시 말을 잃었다. 희미한 플래시 불빛에도 불구하고, 그 웅장함과 신비로움은 압도적이었다. 그의 차가웠던 이성마저 한순간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윤재:** (낮은 목소리로) 이건… 대체 뭐하는 곳이야…? 정말 도시라고 할 만하군.

**서아:**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로 윤재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건… 이건 망각의 도시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고대인들의 인사예요! 이제부터 진짜 모험이 시작될 거예요! 윤재 씨! 이곳에 갇힌 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몰라요!

서아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윤재는 그런 서아를 보며 왠지 모르게 불안하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이 엉뚱한 여자가 자신을 어디로 이끌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삶은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이 지하 유적의 어둠 속에서, 그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FADE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