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김준호는 퇴근 후 늘 그랬듯이 낡은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24평짜리 오래된 아파트, 특별할 것 없는 그의 보금자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쉼 없이 불빛을 뿜어내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완벽한 휴식.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그랬다.

“후으읍….”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떴을 때였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쓱 하고 옆으로 움직였다.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피곤하긴 피곤한가 보네.”

식탁을 다시 쳐다봤지만, 컵은 그 자리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착각이겠거니, 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채널을 돌리려던 찰나, 거실 천장의 형광등이 *깜빡*, 하고 불안하게 떨렸다.

“젠장, 낡아서 그런가.”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 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으니, 조명 한두 개쯤 맛이 갈 법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채널을 바꾸려는데, 이번에는 아예 형광등이 꺼졌다. 그리고 곧바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켜졌다. 밝아진 거실. 준호는 움찔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뭐야, 고장 났나?”

이건 좀 기분 나빴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광등 스위치를 만져볼까 싶었지만, 또 터질까 봐 괜히 손대기가 꺼려졌다. 그냥 내일 관리실에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냉장고로 향했다.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 했다.

컵에 물을 따르는 순간, 등 뒤에서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아까 준호가 놓아두었던 리모컨이 소파에서 떨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소파 앞의 나무 테이블 위에 있던 것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내가 잘 못 놨나?”

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리모컨을 주웠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재즈 음악이 갑자기 끊기고,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만이 공간을 채웠다.

“이게 또 왜 이래?”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라디오 전원을 끄고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피곤한 밤이었다. 샤워나 하고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침실로 향했다.

침실 문을 열자마자, 머리맡 스탠드 램프가 스스로 켜졌다. 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탠드 램프는 스위치를 직접 돌려야만 켜지는 구식이었다.

“거짓말….”

준호는 문득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며, 때로는 그들이 사람의 삶에 개입하려 든다는 이야기. 할머니는 그것을 ‘어둑시니’라 불렀다. 하지만 그건 어린아이를 위한 옛날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는 과학을 믿는 현대인이었다.

덜컥, 침실 창문이 바람도 없는데 스스로 열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며 방안의 커튼을 펄럭이게 했다. *스스스…* 마치 비단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누구… 없어?”

준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식은땀이 등을 적시기 시작했다. 심장이 발광하듯 쿵쾅거렸다. 그는 마치 벽에 붙은 파리처럼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침실 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닫혀 있던 침실 문이 *쾅!* 하고 다시 닫혔다. 바로 눈앞에서.

“흐읍!”

준호는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건 착각도, 고장도 아니었다.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 방 안에, 자신과 함께.

방안의 모든 빛이 갑자기 꺼졌다. 암흑.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자 다른 감각들이 날카로워졌다. 준호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오직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에 집중했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듯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때였다. 귓가에, 아주 나지막하고 섬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찾았다….*

마치 오래된 실타래가 풀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분명한 ‘말’이었다. 준호는 패닉에 빠졌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을 뻗어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조약돌을 움켜쥐었다. 그 조약돌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준호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는 준호에게 이 조약돌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돌’이라며 항상 지니고 다니라 일렀었다. 준호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괜스레 버리지 못하고 머리맡에 두곤 했다.

지금, 그 조약돌을 쥔 손에서,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피어올랐다. 차가운 암흑 속에서 오직 준호의 손만이 따뜻하게 빛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 있던 차가운 존재감이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콰르릉!*

갑자기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거실 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한 소리였다. 준호는 조약돌을 움켜쥔 채 침실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준호는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비틀었다. 쾅! 쾅! 쾅! 문을 두드렸지만, 단단히 잠긴 듯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거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가 준호의 귓가에 닿았다. 그것은 깨진 유리 파편이 굴러다니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테이블 위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들 사이로, 아까보다 훨씬 더 선명해진 속삭임이, 마치 웃음소리처럼 들려왔다.

— *도망갈 수 없어… 김준호….*

준호는 숨을 헐떡였다. 그의 이름이 불렸다. 그것은 자신을 알고 있었다. 이 기괴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를 노리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손에 쥔 조약돌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온기만으로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거실 쪽에서 ‘탁, 탁, 탁’ 하고, 마치 발소리 같은 규칙적인 소리가 침실 문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더 가까이.

준호는 이를 악물었다. *콰직!* 조약돌을 쥔 손에 힘을 주자, 그 작은 돌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몸 안에 잠들어 있던 알 수 없는 기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랜 시간 갇혀 있던 맹수가 깨어나는 듯한 감각이었다.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곧, *스르륵* 하고, 문틈 사이로 핏빛처럼 붉은 기운이 스며들어 왔다.

그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준호의 영혼을 노리는, 어떤 존재의 침범이었다.

“빌어먹을….”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돌은 네 안에 잠든 것을 깨울 열쇠이기도 하다.’

푸른 빛을 내는 조약돌을 쥔 그의 손에서, 강렬한 기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 낯선 기운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제부터, 싸워야 한다는 것을.

문틈으로 스며들어온 붉은 기운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떠오른 눈동자가 준호를 향해 섬뜩하게 빛났다.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김준호의 운명 또한.