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의 초대
아레스-7호의 선실은 늘 같은 기계음으로 가득했다. 멀리 지구의 푸른 숨결은 아득한 신화 속 이야기처럼 희미해졌고, 이곳은 검은 우주의 한 점, 외로운 강철의 섬이었다. 오랫동안 반복된 항해는 승무원들의 몸과 마음에 고유의 리듬을 새겼지만, 그 리듬은 지금, 알 수 없는 균열에 휘말리고 있었다.
“선장님, 에너지 신호가… 또 다시 포착되었습니다.”
정적을 깬 건 부함장 박상위의 낮고 긴장된 목소리였다. 주 모니터에는 흐릿한 별 무리 사이로 점멸하는 붉은 점 하나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점은 지난 3일간 그들을 잠 못 들게 한 미지의 존재였다.
김선장은 굳게 다문 입술을 한번 쓸고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빛은 탐험가의 호기심과 오랜 경험에서 오는 신중함이 뒤섞여 있었다. “이 박사, 분석 결과는 여전합니까?”
선장 옆에 선 이수아 박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레스-7호의 수석 과학자이자 이 원정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네, 선장님. 어떤 알려진 물질에서도 나올 수 없는 파형입니다. 기계적인 신호도 아니고, 생명체의 반응도 아닙니다. 마치… 정지된 에너지가 스스로 숨 쉬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지된 에너지가 숨을 쉰다?” 박상위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박사님.”
이수아 박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피곤한 듯 말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거대한 존재가 꿈을 꾸는 것처럼, 일정한 주기로 미약하게 확장과 수축을 반복합니다. 그 파장이 이곳까지 도달하는 거고요.”
김선장은 모니터 속 붉은 점을 응시했다. “가장 가까이 접근했을 때, 충돌 위험은 없습니까?”
“계산상으로는… 없습니다. 궤도가 일정합니다. 하지만… 불안정합니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폭발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 박사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 그 망설임은 호기심이라는 뜨거운 불길에 곧 삼켜질 것이 분명했다.
“접근 각도 설정. 최대 안전 거리 유지하되, 샘플 채취 준비.” 김선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함교는 일순간 활기를 띠었다. 모든 승무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스크린에 복잡한 데이터가 흘러넘쳤다.
***
우주선은 조심스럽게 미지의 존재에게 다가갔다. 외부 카메라가 전송하는 영상이 주 모니터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맙소사….”
박상위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거대한 암흑이 떠 있었다. 그것은 완벽한 정육면체였다. 매끄럽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의 표면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았다. 마치 우주 공간에 검은 구멍이 뚫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 표면에는 아무런 무늬도, 연결 부위도, 인공적인 흔적도 없었다.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완벽한 침묵 속에 존재했다.
“이게…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었다고요?” 김선장의 목소리에는 경외감과 함께 섬뜩한 의문이 깃들어 있었다.
이수아 박사는 홀린 듯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놀랍군요… 이렇게 거대한 물체가…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다니. 인공적인 조작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엔 너무… 완벽합니다.”
“크기는 어느 정도죠?”
“측정 불가… 아니, 잠깐만요.” 이 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측정 장비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빛의 파장을 흡수해서 크기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의 한 면에서 희미한 보랏빛 줄기가 스르륵 피어올랐다. 마치 표면에 그려진 문양처럼 보였지만, 곧이어 그 줄기는 번개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더니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에너지 파장 급증! 수치 한계 돌파!” 박상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함선 후퇴! 최대 속도로 후퇴하라!” 김선장이 즉각적으로 명령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보랏빛 섬광이 사라진 직후, 검은 정육면체에서 강력한 자기장 파동이 방출되었다. 아레스-7호는 거대한 손에 붙들린 것처럼 휘청거렸다. 함내의 조명이 깜빡거리고, 일부 계기판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스템 오류! 통신 두절! 보조 동력으로 전환 중입니다!”
“젠장!” 김선장이 욕설을 읊조렸다.
잠시 후, 자기장 파동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아레스-7호는 침묵 속에 표류했다.
“선장님, 손상 보고입니다. 통신 모듈 파괴, 외부 센서 일부 손상. 동력은 보조 동력으로 전환되어 최소한의 유지 보수만 가능합니다.” 박상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우리가… 붙잡힌 건가?” 이수아 박사가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김선장은 모니터 속 검은 정육면체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다시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완벽한 침묵 속의 거대한 존재.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침묵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폭풍의 전조였다는 것을.
“탈출 불가능하다면, 직접 접촉한다. 샘플 채취 준비. 소형 탐사선을 이용해 가장 작은 조각이라도 가져온다.” 김선장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더 이상 관망만 할 수는 없어. 이 괴물이 우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한, 우리는 이 미지의 존재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수아 박사의 얼굴에 일순간 불안감이 스쳤지만, 이내 학자적인 호기심이 그 불안을 덮었다. “네, 선장님. 준비하겠습니다.”
***
소형 탐사선은 조심스럽게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에 접근했다. 탐사선에는 오정민 이등 항해사가 탑승해 있었다. 젊은 오정민은 이번 임무에 자원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오정민, 조심해. 절대 직접 접촉하지 마.” 이수아 박사가 통신으로 신신당부했다.
