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밤은 항상 이 시간에 가장 깊어진다. 서울의 빼곡한 아파트 숲 사이로 한 줄기 빛조차 스며들 틈이 없을 것 같은 고요함. 이현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자정은 한참 지났고, 휴대용 기기의 액정은 새벽 2시 1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잠들기가 두려웠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 분명히 화장실 선반에 올려두었던 칫솔이 다음 날 아침 부엌 식탁에 놓여있는 식이었다. ‘내가 깜빡했나?’ 출근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찜찜했지만, 이현수는 애써 합리화했다. 피곤해서 그랬겠지. 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사건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어제는 퇴근 후 마시려고 아껴두었던 맥주캔이 냉장고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잠시 후 거실 테이블 위에서 발견했을 때는 이미 김이 빠진 채였다. 캔 따개가 옆에 놓여있던 것을 보고 이현수는 등골이 오싹했다. 자신이 열지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 누구도 집에 들락거리지 않았다.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젠장.”

현수는 낮게 욕을 내뱉었다.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귓가에는 어제 들었던 웅얼거리는 소리가 맴돌았다. 마치 누군가 숨죽여 속삭이는 듯한, 그러나 내용은 알 수 없는 소리. 처음에는 윗집이나 아랫집의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나 가깝고, 너무나 분명하게 이 아파트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오늘 낮에도 그랬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현수는 잊고 온 물건이 생각나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거실 소파에 놓인 쿠션들이 마치 누군가 앉았다 일어난 것처럼 살짝 움푹 들어가 있었고, 탁자 위에는 방금 읽다 둔 책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문제는, 자신이 출근하기 전에는 분명히 책을 덮어두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페이지도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누구세요?”

현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고요함만이 답했다. 심장이 발광하듯 뛰어댔다.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창문도, 현관문도 모두 잠겨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그 존재는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듯했다.

이현수는 차가운 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거실로 나와 불을 켰다. 환하게 빛나는 거실을 둘러보니, 조금 전까지의 공포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그러나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대체… 뭐야.”

그때였다. 쨍그랑!

주방 쪽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 깨어 있었고, 정신은 또렷했다. 환청이 아니었다. 주방 쪽에서 들려온 소리는 너무나 선명했다.

“누, 누구세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용기를 내어 주방으로 향했다. 불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산산조각 나 깨져 있는 유리잔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친구에게 선물 받은 맥주잔이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선반 위에서 떨어져 깨진 유리잔의 파편들 사이로, 이상한 문양을 새긴 작은 나무 조각이 놓여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마치 오래된 부적 같기도, 아니면 어떤 의식에 쓰이는 도구 같기도 한 모양새였다. 현수는 그 나무 조각을 본 순간, 묘한 기운을 느꼈다. 차갑고도 따뜻한,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강렬한 에너지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이건 또 뭐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현수는 조심스럽게 나무 조각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차가운 전기가 찌릿하고 손을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동시에 온 집안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암흑 속에서 현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끼이이익- 쾅!

안방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혔다.
탕! 탕! 탕!

현관문이 누군가 밖에서 두드리는 것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윙- 윙- 윙-

냉장고 문이 스스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거실 한가운데 서 있던 이현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이 모든 기현상이 그 나무 조각을 만진 후에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공포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때, 현수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거실 창문 밖,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처럼 반짝이는 미세한 점들이었다. 처음에는 창문에 맺힌 물방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점점 더 많아지고, 점점 더 창문 쪽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 작은 점들이 모여들자, 희미한 빛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처럼, 그러나 영롱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창문 밖에서부터 아파트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이 세상의 빛이 아니었다. 푸른색, 은색, 그리고 아주 희미한 금색이 섞인, 신비로운 빛이었다.

“으아악!”

현수는 비명을 질렀다. 그 빛이 거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이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파, 테이블, 의자, 심지어 주방의 식기들까지, 모든 것이 중력을 거부하며 둥실둥실 떠올랐다. 나무 조각을 쥐고 있던 현수의 손에서도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 속에서, 현수는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면서도 파괴적인 에너지가 자신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현수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어떤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낡은 고문서들,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글자들, 그리고 거대한 산맥 위에 홀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

“이게… 대체… 뭐야!”

현수의 외침은 빛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다. 온몸의 세포가 전율했다. 두려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도 낯선 어떤 감각이 현수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아득하고 거대한 힘의 감각이었다.

모든 것이 빛에 잠식되었다. 아파트의 벽은 사라지고, 천장은 우주처럼 펼쳐졌다. 이현수는 더 이상 자신의 아파트에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영롱한 빛의 바다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훨씬 더 또렷해졌다.

*…일어났느냐. 긴 잠에서…*

이현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의 평범했던 일상은, 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송두리째 뒤바뀌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이제 겨우 시작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