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짙은 안개는 도시의 불빛마저 집어삼킬 듯 끈질기게 매달려 있었다. 이진우는 고급 세단의 뒷좌석에 기대어 창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차는 미끄러지듯 주택가를 벗어나 언덕 위 거대한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택의 불빛은 안개를 뚫고 섬뜩하게 반짝였다.
“또 당신을 부를 줄은 몰랐군.”
조수석에 앉은 김민준 경감이 찌푸린 미간으로 백미러 속 진우를 흘끗 보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함께 진우에 대한 미묘한 불신이 섞여 있었다. 그는 늘 그랬다. 진우의 비상한 통찰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기괴한 추리 과정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숨기지 못했다.
“저들도 답이 없으니까 그랬겠죠.” 진우는 무심하게 답했다. 그의 눈은 이미 저택의 실루엣을 꿰뚫고 있었다.
“이번엔 정말 미쳤어. 밀실 살인이라니.”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피해자는 박성수 회장. 그의 서재에서 발견됐는데, 문은 안에서 걸쇠까지 잠겨 있었고, 창문은 특수 방탄유리로 굳게 닫혀 있었어.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비서와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서 대기 중이었고, 아무도 서재 근처에 간 사람이 없어.”
“완벽하군요.” 진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새벽 공기와 함께 훅 끼쳐오는 불안감이 진우를 감쌌다. 으리으리한 로비는 이미 과학수사대와 형사들로 북적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해답을 찾지 못하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이진우 씨, 오셨군요.”
강력계 반장인 최형사가 진우를 발견하고는 반색하며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진우를 구원자라도 보는 듯 간절했다.
“상황은 대충 들었습니다. 현장으로 안내해주시죠.”
진우는 로비를 가로질러 묵묵히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마침내 서재 앞에 섰다. 짙은 나무 문에는 봉쇄 테이프가 덧붙여져 있었다.
“방문은 특수 제작된 방음문입니다. 외부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죠. 게다가 잠금장치는 외부에서 해정할 수 없도록 이중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안에서 잠가버리면, 말 그대로 철옹성이 됩니다.” 최형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피해자는요?” 진우가 물었다.
“서재 책상에 엎어져 있었습니다. 사인은 등 부위에 단검 자상. 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외부 침입은 물론이고, 내부에서 도망친 흔적도 없습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 제작된 잠금장치를 확인한 그는, 곁에 있던 수사대원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서늘하고 묘한 정적이 흘러나왔다.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서재는 거대하고 화려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벽을 가득 채운 책들, 한쪽 벽면에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박성수 회장은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 엎어져 미동도 없었다. 등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섬뜩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은 방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마치 카메라 렌즈가 초점을 맞추듯, 그의 눈은 모든 사물과 공간에 찰나의 순간 머물렀다. 천장의 환풍구, 벽면의 전원 콘센트, 책장 위의 먼지, 심지어 그림 액자의 미세한 기울기까지.
“창문은요?” 진우가 물었다.
“이중 잠금장치에, 보시는 것처럼 두꺼운 방탄유리입니다. 게다가 외부에서는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죠. 혹시 몰라 외부에서도 감식했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었습니다.”
민준 경감이 한숨을 쉬며 진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완벽한 밀실이야. 자살이라고 보기엔 등 뒤를 찔렀고, 타살이라고 보기엔 범인이 사라졌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진우는 바닥을 응시했다. 카펫 위, 책상과 의자 사이의 아주 좁은 틈새에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미세한, 먼지 같기도 하고 작은 조각 같기도 한 것이 보였다. 그는 그 조각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찰나의 섬광처럼 빛났다.
*딸깍.*
진우의 머릿속에서 아주 짧고 빠르게, 방금 전의 상황이 몇 분의 일 초 속도로 되감기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민준이 바닥의 먼지를 보며 몸을 살짝 움직였던 그 순간, 아주 짧은 찰나에 그 작은 조각 위로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다시 사라지는 장면. 다른 이들은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을, 아주 미세한 변화를 진우는 똑똑히 ‘다시’ 보았다.
그것은 아주 작은 금속 조각이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둠에 물들어 있는 듯한 짙은 색이었다.
진우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카펫 속의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게 뭔가요?” 최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 때문에 밀실이 아니게 됩니다.” 진우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네? 겨우 이런 조각 때문에요?” 민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진우를 보았다.
진우는 그 조각을 톡 건드렸다. 조각은 카펫에 박혀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작고 가벼워서 바람에도 날아갈 법한 것인데도, 묘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조각은 이 방의 특수 잠금장치 일부입니다.” 진우가 말을 이었다. “누군가 잠금장치를 강제로 열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잠금장치를 조작한 후에 이 조각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최형사와 민준 경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외부에서 잠금장치를 조작했다니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최형사의 목소리가 상기되었다.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의 웅장한 책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손가락이 책장 한가운데 꽂힌 낡은 백과사전의 표면을 쓸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숨겨진 스위치를 찾듯, 책장의 특정 부분을 힘주어 눌렀다.
*끼이익… 쿵.*
놀랍게도 책장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성인 남성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는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모두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비밀 통로…!” 민준이 경악했다. “하지만 저 통로는 외부에서 열 수 없도록 설계되었을 겁니다. 게다가 잠금장치는 외부 침입이 불가능한 구조였고…!”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이 방은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범인이 밀실처럼 ‘보이도록’ 조작했을 뿐이죠.”
그는 다시 바닥에 박힌 작은 금속 조각을 가리켰다.
“이 조각은 단순한 금속 파편이 아닙니다. 이 방의 잠금장치 내부를 조작하고, 외부에서 다시 잠근 후에 사용된, 일종의 특수 장치 일부죠. 아주 작고 정교한 도구의 일부가 부러져 남은 흔적입니다. 이 도구를 이용해 외부에서 잠금을 해제하고, 살인 후 다시 잠글 수 있었습니다. 밀실을 위장하기 위해, 범인은 이 통로의 존재를 감추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조각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진우는 어둠이 가득한 비밀 통로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그 너머의 진실을 꿰뚫고 있었다.
“이제 밀실의 트릭은 깨졌습니다. 다음은 범인 차례죠.”
모두의 시선이 진우와 어둠이 깔린 통로를 번갈아 향했다. 밀실 살인이라는 완벽한 장막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우는 알고 있었다. 이 통로가 이어진 곳이 단순한 외부가 아님을. 이 사건에는 분명 더 깊고, 시간을 넘나드는 복잡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그는 그 그림자를 쫓아 이미 몇 번이나 이 시간을 되감았는지 모른다. 이번엔 반드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