“알겠습니다, 박사님. 오염 방지 장치 완벽 가동 중입니다.”
탐사선이 검은 정육면체 표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오정민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정육면체의 표면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는 것이었다. 미세한 파문이 일더니, 가장자리에 작은 조각 하나가 저절로 떨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떨어져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정확히 탐사선의 수집용 집게 앞으로 굴러왔다.
“선장님! 박사님!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왔습니다! 직접 접촉 없이 수집 가능합니다!” 오정민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수집해. 그리고 즉시 귀환해.” 김선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탐사선의 집게가 조심스럽게 그 조각을 집어 올렸다. 손톱만 한 크기의 검은 조각은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였다. 빛을 완전히 흡수하여 어떤 형태도 빛깔도 비추지 않았다. 그저 완벽한 검은 점처럼 보였다.
탐사선이 아레스-7호로 귀환하고, 오정민은 조심스럽게 샘플을 들고 격리된 실험실로 들어섰다. 이수아 박사는 이미 분석 장비를 모두 준비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어요? 가까이서 보니.” 이 박사가 물었다.
오정민은 아직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랄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어있는 것 같은데…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처럼요.”
이 박사는 오정민의 엉뚱한 대답에 작게 웃으며 샘플을 받았다. “자, 이제 이 미스터리를 풀어볼 시간입니다.”
그녀는 검은 조각을 특수 격리 용기에 넣고 분석 장비에 연결했다. 초기 스캔 결과가 모니터에 뜨기 시작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군요.” 이 박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원소 분석도 불가능합니다. 질량도 없고, 에너지 반응도 없습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데 저희 눈앞에 있고, 만져지는데요?” 오정민이 반문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존재하는데…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돼요.” 이 박사가 조각을 현미경 아래 놓았다. 수십만 배 확대된 조각은 여전히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심지어 현미경의 조명까지 흡수하여, 마치 작은 블랙홀처럼 보였다.
그 순간, 격리 용기 안의 검은 조각에서 아주 미약한 보랏빛 섬광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 미약해서 오정민은 자신이 환각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수아 박사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이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착시현상인가 봅니다.” 이 박사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다시 조각을 응시했다. “오정민 이등 항해사, 잠시 자리 비켜주세요. 저는 이 조각을 좀 더 분석해봐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정민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군말 없이 실험실을 나섰다.
***
그날 밤부터 아레스-7호 안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오정민은 이상한 꿈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는 끝없이 펼쳐진 검은 공간에 서 있었다. 그 공간은 완벽한 정육면체였고, 벽은 그가 가져온 조각처럼 칠흑 같았다. 그 안에서 무언가 그를 끊임없이 부르는 것 같았다. ‘돌아와… 하나가 되어라….’ 꿈에서 깨어나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다른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일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환청을 듣거나, 벽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수아 박사는 실험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검은 조각에 완전히 매달려 있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조각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해골처럼 변해갔다. 그녀의 보고서에는 ‘미지의 에너지원’ ‘의식과의 교감’ ‘존재의 재정의’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가득했다.
김선장은 불안했다. 그는 이수아 박사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장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셔야 합니다.” 이 박사의 목소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이 조각은… 살아있습니다. 아니, ‘살아있는’ 것 이상입니다. 이건…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존재의 기억을요.”
“이 박사, 진정해요. 과로입니다. 잠시 쉬어야 합니다.” 김선장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이 박사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김선장을 밀쳐냈다. “제가 말했습니다. ‘돌아와야 한다’고.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희가… 그 길을 열어드린 겁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검은 조각이 들려 있었다. 조각은 이 박사의 손바닥 위에서 미약하게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실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오정민이었다. 그는 마치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눈은 공허하게 이수아 박사를 응시했다.
“돌려줘….” 오정민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게… 돌려줘…!”
그는 이수아 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박사는 놀라 소리쳤고, 오정민의 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오정민의 손아귀에는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괴력이 실려 있었다. 이 박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김선장이 달려들어 오정민을 떼어내려 했지만, 오정민의 몸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는 이 박사의 목을 조르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이 박사의 손에 들린 검은 조각을 뺏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의 눈빛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안 돼! 이건… 우리의 것이다!” 오정민의 비명이 실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입에서는 짐승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김선장은 섬뜩한 것을 보았다. 오정민의 피부 아래로, 마치 검은 핏줄이 솟아오르듯 기괴한 형상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고,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수아 박사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조각이 강렬한 보랏빛 섬광을 내뿜었다. 그 빛은 오정민의 몸을 감쌌고, 오정민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김선장은 떨리는 손으로 이수아 박사를 부축했다. 그녀는 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젠장, 오정민! 괜찮나!” 김선장이 쓰러진 오정민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숨은 멈춰 있었다.
“선장님, 조심하세요…!” 이수아 박사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오정민의 몸이 다시 꿈틀거렸다.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더 이상 오정민의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검게 변한 동공은 집요하게 이수아 박사가 든 검은 조각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찢어질 듯 크게 벌어진 입 안에는 시커먼 혀가 꿈틀거렸고, 앙상한 이빨은 날카로운 짐승의 송곳니처럼 변해 있었다. 그의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다. 피에 굶주린 괴물의 울음소리였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